[강론] 조상의 전통을 파기하는 하느님의 뜻[박상대신부님] 2007.02.06

2007. 2. 6. 오전 10:53:43

글자
† 조상의 전통을 파기하는 하느님의 뜻 †
-박상대 신부 -

오늘은 그 동안 뜸했던 예수님과 바리사이파 율사 계층의 사람들 사이의 논쟁이 다시 시작됨을 알린다. 예수님의 공생활 초기에 있었던 논쟁에 이어 이는 두 번째 논쟁이다. 첫 번째 논쟁은 예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 주변 동네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당시 '죄인으로 취급받던' 레위를 부르신 후 그의 동료들과 함께 식사를 나눈 일로 바리사이파 율사들이 예수님을 '죄인들과 어울려 먹고 노는 작자'로 단정해 버린 것이다.

그에 이어 단식논쟁이 있었고, 안식일에 제자들이 이삭을 까먹은 일과 역시 안식일에 회당에서 손이 오그라든 환자를 치유한 일로 논쟁은 한층 격렬해져 바리사이들이 헤로데 당원들과 결탁하여 예수를 제거하기로 결의하기에 이른다.(2,13-28; 3,1-6) 그 이후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사들이 예수가 베엘제불에 사로잡혔고 마귀두목의 힘을 빌어 마귀를 쫓아낸다고 모함한 적도 있다.(3,22) 이 대목도 논쟁의 범주에 넣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첫 번째 논쟁에서와 다른 점은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사들과 함께 예수와 논쟁을 벌일 작정을 하고 몰려온 것이다. 생각건대 갈릴래아 지방의 바리사이들이 예루살렘에 율사들을 청하여 오게 한 모양이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께 몰려오자마자 그들의 눈에 띈 것은 제자들 몇이 손을 씻지 않고 부정한 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이었다. 바로 이 일이 오늘 논쟁의 주제가 된 셈이다. 따라서 오늘 복음의 논쟁은 율법에 관한 것이 아니라 조상들의 전통에 관한 것이다.


예를 들어 정결에 관한 율법규정은 따로 있다.(레위 12-15장) 조상들의 전통이란 넓은 의미로 볼 때 율법의 범주에 속할 수도 있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율법은 아니다. 여기서 전통이란 율법을 확대하여 생겨난 관습(慣習)이나 인습(因習)을 말하는 것으로 조상 대대로 전해져 내려와 사람들의 몸에 배이거나 익은 것이다. 쉽게 말하면 이는 일종의 '터부(taboo)'로서 그 사회에 줄곧 통용되는 '금기(禁忌)'이다. 터부는 통상 종교적 신성(神性)을 제고할 목적으로 사람의 생활태도, 행위, 언어, 사물 등 인간의 거의 모든 삶의 영역에 묶어둔 금기(禁忌)를 말하는 것이다.

마르코복음 7,1-23에는 유다인들의 조상전통에 속하는 정결관습, '코르반' 관습, 그리고 금기식품에 관한 습관이 언급되고, 이 세 가지에 대한 철저한 비판과 함께 예수님의 새로운 해석이 내려진다. 오늘 복음에는 정결관습과 '코르반' 관습이 그 논쟁의 주제가 되었다. 율사들은 제자들이 정결관습을 어겼다 하여 예수께 시비를 건 것이다. '코르반'이란 복음에 설명되어 있듯이 "자식이 부모에게 해드려야 할 것을 하느님께 바쳤다"(11절)는 뜻이다. 그러니까 부모에게 드려야 할 것을 놓고 '하느님께 봉헌했다'는 뜻으로 '코르반'이라고 말하면 드리지 않아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이런 관습에 대한 예수님의 입장은 단호하다. 사람의 계명을 하느님의 것인 양 가르치고 사람의 전통을 고집하고 핑계삼아 하느님의 뜻을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론은 간단하다. 인습, 관습, 터부, 금기 등을 지키는 일이 하느님을 섬기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중에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는 일, 사람들이 군집한 시장이나 공공장소에서 돌아와 몸을 씻는 일, 음식을 담기 전에 그릇들을 씻는 일을 놓고 이 일들을 하지 않으면 종교적·도덕적으로 부정(不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해도 하지 않아도 무방하며, 하지 않으면 단지 위생상 불결할 수 있다고 여길 것이다. 다도(茶道)가 복잡하지만 정신수양에 도움이 되고 나름대로의 멋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그러나 차를 마시는 규칙이 하느님을 섬기는 일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는 어떠한가? 어린 자식의 양육은 부모가 책임지지만 나이 든 부모의 봉양은 자식의 의무이다. 그런데 무모와 자식간의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하여 '코르반' 서원문을 이용하여 부모봉양을 무시한다면, 이는 조상의 전통을 빙자하여 인륜을 저버리는 것이며, 제4계명을 범한 것이다. 부모와 사이가 좋지 않은 자식은 분명히 부모를 업신여겼거나 부모에게 악담을 일삼았을 것이다. 이런 자식들은 '코르반' 서원문을 외치기에 앞서 "부모를 업신여기는 자는 반드시 사형을 당해야 한다"(출애 21,17), "누구든지 자기 부모에게 악담하는 자는 반드시 사형을 당해야 한다"(레위 20,9)는 구약의 율법을 되새겨야 한다. 그러므로 사소한 관습이나 규정보다는 하느님의 뜻을 애써 받들어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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