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가대 하상 신학원 조욱 현 토마스 신부-
예수께 서 겐네사렛 땅으로 가셨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께로 몰려왔다.
예수께 한결같이 무엇인가를 얻으 려고 찾아왔다.
수많은 병자들이 자기의 병을 치유받기 위해서 모여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 엇을 얻으려고 사람들이 예수께 모여들었다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모습이기도 하다.
왜냐하 면 예수님만이 인간의 절박한 요구, 사람이 줄 수 없는 그 이상의 무엇을
주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이었 다.
그러나 예수님께 그러한 은혜를 받고도 결국은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을 때,
동조한 그들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옷자 락만이라도 만지게 해달라고 애원을 하는 그들이었지만 그렇게 변할 수 있는 것이 사람인 것이다.
결국 은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더라도 이 군중들 중에는 예수님을 자신의 욕구를 채워주는 분으로
이용한 사 람들도 있다는 것이다.
오늘의 복음에서와 같이 수많은 군중들이 자기 필요성에 의해 예수님을 찾 는 것을 결코 비웃을 수는 없다.
우리 자신이 그런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신 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 하느님을 기계적인 하느님으로 만들어 놓고 그분을 섬기고 따른다고
하고 있지 는 않은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것은 어쩌면 내가 만들어 놓은 우상일 수 있다.
그 우상은 나의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못할 때, 아무렇지도 않게 버릴 수 있듯이
우리 안에 잘못 가지고 있는 하느님 상이 무너지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신앙을 버리고 있는 모습 을 볼 수 있지 않은가 ?
이것은 신앙을 올바로 받아들인 모습이 아니다.
하느 님을 믿는다는 것이 나의 편의를 위해 받아들였기 때문에 나의 욕구가 충족되지 못하면
그 기계적인 하 느님은 버림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하느님은 진정 우리가 믿는 하느님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생각하여야 할 것은 바로 이러 한 것이다.
우리는 가정에 대해서는 어떠한 자세인가 ?
또 친구와 친지에 대해서는 어떠한 마음으로 대하고 있는가 ?
이용하고 또 도움만 받기 위해서 이러한 것들이 있다고 생각하지나 않는지 ?
신앙을 받아들이고 성당에 다니는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이다.
그리고 하느님께 대해서는 어떤가 하는 것이다.
하느님을 기계 적인 하느님으로 만들어 놓고 참 하느님을 섬긴다고 하지는 않는지 반성하면서,
우리 자신은 이제 예수 님을 필요로 하고 찾으면서도 무엇인가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기복적인 신앙이 아닌, 신앙으로 인해 자신이 변화하고
또 세상이 변화될 수 있는 조그마한 실천으로부터 나와야하며 거기에 서 참 기쁨과 보람을 느끼고
나 자신이 완성되어 가는 삶이어야 한다.
이러 한 삶이 우리 가운데 조금씩 실천되도록 끊임없이 나 자신과의 싸움을 해 나가야 한 다.
세상이 변화된다는 것은 먼저 나 자신의 조그마한 것 이라도 변화가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
강론] 기계적인 하느님이 아니다[조욱현신부님] 2007.02.06
2007. 2. 6. 오전 10:51:55
글자
기계적인 하느님이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