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준비가 되지 않아서...” “그럼, 내가 기다릴게”
세례를 앞두고 오랜 기간 냉담을 하고 있었던 배우자에게 마지막 감동적인 한마디! 조당을 풀지 않으면 세례를 받지 못하는 교회 규정에 따라 지금까지 준비해왔던 것이 무너지는 순간! 기다림으로 방향을 잡은 교우의 눈에는 눈물이 고입니다. 인간적인 감정을 앞세웠다면 한 바탕 사랑의 전쟁을 치렀을 것입니다. 은총의 움직임은 섭섭했던 마음을 연민의 마음으로 바뀌게 했습니다.
“내가 너무 부끄럽고 용기가 생기지 않아서...” “미안해, 혼배성사를 받고 함께 신앙생활을 다시 시작할게!”
기다린다는 은총의 선택은 배우자의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제 함께 혼배성사를 받고 세례 받은 후 성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모습이 매우 아름답습니다. 고향에서 당신을 배척하는 사람들을 뒤로 하고 떠나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우리가 배워야 할 은총의 모습입니다. 신앙인의 여정은 끊임없는 은총의 선택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루카4,30)
그럼 무엇이 우리를 은총의 선택에서 멀어지게 하는가? 하는 질문을 해봅니다. 예수님의 고향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너무 잘 알고 있었습니다. 너무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 예수님을 못마땅하게 만들었습니다. 잘 알고 있는 친근함이 질투심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편하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루카4,22)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의 친근함이 개방적이 못합니다. 자기중심적인 이기적인 배경이 깔려있습니다. 즉 모든 것을 자기 영역에 소유하려는 마음이 관계를 그르치게 만듭니다. 십계명 중에 다섯째 계명은 사람을 죽이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물리적인 살해를 금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근본에는 모든 사람의 관계를 자기 영역에 끌어드리거나 소유하지 말라는 가르침이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적을 자기 영역에 소유하고자 하는 마음이 예수님을 배척하게 되는 상처를 낫게 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에서 떨어뜨리려고 하였다.”(루카4,29)
여기서 예수님의 선택은 이와 상반됩니다. 만일 은총에 의한 선택이 아니었다면, 그들과 한 바탕 언쟁이나 싸움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선택은 그들을 절대 소유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가로질러 유유히 떠나갑니다.
은총의 선택은 부정적인 것을 긍정인 것으로, 질투심을 이해하는 마음으로, 조급함을 기다림으로, 실망을 희망으로 바뀌게 해줍니다. 그것이 신앙이 주는 자유로움입니다. 은총의 선택을 하기 위해 자주 이런 질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선택이 나와 이웃에게 평화를 가져다주는지?” “어떤 선택이 나와 이웃에게 기쁨을 가져다주는지?” “어떤 선택이 나와 이웃에게 힘을 실어주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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