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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일 주님 봉헌 축일> 참된 봉헌의 의미와 자세 제 1독서 : 말라 3,1-4 (너희가 찾던 주님, 그가 홀연히 자기 성전으로 오리라.) 복 음 : 루카 2,22-40 (제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오늘은 주님 성탄 대축일로부터 40일째가 되는 날이면서 특별히 ??주님 봉헌 축일??입니다. 예수님을 낳으신 성모님께서 모세 율법대로 정결례를 치르시고 아기 예수님을 성전에 바치신 것을 기념하는 날이지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모든 수확의 첫물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율법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에서 맏아들, 곧 태를 맨 먼저 열고 나온 첫아들은 모두 나에게 봉헌하여라. 사람뿐 아니라 짐승의 맏배도 나의 것이다.??(탈출13,2) 맏아들과 맏배를 야훼께 바치라는 탈출기의 말씀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기가 태어나면 8일만에 할례를 베풀고 40일이 되는 날에는 하느님께 봉헌을 하는데 봉헌 예식을 하기에 앞서 우선 정결례를 치러야 했습니다. 정결례란 산모를 깨끗하게 하는 예식이지요. 전통적으로 우리 천주교회에서는 일 년 동안 사용할 초를 이 날 축복하여 전례 때마다 그 불을 밝힙니다. 또 수도원에서는 이 날을 봉헌 생활의 날로 정해 일생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종신서원 예식을 거행하기도 하지요. 첫물을 하느님께 바치고 십일조를 봉헌하는 것은 모든 것의 주인이 하느님이심을 고백하는 신앙 행위입니다. 모든 것의 주인인 하느님께 첫 열매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봉헌할 때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으시고 더욱 풍요롭게 해 주신다는 신앙 고백이자 신앙의 실천이 이 봉헌 예식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주님 봉헌 축일을 지내며 참된 봉헌의 의미와, 아기 예수를 두 팔에 안고 감격한 시메온이 어떻게 첫눈에 아기 예수를 메시아요, 이스라엘과 이방인의 구세주로 알아보는 은총을 받았는지를 한번 생각해보기로 하겠습니다. 첫째로 봉헌의 의미를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한 마디로 저는 여러분께 이렇게 권해드립니다. 인간적인 계산을 앞세우지 말고 하느님께 다 드리십시오. 그러면 하느님께서 그보다도 더 채워주실 것입니다. 사제인 저를 보고 믿으시면 됩니다. 저는 일생을 하느님께 봉헌한 사람입니다. 현재와 미래의 모든 시간, 그리고 저의 전 존재를 오직 하느님만을 위해 내놓았지요. 그래서 부족함이 없습니다. 남김 없이 드리니 하느님께서 넘치도록 채워 주신다는 것을 저는 매번 체험해 왔습니다. 전 본당을 떠나오면서 있었던 일입니다. 5년의 임기를 일년 남긴 어느 날 예기치 못한 발령을 받고 갑자기 이임을 하게 되었는데 깜짝 놀란 신자들이 서운해하며 부랴부랴 떠날 준비를 서둘렀습니다. 그럴 필요 없다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여기 저기에서 이런저런 준비를 해 주었지요. 지금 쓰고 있는 노트북 컴퓨터가 들어오고 현금도 적잖이 들어왔습니다. 저는 들어온 돈은 봉성체를 다니며 알게 된 가난한 집에 생활비로 전해드리고, 서가를 가득 메웠던 책이며 정성 들여 가꾸던 난 화분 등 적잖은 짐을 필요한 곳에 나누어주고는 당장 필요한 책 몇 권만을 챙겨들고 단촐한 짐을 꾸려 이 곳 본당으로 부임을 했습니다. 3월 5일 날 새로 부임을 했는데 며칠 지나지 않아 영명 축일을 맞게 되었지요. 그 날 저는 다시 한번 채워주시는 하느님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두고 온 것보다 더 예쁘고 향기로운 난 화분이 들어오고 책들이 쌓여 가는데 얼마나 그 양이 많은 지 작년 한 해 동안만 해도 약 150 여권의 책을 읽을 수가 있었습니다. 또 신분을 밝히지 않은 누군가를 통해 삼백 오십 여 만원의 돈이 들어왔습니다. 참으로 신비스러운 일이었지요. 계속해서 여기 저기에서 돈이 들어오면 저는 그 돈을 모아 필요한 곳에 보냈는데 작년에도 역시 보람 있게 돈을 쓸 수가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본명 축일 날 30여 분의 할머니들이 버스와 지하철을 번갈아 타고 축하를 해 주러 일부러 그 먼 곳에서 찾아와 주시기도 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을 체험한 저는 분명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께 봉헌하면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그 이상으로 넘치게 채워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참된 봉헌은 하느님을 향한 감사의 표시이며 모든 것의 주인이 하느님이시라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절대 하느님께 인색하지 마십시오. 하물며 사람한테 인색해도 관계의 단절 등 그 대가를 치러야 하는데 만물의 주인이시고 우리를 만들어내신 하느님께 인색해서야 어찌 축복을 받을 수가 있겠습니까? 진정한 봉헌은 하느님께 나의 중요한 것과 나의 모든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쳐드리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분명 더 크게 채워주십니다. 두 번째로 시메온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성전에 봉헌된 아기를 보고 만민을 구원하실 구세주이심을 알아본 한 거룩한 노인을 만나게 됩니다. 시메온이라는 인물이지요. 시메온은 아기 예수님을 두 팔에 받아 안고 신비경에 빠져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루카2,29-32) 성경은 시메온을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 받을 때를 기다리는??(루카2,25) 사람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죄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시메온 또한 죄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부족하지만 하느님 앞에 바로 서려고 애쓰고 주님의 뜻을 실천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주님의 뜻보다는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며 세상을 살아갑니다. 그렇게 내 욕심대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은 하느님을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믿는 사람과 믿지 못하는 사람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지요. 믿는 사람은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이고, 믿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욕심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신자이면서도 세상의 욕심대로만 살아간다면 어찌 주님을 만날 수가 있겠습니까? 만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마음에 담고 실천할 때 시메온처럼 하느님을 만나 뵐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루카2,29-30)하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또한 시메온은 성령께서 함께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루카2,25-26) 세상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의지와 욕심대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시메온은 성령의 삶을 사신 분이었습니다. 하느님 안에서 사는 사람은 세상 사람들과 다르지요. 외유내강(外柔內剛)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겉은 부드러운데 속은 강한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지요. 성령 안에 사는 사람이 그렇습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로 우리는 첫 순교자 스테파노를 떠올릴 수가 있습니다. 스테파노는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자신을 죽이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거룩한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성령 안에 산다는 것은 이렇게 죽음 앞에서도 자유롭고 평화로우며 그 어떤 것도 꺾을 수 없는 희망을 보여주는 삶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삶이 성령 안에 사는 사람들의 삶입니다. 바로 순교자들의 삶이지요. 무서운 권력을 휘두르며 이 세상에서 제일 힘이 센 것 같은 사람도 죽음 앞에서는 나약하기 짝이 없고 절망의 나락으로 뚝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지만 성령 안에 사는 사람의 삶은 다릅니다. 오늘 하느님께서는 성령 안에 살았던 시메온에게 평생 기다려온 구세주를 뵙게 해 주심으로써 그 믿음에 응답해 주시는 특은을 베풀어 주셨던 것입니다. 한편 우리는 시메온이 예수님을 만난 장소를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시메온은 예수님을 시장통에서 만나지도 않았고, 골프장에서 만나지도 않았습니다. 성전에서 만나 뵈었지요. 루카복음 2장에 보면 과월절을 지내러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던 요셉과 마리아는 열 두 살이 된 예수를 잃어버리고 사흘을 찾아 헤매다가 역시 성전에서 찾게 되는 장면이 있습니다. ??사흘 뒤에야 성전에서 그를 찾아냈는데, 그는 율법 교사들 가운데에 앉아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묻기도 하고 있었다.??(루카2,46) 예수님을 만나기를 원한다면 성전에 머물러야 합니다. 세상의 잡다함 속에서는 만날 수가 없지요. 성전에서 기도할 때 우리는 주님을 느끼게 됩니다. 수십 년 신앙 생활을 하였는데도 신앙 성숙이 잘 안되어 답답하다는 신자들이 우리 주위에는 많습니다. 그런 분은 성전에 머무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그 답을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평일 미사가 있는지 조차도 모르고 바쁜 일이 있으면 주일 미사마저 빠지는 사람의 신앙이 성숙될 수가 없음은 당연한 일입니다. 수시로 성당에 와서 하느님을 만나려고 노력하고 사소하지만 중요한 체험들을 하나씩 담아갈 때 신앙은 성장하는 것입니다. 저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성전에서 보냅니다. 그래서 성당을 찾는 신자들을 보면 단번에 알 수가 있지요. 탁구를 치러 오거나 다른 일이 있어서, 또는 성체 조배를 위해서 오는 여러 신자들이 있지만 역시 조배를 하고 가는 사람의 모습이 남다르다는 것을 번번이 느끼게 됩니다. 하느님에 대한 체험을 담고 가는 그 뒷모습은 평화, 그 자체이지요. 아직 한번도 성체 조배실에 들어가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자신의 신앙이 왜 메마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체험하고 주님 안에서의 자유를 원한다면 성체 앞에 머무르는 시간을 많이 갖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또 말씀 안에 잠겨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말씀을 자주 묵상해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우리 곁에 계시는 주님의 현존을 체험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 시메온이라는 노인이 예수님을 팔에 안고 감격에 겨워 하느님을 찬양할 수 있었던 것은 일생을 오로지 성령 안에서 경건하고 의롭게 살았으며 항상 성전 안에 머물렀기 때문입니다. 시메온처럼 성령 안에서 하느님을 체험하는 거룩한 삶을 원한다면 제대로 정성이 담긴 봉헌을 하느님께 바쳐드려야 할 것입니다.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기꺼이 바쳐드리는 아름다운 봉헌이 있을 때 하느님의 큰 축복이 내린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실천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아울러 신앙의 대 선배 시메온 노인을 통해 참 신앙인의 자세를 배우는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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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일 주님 봉헌 / 참된 봉헌의 의미와 자세 / - 이기양 신부님
2007. 2. 2. 오전 9: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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