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4주간 목요일
둘씩
아무것도 지니지 말라고 하시면서 파견하시되 둘씩 짝지어 보내셨다. 아무것도 의존하지 말고 오직 짝지만 의지하라는 말씀일 것이다. 물론 하느님께 대한 신뢰는 기본이고, 그 외 모든 인간적인 의지처는 빵이나 돈은 물론 여벌 옷에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함께 가는 짝지와 모든 일을 논의하고 서로 의지하라는 말씀이다.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많은 사람도 아니고 오직 한 사람 하고만 마음 맞추면 되니 말이다.
처음 들꽃마을 와서 미사를 몇 번 지내다보니 특이한 현상이 발견되었다. 주의기도때 서로 손을 잡고 기도를 하는데 저쪽 끝에 있던 사람이 이쪽 끝에 있는 이모, 그 당시엔 장기봉사자가 생활자를 직접 돌보고 있었는데 통상 이모라고 불리거나 삼촌이라 불렸다. 그 이모하고 손잡고 기도하려고 애를 쓰는 것이었다. 평화의 인사 때도 마찬가지였다. 바로 옆 사람은 상관치 않고 굳이 건너편에 있는 이모, 삼촌에게 가서 인사하는 것이다. 어떤 가족은 미사가 계속 진행되는 중에도 일일이 돌아다니면서 계속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하지만 그도 자기 마음에 두었던 사람만 골라서 인사한다.^^ ‘이거 참 뭔가 이상하다’ 싶어서 앞으로는 그러지 말자고 했다. 사실 들꽃마을은 장기봉사자들이 득세?를 하고 있었다. 4, 5년 된 분들도 많았다. 직원들은 봉급 받고 일하는 사람이라고, 가족들 돌보는 일은 하지 않는다고(장기봉사자들이 다 차지하고서는 말입니다^^) 드러내놓고 무시하거나 목소리를 높이곤 했다. 가족들은 그런 이모,삼촌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던 것이다. 나 오늘 문제 없다고 그러니 확인받자고, 그날 하루의 안전성을 체크하는 것이다. 앞으로는 바로 옆사람 하고만 손 잡고 기도 하고 또 좌우 앞뒷 사람하고만 인사하자고 제의했다. 옆에 사람도 그 옆 사람과 인사하면 내가 보낸 평화의 인사가 맨 끝에 있는 사람까지 전달되는 것이라고.
정작 내가 돌보고 사랑을 쏟아야 할 사람은 결코 저 멀리 있는 사람이 아니다. 아프리카 까지 가야만 되는 것도 아니고, 38선을 넘어야만 되는 것도 아니다. 바로 곁에 있는 사람에게만 충실하면 그로서 이웃사랑은 온전하게 완성되는 것이다. 이것이 굳이 제자들을 둘씩 짝지어 보내신 예수님의 의중이 아니었을까 싶다.
서품 받고 1년 뒤 처음으로 차를 운전할 기회가 생겨서 마침 구마 고속도로를 달리게 되었는데 그날따라 폭우가 쏟아졌다. 한치 앞도 안보일정도로 쏟아지는 폭우를 걷어내기 위해 와이퍼를 최대속도로 한 것이 화근이었는지, 그만 운전석쪽 와이퍼가 덜커덕 제 자리를 이탈해서 대롱 대롱 매달린채 허공을 가르는 일이 발생했다. 사고사 당하는 줄 알았다. 온통 쏟아지는 빗 속에 엄청난 덤프트럭들이 물보라를 날리는 위험천만한 길을 겨우 운전해서 다행히 휴게소에 들러서 고쳐봤지만 운전초보자가 제대로 할 리가 없었다. 또 다시 덜커덕 와이퍼가 제 자리를 이탈하고 말았지만 다행히도 폭우는 잦아들고 있어서 무사히 목적지까지 갈 수 있었다.
사람 사는 이치도 이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어느 한 사람이 잘못되면 그의 잘못을 보상하기 위해 다른 많은 사람들이 고생하게 된다. 자기 일에 충실한 것이 세상을 위한 가장 큰 공헌이 된다. 굳이 시설이나 불우 이웃을 찾아가서 봉사하지 않아도 세상에 엄청난 봉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제자들을 한 패거리로 몰아서 세를 과시하면서 파견하지 않고 굳이 둘씩 짝지어 보내신 예수님의 두 번째 의중에는 이도 포함되지 않았을까 싶다. 서로 자기 맡은 일만 충실하면 될 거라고, 세 사람, 네 사람, 더 많은 사람까지 신경 쓰느라고 에너지 소비하지 말고 오직 짝지만 신경 쓰면 충분하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