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4주간 목요일 /[강론] 지팡이[차성현신부님]

2007. 2. 1. 오후 10:52:54

글자
연중 제4주간 목요일

- 차성현 신부-


때가 되자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부르시어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고 둘씩 짝지어 파견하기 시작하셨다고 합니다. 권한을 행사 할려면 어떤 수단과 도구들이 필요하였을 터인데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주지 않으십니다.   심지어 먹을 빵도 여행 보따리도 돈도 일체 가져가지 말라고 하십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예수님이 좀 심하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한가지는 꼭 챙겨서 가져가라고 한 것이 있는데 지팡이 입니다


  '지팡이' 하니까 갑자기 모세의 지팡이가 생각납니다. 어릴 적 읽었던 그림성서에서 모세 할아버지가 두 팔을 펴서 바닷물을 힘차게 가를 때 그 손에 지팡이가 들려 있었습니다. 파라오 왕 앞에서는 그 지팡이가 이집트 마술사들의 지팡이를 다 삼켜 버리기도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목말라 할 때면 바위를 내리쳐서 물을 나오게 했던 것도 그 지팡이 입니다. 지팡이를 통해 하느님께서는 이처럼 당신의 권능을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지팡이는 빼먹지 말고 꼭 챙겨가라고 하셨는지 조금 알 것 같습니다. 하느님만 의지하며 제자로서 살아가라는 말씀이겠죠.


  저는 생각해보았습니다. 나는 과연 하느님만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하느님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온전히 거짓은 아니지만, 그러나 저는 다른 것에도 많이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우선 사람에게 많이 의지합니다. 기쁜 일이나 힘든 일에 언제나 사람들의 도움과 관심을 필요로 하고 또 만족해 합니다. 때론 자랑하고 싶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위로를 받고 싶기도 합니다. 사람들과 함께 할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좋아도 행복하고 힘들어도 행복합니다. 하느님의 위로와 축복은 언제나 멀리 있는 것 같고 사람들의 관심과 위로는 항상 가까이에서 저를 만족시켜 주는 것 같습니다. 살아가면서 돈에도 많이 의지합니다. 한번도 돈에 대하여 부족하거나 아쉬워해본 적은 없지만, 돈의 위력과 편리함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결코 그것의 노예가 아니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항상 무슨 일을 할 때면 돈을 걱정하게 되기도 하고 또 세밀히 계획하곤 합니다. 이 외에도 하느님 아닌 다른 것에 의지하는 것이 많습니다. 부끄러워서 다 말을 하지 못할 뿐 입니다. 이런 저에게 요한 복음의 이 구절은 참 많은 위로가 됩니다.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요한15,16) 모든 부족함을 다 아시고도 우리를 택하신 주님이십니다. 우리 보다 우리를 더 잘 아시는 주님께서 불러주신 제자의 삶입니다.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셔서 당신의 생명까지도 기꺼이 내어놓으셨던 주님. 그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이 사랑하셨던 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리 모두는 그분 제자로서의 삶을 살아갑니다. 나머지 부족한 것은 그분께서 다 채워주시리라는 믿음으로 우리는 자신이 받은 소명에 오늘도 부끄럽지만 겸손한 마음으로 성실히 살아갑니다.


  언젠가 그런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장애인 학교의 스쿨버스가 사고가 났습니다. 물론 그 안에는 많은 학생들이 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마침 그 날엔 학생수와 같은 수의 선생님들이 함께 타고 있었습니다. 몸이 불편한 학생들이 더 많이 다쳤을 것 같은데 오히려 몸이 성한 선생님들이 더 많은 부상과 중상을 입었습니다. 사고가 나자 선생님들은 거의 본능적으로 장애아인 자신들의 제자들을 자신들의 몸으로 감싸 안았다고 했습니다.   다행히 보호를 받은 아이들은 약간의 상처만 입었을 뿐입니다. 갑자기 그 학생들이 너무 부러웠습니다. 몸이 불편한 장애가 더 이상 불행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장애가 그 아이들을 불행하게 했다기보다 선생님들이 그 아이들을 행복하게 만든 것 같았습니다.


  건강한 우리 안에도 많은 장애들이 있습니다. 8년동안이나 장애아들과 함께 사셨던 수녀님이 피정 중에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조금씩의 장애를 다 가지고 살아갑니다. 다행히 그것이 겉으로 드러날 만큼 크지 않기에 장애인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을 뿐이라고 합니다. 저도 여러분도 모두 감추어진 장애인들입니다. 사고가 난 버스에 아이들과 함께 선생님들이 타고 있었듯이, 우리들의 삶에도 늘 함께 하시는 예수님입니다. 비록 우리가 부족하고 못났지만 그러나 그런 우리들의 장애를 다 알고 계시는 예수님이십니다. 그분께서 잊지 말라고 하셨던 그 지팡이만 잃어버리지 않아야겠습니다.


  나중에 제가 궁금해서 그 수녀님에게 한번 물었습니다. 저에게 감추어진 장애는 어떤 종류인 것 같습니까? 진단 결과가 나오는데 단 1초도 안걸렸습니다. '다운 증후군 같은데요'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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