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해 연중 제 4 주간 수요일./“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 조성호 신부님

2007. 2. 1. 오후 10:40:08

글자

다해 연중 제 4 주간 수요일.

2007. 1. 31.

토평동

히브 12, 4-7.11-15.

마르 6, 1-6.

사람들이 놀랍니다. 누구랄 것 없이 그분의 가르치시는 말씀에 놀랍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곧 돌아섭니다.

“저 사람은 목수가 아닌가?”(마르 6, 3)

여기에서 ‘저 사람은’이라고 할 때 이 말은 그 사람을 비하하는 말입니다. ‘쟤는 원래 그런 애 아니냐?’ 라든지, ‘저 놈이 그렇지 뭐’라는 식의 말투죠. 그분의 말씀에 은총의 기운을 느꼈으면서도,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이라는 것에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무엇인가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이 있다면 긍정적으로 앞으로 나아가 도대체 나를 감동시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아야 하는데, 어설픈 자신들의 지식, 경험이 그들의 발을 붙잡는 것입니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마르 6, 2)

비록 그들의 말투가 예수님을 얕보는 말투라 하더라도 그들의 말처럼 “어디에서”라는 데에 관심을 두었더라면 그들은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분께서 어디에서 오신 분이신지, 어디로 가시는 분이신지 궁금하고 알았더라면 그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어디서”라는 궁금증을 “목수가 아닌가?”라는 이전 자신들의 경험 속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무엇인가 놀라운 것이 나에게 다가왔으면, 점점 더 앞으로 나아가 나를 새롭게 변화시켜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자기 속에 다시 갇혀버린 것입니다. 깨달음이란 깨뜨리고 나오는 것인데,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것을 깨뜨리는 것보다 자신 안에 안주하는 것을 택했습니다.

우리의 삶도 그럴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만날 때. 그와의 새로운 관계가 설정되려면, 이전의 나를 깨뜨려야 합니다.

“저 사람은 목수가 아닌가?”(마르 6, 3)

예. 목수 맞습니다. 이런 묵상을 해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강생의 신비를 묵상하면서 요셉, 마리아를 선택하신 이유, 그리고 머리 둘 곳 없는 마굿간을 선택하신 이유 등에 대해서 묵상을 많이 하지만, 그분께서 왜 목수라는 직업을 선택하셨는가에 대해서는 좀처럼 묵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신께서 이 세상에 오심에 있어 그 직업을 가진 아버지를 선택하신 데에는 의미가 있지 않겠습니까? 당신의 뜻이 예비되어 있지 않겠습니까?

당시에는 아버지의 직업은 물려지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신의 직업을 물려주는 것을 의미있게 생각했고, 아들은 아버지의 직업을 물려받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했습니다. 또한 이름 역시 자기 자신 혼자 쓰는 이름이 아니라 물려주어야 할 이름이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태어날 때 아기의 이름을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즈카르야’로 지으려 한 것은 이해될 수 있는 부분입니다.(루카 1, 59) 그렇기 때문에 유다인들은 자신의 이름값을 헛되이 살지 않았습니다. 후손이 길이 쓸 이름이기에 자신의 삶을 헛되이 살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 역시 유다인들을 본받아 나의 이름값으로 지금의 삶을 충실히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렇듯이 아버지의 직업을 물려받는 것이라면, 목수인 아버지의 직업을 본받아 예수님도 역시 목수 일을 했다는 것인데, 이 목수란 단순히 목공일만 하는 사람을 의미하지 않았습니다. 당시에 목수란 석공 미장이 대장장이 등 허드렛일을 하는 직업이었습니다. 주 하느님께서 이런 직업을 가진 이에게 역사하신 것은 당신을 따르는 이들이 당신의 손길에 자신을 내맡겨야 한다는 뜻이 담겨져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분의 작품이 되도록 나를 그분께 내맡겨야 합니다. 그분이 깎아 주시는 대로, 그분이 정으로 치는 대로, 그분이 녹이는 대로, 나 자신을 내맡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의 삶입니다.

그러나 자신 안에 갇혀 있는 사람은, 나의 경험이 최고인 양 도무지 나를 버리지 않는 사람이 그분께 그렇게 맡길 수 있겠습니까?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마르 6, 6)

참 이상한 일이다, 분명 말씀을 듣고 놀랐거늘 어찌 그 말씀에 나를 내던지지 않는가? 예수께서는 믿지 않는 그들의 모습이 답답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지금 우리 안에는 그 말씀조차도 아예 듣지 않는 이들이 있습니다. 믿음은 가지고 있되 말씀을 접하지 않는 것입니다. 미사에 겨우겨우 와서도 말씀을 건성으로 듣는가 하면, 평소에 말씀을 잘 접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거기에 어떤 놀라움이 자리할 수 있겠습니까?

어제 청년과 서점에 다녀오면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교리교사로 아이들에게 말씀을 전해야 하는데, 아무 것도 모른다 했습니다. ‘그래, 우리는 알맹이를 알고 그 알맹이를 보호해야할 껍질을 알아야 하는데, 정작 알맹이는 얘기하지 않고 껍데기만 얘기할 때가 많지.’ 무슨 얘기냐? 교리가 이렇고, 교회 안에서 지켜야 할 것은 이렇고 지키지 말아야 할 것은 이렇고…. 외적 삶에 대해서는 말이 많은데, 정작 주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조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관습, 종교적 교회의 전통, 교리, 중요합니다. 그러나 알맹이인 말씀이 빠져 있다면, 그것은 예수께서 그렇게 부르짖던 율법주의 아니겠습니까? 그분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잘 들을 수 있도록 사제는 충실히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그저 강론 시간에 신변잡기식 이야기만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그분의 말씀을 충실히 묵상해야 합니다. 이리 말해놓고 보니 제 자신이 부끄러워집니다. 말만 번지르르하니 말이죠.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마르 6, 2)

어디서 받았겠습니까? 하느님이면서도 성전을 아버지의 집이라 하시며, 학자들과 토론하던 예수님. 그분께서는 아버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나누며 지혜가 날로 자란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도 주님께 마음을 열고 그분의 말씀을 들으면 지혜가 자랍니다. 세상의 지혜가 아니라 주님의 지혜가 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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