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중 제2주간 화요일(히브 6,10-20/ 마르 2,23-28) 약속이 있는 곳엔 희망이 있습니다. “약속이 있는 곳에 희망이 있다”는 말 속에 언제나 약속에 대한 믿음과 그 약속을 기다리는 인내가 따르게 마련입니다. 약속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인내하며 기다리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북한이 비핵화를 선언하였을 때 그 약속을 믿었던 사람이 우리 국민 사이에 과연 몇 %나 되었겠습니까? 북한이 북제 사회에서 하는 약속은 이제 그 어떤 나라도 믿지를 않습니다. 약속을 이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경우에는 다릅니다. 하느님의 약속은 하느님의 이름을 걸고 하는 약속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한 번도 그 약속을 깨뜨리시지 않으셨습니다. 문제는 약속을 하시는 하느님 측이 아니라, 그 약속에 대한 믿음을 갖는 우리 인간 측에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독서인 히브리서를 보면 이 약속과 믿음의 관계를 아브라함 이야기를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선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자식을 약속하시면서 “정녕코 나는 너에게 한껏 복을 내리고 너를 한껏 번성하게 해 주겠다.”라고 맹세까지 하셨습니다. 늙은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불가능하게 보였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약속을 신뢰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그 약속에 대해 신뢰하는 태도를 오늘 독서는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끈기 있게 기다린 끝에 약속된 것을 받았습니다.”라고 설명합니다. 하느님의 약속에 대한 인간의 믿음의 태도는 “끈기 있게 기다리다.”는 데에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느님의 약속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리라.”(창세 12,2)의 약속은 아브라함 자신의 때에는 이루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그 약속을 추후도 의심해본 적이 없으며 끈기 있게 기다리며 그 약속은 믿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약속은 후대에 이루어지게 됩니다. 우리는 성미가 참 급합니다. 횡단보도가 있고 신호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단 횡단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선 내가 급하고, 귀찮고 해서 그 약속들을 무시해버립니다. 이렇듯이 인간은 자기 삶의 시간과 생활만을 생각하기 때문에 하느님의 약속도 느긋하게 기다리지를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마태 7,7). 오늘 독서도 “여러분 각자가 희망이 실현되도록 끝까지 같은 열성을 보여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라고 하십니다. 약속이 큰 것이면 큰 것일수록 희망도 크고, 희망이 크면 인내도 큽니다.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고 하였습니다. 현대인의 병폐 가운데 하나가 기다리지 못한다는 것임을 성찰합시다. |
연중 제2주간 화요일/“약속이 있는 곳에 희망이 있다” - 하성호 신부님
2007. 1. 17. 오후 2: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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