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삶을 축제로[류해욱신부님] /2007.01.16

2007. 1. 16. 오전 10:14:39

글자

 삶을 축제로…….



  오늘 우리는 연중 제 2 주일을 맞아 복음으로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예수께서 베푸신 첫 기적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가나에서 베푸신 첫 기적의 깊은 의미와 이 기적에서 행하신 어머니의 역할을 이해할 수 있는 은혜를 청합시다. 로사리오에 예수님의 공생활의 핵심 사건을 묵상하는 ‘빛의 신비’가 도입되었는데 이 가나의 기적 이야기가 제 2단의 내용이 되었지요. 예수님의 공생활을 대표하는 다섯 가지 사건 중의 하나로 선택될 만큼 이 사건이 지니고 있는 의미는 깊고 중요합니다.


  배경은 가나라는 작은 시골 동네의 혼인 잔치입니다. 가나는 나자렛에서 멀지 않은 동네이지요. 당시 이스라엘의 혼인 잔치는 보통 저녁에 시작됩니다. 저녁 해에 길게 그림자가 드리우는 시간, 조그만 시골 마을에서 잔치가 벌어지고 있는 정경을 상상의 눈으로 그려보십시오. 우리 옛날 시골 잔치가 그러했듯이 이스라엘에서도 잔치는 동네잔치이기 마련이지요. 산 아래 동네 어귀로 서서히 어둠이 밀려오면서 하나 둘씩 등불이 밝혀지고 흥겨운 음악과 춤이 어우러지는 그런 풍경을 그려보십시오. 마치 우리나라에서 동네 풍악패들이 사물놀이를 하듯이 동네 악단이 잔칫집에 와서 음악을 연주하였다고 합니다. 잔치에 온 손님들은 포도주 잔을 기울이면서 신랑 신부에게 축하의 인사를 건네고 함께 흥겨워하는 모습은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할 것입니다.


  그런데, 큰일이 생겼지요. 포도주가 떨어진 것입니다. 잔칫집에서 술이 떨어진다는 것은 손님들의 흥을 깨는 것이니 손님들을 초대한 주인으로서는 큰 망신이지요. 마리아는 단순히 손님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잔치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던 것으로 느껴지지요. 전승에 의하면 마리아는 신랑과 가까운 친척이었다고 합니다. 마리아가 먼저 잔칫집에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을 알아채시고 걱정하시면서 아드님 예수를 부르시고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을 알려 주십니다.


  성모님의 겸손한 모습을 바라보십시오. 아드님에게 다만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을 알릴뿐, 어떤 말씀도 하지 않으십니다. 아드님이 알아서 하시도록 맡겨드리는 것이지요. 공동 번역에 의하면, 예수께서 어머니를 보시고 말씀하십니다. “어머니, 그것이 저에게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러십니까? 아직 제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새 성경 번역에는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로 되어 있습니다. 두 번역 모두 예수님의 말씀이 좀 이상하게 들리지요. 겸손한 마음으로 단순히 상황을 알려 드리는 어머니에게 예수께서 너무 냉정하게 말씀하시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여기에는 번역상의 어려움이 있다고 해요. 한편 새 성경은 직역을 하다 보니, 어머니를 ‘여인이시여’로 옮겼어요. 원문 희랍어에 ‘여인’이라고 옮겨지는 단어를 쓰고 있다고 하더라도 당시 그 문화에서 그렇게 썼던 것이지요, 저는 우리말로 옮긴 것이니까 우리말다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아무리 후레자식이라고 하더라도 어머니를 결코 ‘여인’이라고 부르지 않지요. 여기에 번역의 어려움이 있어요. 이 대목을 직역을 하면 공동번역이나 새 성경에 번역한 것처럼 그렇게도 번역할 수 있지만 함축하고 있는 원래의 의미를 고려해서 의역을 하면 이렇게 된답니다.

  “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니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십니다. 그냥 저에게 맡겨 두세요. 제가 제 방식대로 처리하겠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말씀이 훨씬 쉽게 이해되지요. 효자이신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그 말씀을 들어보세요. 당신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고 느끼셨지만 어머니의 말씀에 기꺼이 당신의 때를 앞당기시는 예수님의 열려있는 마음을 바라보며 거기 함께 머무르십시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어머니는 시중들던 사람들에게 “무엇이든지 예수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고 하십니다. 아드님에 대한 온전한 신뢰를 볼 수 있지요. 그냥 알려주기만 하면 아드님이 당신의 마음을 읽으시고 그 마음이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리라는 것을 삶의 체험 안에서 알고 계신 것으로 느껴집니다. 성모님은 늘 그런 분이셨습니다. 말없이 조용히 머무르시고 일어나는 일을 바라보시면서 기다리시는 분이셨습니다. 우리도 성모님이 지니신 그런 신뢰와 의탁의 마음을 청하기로 해요.


  예수께서는 당신이 어머니께 말씀하신대로 당신의 고유한 방법으로 일을 처리하시지요. 그 모습을 바라보십시오. 정결 예식에 쓰는 돌 항아리를 놀라운 기적의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그 항아리에 물을 가득 붇도록 하시고 그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십니다. 원래는 손을 씻도록 되어 있는 돌 항아리의 물을 사람이 마시는 최상의 음료인 포도주로 변화시키시면서 형식적인 정결례보다는 사람과 사람이 먹는 음식이 더 중요함을 넌지시 가르치시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 대목을 기도하시면서 떠오르는 느낌이나 깨달음이 있으면 거기에 마음을 모아보십시오. 궁극적으로 기도를 이끌어 주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오늘 제 2 독서로 성령의 은사에 대해 들었는데 늘 성서의 말씀을 잘 알아들을 수 있는 은사를 청하기로 해요. 기도에서는 성령께 마음을 모으고 귀를 기울이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 기도 안에 머물게 되면 놀랍게도 여러분들 안에서도 지금 이 순간 다시 생생하게 이 사건이 재현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으로 포도주로 변한 그 술맛을 혀로 맛보며 잔치 맡은 이가 토했던 감탄사를 외쳐보십시오. 예수님은 참으로 우리의 삶을 물에서 포도주로 변화시켜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알아채십시오. 물과 같은 우리의 무미건조한 삶에 싱그러운 포도주의 향과 맛을 내어 주시고, 때로 고단하게 느껴지는 삶을 기쁨을 나누는 축제로 바꾸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기도를 마치면서 성모님과 잠시 담화를 나누어 보십시오. 이것은 성 이냐시오가 우리에게 권하는 방법입니다. 특별히 이 대목을 기도하면서 성모님이 지니셨던 마음을 더 깊이 알아듣고 그분이 지니신 겸손과 신뢰의 마음을 배울 수 있도록 청하십시오.



서산마루 저녁 해

긴 그림자 드리우는 시간

조그만 시골 마을 가나에서 혼인 잔치 벌어지고 있었네.

손님들은 포도주 잔을 기울이며

신랑 신부에게 축하의 인사를 건네고 있었네.


예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오셔서

포도주 마시며 마을 사람들과 기쁨을 함께 나누었네.

갑자기 많은 손님들이 몰려들어 포도주가 바닥났다네.


마리아께서 가장 먼저 포도주가 떨어진 것을 알아채시고

아드님을 부르시고 포도주 떨어졌다는 것을 알려 주셨네.

예수께서 어머니를 보시고 말씀하셨네.

“어머니, 그것이 저에게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러십니까?

아직 제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이 말씀이 함축하고 있는 원래의 의미는 이렇다네.

“어머니, 아직 제 때가 아닙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제 방식대로 처리하겠습니다.”

예수께서 당신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고 느끼셨지만

어머니의 말씀에 기꺼이 당신의 때를 앞당기셨다네.


어머니는 시중들던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네.

“무엇이든지 예수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놀라워라, 아드님에 대한 온전한 신뢰.

어머니는 조용히 머무르시고 기다리시는 분이어라.


예수께서 항아리에 물을 가득 붇도록 하시였다네.

어느 새 그 물을 좋은 포도주로 변화되었다네.

손을 씻도록 되어 있는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려 보네.


예수께서는 우리의 삶에

싱그러운 포도주의 향과 맛을 내어 주시고,

고단한 삶을 축제로 바꾸어 주시는 분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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