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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5. 월
| 마르코 복음 2장 18-22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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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도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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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승적 그리스도교 이중섭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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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가 시작된 지 벌써 몇 년이 지났습니다. 우리는 분명 새로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복음 말씀처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데, 우리 그리스도교가 과연 어떻게 해야 주님의 이 말씀을 살 수 있을까요? 불교의 두 조류처럼, 그리스도교 역시 소승적 그리스도교와 대승적 그리스도교로 나 누어 볼 수 있습니다. 대승적 그리스도교는 다음 다섯 가지를 추구합니다. 첫째, 선과 악, 성과 속, 정신과 물질이라는 이원론적 세계관을 극복합니다. 둘째, 천국의 복락만을 좇는 개인적 구원관을 버리고 이 세상이 자유와 정의와 평화의 나라로 거듭 날 수 있도록 헌신합니다. 셋째, 원죄만을 강조해 인간의 창조적 가능성을 부정하거나 숙명론에 빠지는 일 없이 인간이 축복받은 존재임을 일깨워줍니다. 넷째, 율법주의, 교리주의, 광신주의를 극복하고 지성, 덕성, 감성이 조화를 이루는 성숙한 신앙으로 나 자신과 공동체의 쇄신을 지향합니다. 다섯째, 각 민족 고유의 종교와 문화유산을 존중하고, 타종교를 배척하는 배타적 신앙을 극복합니다. 우리 그리스도교가 21세기에는 새 술을 담을 새 부대를 준비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이 현대에서 그리스도교가 살아남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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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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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는지도 모르면서 남들이 하니까 그냥 따라하거나, 남들도 다 하는 일이라 자기만 하면 괜히 뭔가 뒤처지는 듯한 느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일도 적지 않습니다. 시류나 유행을 타지 않고 소신껏 산다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려면 자신의 판단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어야 하고,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그 신념이 흔들려서는 안 될테니까요. 작은 일을 하더라도 그 일을 왜 하는지 목적과 명분을 분명히 알고 행하는 것이 소신 있는 행동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그런 소신을 갖고 계셨던 분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단식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예수님에게 와서는 다짜고짜 당신은 왜 단식을 하지 않느냐고 따집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단식은 속죄와 참회의 표시로서, 진정한 마음과 행위가 뒤따르지 않으면 위선에 지나지 않음을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교회가 하라고 하니까. 또는 다른 신자들이 그렇게 하니까 등다른 사람의 시선 때문에 행하는 단식이나 참회를 반기실 리 없습니다. 아주 작은 기도나 선행이라도 마음에서 우러나와 소신껏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박병규 | 생활성서사 | <아침을 여는 3분피정-마르코 복음>에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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