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월 15일 연중 제 2주간 월요일(다해)
복 음
[마르2,18-22]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그때에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단식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의 제자들은 단식하는데, 선생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야 없지 않으냐?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깁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헌 옷에 기워 댄 새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진다.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도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묵 상
오늘의 말씀은 극기에 대해서 묵상거리를 주십니다.
오늘의 복음에는 단식에 대한 논쟁이 나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단식을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예수님께 여쭙자, 예수님께서는 단식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야 없지 않으냐?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다."(마르2,19)
예수님께서 스스로를 혼인잔치의 신랑에 비유하시는 것은 매우 특이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리 길지 않을 시간을 예수님과 함께 지내게 될 제자들에게는 단식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사랑과 평화를 온몸으로 느끼고 깨달으며 배워 익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신랑을 빼앗기게 되면 예수님의 제자들도 단식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에 덧붙여 예수님께서는 헌것과 새것에 대한 비유의 말씀을 통해서, 단식과 같은 극기를 형식에 얽매여 행하지 않도록 당부하십니다.
극기나 희생은 마음에서 우러날 때 의미가 깊은 것이지, 겉으로만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공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40일이라는 긴 시간 동안 광야에서 몸소 단식기도를 하셨기 때문에 단식의 어려움이나 의미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과거의 관습에 젖어서 때가 되면 습관적으로 단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단식을 하도록 가르침을 주시는 것입니다.
작은 희생이라도 의미 있는 극기를 하도록 해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