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나라에서든 혼인 잔치는 즐겁고 흥겨운 자리입니다. 구약의 관습에 따르면 혼인 잔치는 보통 7일간 지속될 만큼 큰 축제였습니다. 그런데 그 기간이 길다보니 자칫하면 음식과 술이 모자라는 난감한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었습니다. 바로 오늘 복음에서처럼 말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 그리고 성모님이 참석한 혼인 잔치에서 그만 포도주가 바닥났습니다. 그러자 성모님께서 아드님에게 도움을 요청하시는데, 어쩐 일인지 예수님은 마치 거절하듯이 말씀하십니다. “저나 어머니에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아직 제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성모님은 이런 이해할 수 없는 대답에도 실망하지 않고, 계속 아드님을 굳건하게 신뢰하십니다. 이는 성모님이 하인들에게 이르신 분부에서 드러납니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예수님은 그 집안에 있는 돌항아리 여섯 개에 물을 채우게 하신 다음, 그것을 퍼다 잔치 책임자에게 갖다 주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어느새 물은 포도주로 변해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첫 번째 기적을 혼인 잔치에서 행하신 데에는 깊은 뜻이 숨겨져 있습니다. 구약성서는 자주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를 혼인 관계로 표현합니다. 신랑이 신부를 반기듯,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반기고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제1독서). 이런 배경에서 볼 때, 예수님이 중단될 위험에 처한 혼인 잔치를 극적인 방법으로 계속되도록 하셨다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이 예수님을 통해 계속된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예수님은 이제부터 펼쳐지는 공생활 중에 성부의 극진한 사랑을 하느님 백성에게 베푸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랑은 목숨까지 바치는 지극한 사랑으로서 십자가에서 완성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나의 때”는 바로 이 십자가의 시간을 뜻합니다. 하느님이 당신 백성 이스라엘을 아내처럼 사랑하셨듯이, 예수 그리스도는 새로운 이스라엘인 교회를 당신 신부처럼 반기고 사랑하십니다. 그분은 성령을 통해 교회 안에 다양한 은총의 선물을 주십니다. 지혜와 지식의 은혜로 교회를 깨우쳐 주시고, 치유의 은혜로 건강하게 해 주시며, 말씀 선포의 은혜로 교회가 성장하게 하시고, 이상한 언어를 말하는 은혜로 하느님을 찬미하게 하십니다(제2독서). 신랑의 사랑에 신부가 응답하듯이, 그리스도의 사랑에 교회도 응답해야 합니다. 그 응답에 모범을 보이신 분이 바로 성모님이십니다. 성모님은 아드님의 말씀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분에 대한 신뢰를 거두지 않고 순종의 자세를 보이십니다. 교회에 속한 우리 역시 성모님처럼 그리스도께 굳건한 신뢰와 순종의 태도를 취해야 합니다. 그럴 때 맹물같이 무미건조한 삶이 포도주와 같은 기쁨의 삶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손희송 베네딕토 신부·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
신랑이 신부를 사랑하듯이 - 손희송 신부님 2007.01.14
2007. 1. 15. 오전 9:5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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