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님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에 있는 집의 지붕은 현재의 우리와는 많이 달랐습니다. 당시 가난한 유다인들은 동굴을 파고 살거나 진흙으로 집을 짓고 살았는데 진흙으로 집을 지으며 지붕을 놓을 때, 대들보 위에 작은 나무토막들을 촘촘히 올려놓고 그 위에 다시 뒤엉킨 가시나무를 두텁게 깔았습니다. 그리고 회반죽을 해서 가시나무 위에 덮은 뒤에 다시 흙으로 평평하게 다졌습니다. 거기에다 대체적으로 진흙 집은 지붕이 높지 않았기에 사람들이 어렵지 않게 올라갈 수 있었고, 또한 쉽게 손으로 뜯어낼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지붕을 벗겨내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어렵다기 보다는 귀찮은 일이라고 할 수 있죠. 집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생활의 터전이고 보금자리입니다. 그러기에 내 집에 누군가가 구멍을 내려고 한다면 우리는 누구나 그것을 반대하고 화를 내며 다가오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복음에서 집은 예수님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상징합니다. 예수님께 다가가려는 중풍병자의 절박한 요구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 가로막혀 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둘러싸고 있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있지만 여전히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주지는 않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절박함이나 아픔보다는 먼저 나의 기도와 삶이 우선이었기에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줄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을 진실로 만나는 방법이 당신을 단단히 둘러싸고 서 있는 것이 아니라고 가르치십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지붕에 구멍을 내었듯이 주님께로 통하는 길은 자신을 단단히 둘러싼 장막에 구멍을 내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 마음 안에 주님이 있음을 확인하는 작업이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마음을 열고 주님을 숨쉬는 것이고, 자기 곁에 있는 사람들의 아픔과 사랑과 마주하며 숨쉬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도 혼자서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흔히들 사람들은 세상에서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 셋만 있어도 그의 인생은 성공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때로는 “셋이 아니라 단 하나만이라도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마저 들곤 합니다. 집회 6,14 에서도 “성실한 친구는 안전한 피난처요. 그런 친구를 가진 것은 보화를 지닌 것과 같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가장 값진 것이 늘 가장 가까운데 있듯이, 우리 삶의 보화 역시 우리의 가족과 벗과 이웃들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을 향해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은 무엇보다도 주님을 향해 내 영혼이 숨쉴 수 있는 구멍을 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주님을 숨쉬고 다른 형제자매를 숨쉬기 시작할 때 우리는 우리 가운데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사랑의 일을 시작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 저와 함께 사는 사람들의 숨소리를 듣게 하소서. 그들의 숨소리를 느끼게 저를 깨우소서. 아멘.” |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내다 - 이회진 신부님 / 2007.01.12
2007. 1. 12. 오후 10: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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