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의 절규 [ 류 해욱 신부님 ]

2006. 11. 2. 오전 10:46:37

글자
눈먼 거지의 절규


  아름드리 무화과나무들이 가로수처럼 늘어져 있는 고도 예리고는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드물게 기름진 땅을 지닌 부유한 도시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 나오는 길가에 앉아 구걸을 하고 있는 눈먼 거지의 삶을 생각해보면 예리고라는 도시의 이미지와 대조를 이룹니다.


  저는 이 대목을 기도하면서 마음속으로 자문했습니다. “네가 단 한번이라도 소경의 삶을 깊이 생각해보고 연민의 마음을 지녀보았느냐? 가까운 시각장애인 친구가 있는데 정말 네가 그 친구의 처지가 되어 헤아려 보았느냐?” 부끄럽게도 없었습니다. 내가 정말 그 처지, 그 상황이 된다면 그저 숙명이려니 여기며 받아들일 수 있는가?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많은 이가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그를 꾸짖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소경의 처지가 되어 보고도 꾸짖을 수 있는지를 묻게 됩니다. 아무도 그럴 수 없겠지요. 우리는 늘 역지사지, 다른 사람들의 처지에서 생각해보는 마음을 지녀야 할 것입니다.


  시각장애인들은 청각에 예민합니다. 그 시각장애인이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 무슨 일이냐고 묻습니다. 그가 묻는 물음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그의 직감입니다. 그는 자기에게 어떤 기회가 왔다는 것을 직감으로 알고 어떤 일이 있어도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리라 생각하면서 부르짖었습니다. 부르짖음은 바로 짐승의 절규와도 같은 강한 염원입니다. 그 외침 앞에 다른 사람들의 꾸지람은 문제도 되지 않습니다. 더욱 더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저에게 이 외침은 바로 신뢰로 느껴집니다.

  “당신은 하실 수 있습니다. 아니, 당신은 꼭 그렇게 해 주실 것입니다.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라는 신뢰에 가득 찬 외침이고 이 외침을 예수님께서 들으신 것이지요.


  이 외침을 들으신 예수께서 깊이 마음이 움직이십니다. 예수께서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 늘 연민을 느끼시는 분이지요. 마음속의 한이 큰 소리가 되어 나오는 그의 절규 앞에 깊은 연민을 지니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예수께서는 모르시면서 물으시는 것이 아니지요. 분명한 원의를 표현하기를 원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스승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다시 볼 수 있다면! 시각장애인이 지녔던 그 답답함, 억울함, 한이 느껴집니다. 어둠의 심연 속에 있던 젊은이의 절규 앞에 우리도 깊은 연민을 느끼게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떨어지자 곧 그는 다시 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기쁨이 얼마나 컸을까요? 놀라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바로 구원이었습니다.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믿음은 바로 하느님이 자기의 염원을 들어 주실 것을 아는 믿음이고 자기에게 일어난 이 모든 것이 바로 하느님께서 하여 주신 것을 아는 믿음이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 말씀 안에 머물며 그 시각장애인과 함께 우리 모두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립니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강론 묵상 모음집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