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연중 30주간 월 루가 13, 10-17- 남의 아픔을 헤아리는 것
평범하게 살아가던 할아버지 한 분이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암 진단을 받은 그 날부터 이 할아버지는 매우 난폭해져 식구들을 향해서 욕을 하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까지도 욕을 퍼붓습니다.
심지어는 아무도 만나려고 하지 않고 병실에 입원해서도 아무도 만나지 않았습니다.
그 할아버지는 간호사와 의사들에게까지도 포악하게 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가족들은 할아버지를 돕기 위해 할아버지의 옛날 친구들을 들여보냈지만 친구들도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자기의 친구들에서 큰 소리를 치며 쫓아버리고 말았습니다.
또 이번에는 할아버지와 절친하게 지냈던 은사들을 보내보았지만 그것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신부님을 보냈더니 신부님도 욕만 먹고 쫓겨났습니다.
카운슬러를 들여보내도 소용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동네에서 이 할아버지가 가끔 만나던 동네 꼬마가 하나 있었는데 할아버지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에 쫓아왔습니다.
식구들이 반 호기심으로 ‘그럼 네가 들어가서 할아버지를 만나 봐라’ 하며 그 아이를 들여보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20~30분 동안 어린 소년이 할아버지를 만나고 나오더니 그 이후로 이 할아버지가 완전히 변했습니다. 태도가 갑자기 누그러지고 부드러워지고 사람들도 만나시고 얘기도 하시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너무나 이상해서 그 어린 소년을 붙들고 묻습니다.
“너, 할아버지하고 무슨 얘기를 했니?”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어요.”
“그래도 할아버지하고 20~30분 동안 함께 있었잖니, 너는 그동안 도대체 뭘 했니?”
그랬더니 그 어린 소년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저요, 할아버지하고 같이 울었어요.”
측은한 마음과 동정의 차이가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측은한 마음은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며, 상대방에게 필요한 것을 이루어주려는... 바라고 원하는 것이 꼭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나, 진정 상대방의 마음과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헤아리기 보다는 단순히 ‘안됐다’는 생각에... 자신에게 여유가 있기에 도와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께서 지니신 여러 마음 중에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마음이 있다면, 바로 “측은지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늘 우리를 측은한 마음으로 바라보시며 우리의 아픔, 고통에 함께 하시며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시는 분이십니다.
“힘내라며..” “괜찮다며...” “다시 시작하자며...” 우리를 격려해 주십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의 측은지심을 볼 수 있습니다.
18년 동안 병마에 사로잡힌 여인을 보며 예수님께서는 측은한 마음으로 함께 했을 것입니다.
여인의 아픔을 동정이 아니라, 측은한 마음으로 함께 했기에, “일할 날이 일주일에 엿새나 있습니다. 그러니 그 엿새 동안에 와서 병을 고쳐 달라 하시오. 안식일에는 안 됩니다.” 라는 말을 듣고도 치유해 주신 것입니다.
거창한 말이 아니라, 위로한답시고 이런, 저런 말씀이 아니라, 단 한마디 “여인아! 네 병은 이미 너에게서 떨어졌다.”고 하시며, 여인에게 손을 얹어 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남의 아픔에 동참하는 것은, 예수님처럼 측은지심을 지니는 모습은, 이러저러한 말이 아닙니다. 측은한 마음으로 그저 가만히 함께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아픔을 함께 느끼려 하고, 그 아픔이 나의 아픔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좋은 위로요, 격려입니다.
바로 예화의 어린 소년처럼 말이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