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눈 [최호야옹신부님]

2006. 11. 2. 오전 10:38:38

글자
마르코10,46-52

어느날 길을 가다가 깜짝 놀랄만한 막창집 광고판을 봤습니다... 빨간 글씨로 옆으로 움직이면서 내용을 보여주는 광고판인데... 거기엔 이런 글귀가 보였습니다... ‘드럽고 쫄깃한 막창’ 뭔가 잘못되었겠지 생각하고.. 다시 한 번 움직이는 글자를 처음부터 보니... ‘드럽고’가 아니라.. ‘부드럽고’인데..움직이면서 지나갔던 것이었습니다.. 제가 ‘부’자를 못 본 것입니다... 혼자서 웃으면서 지나쳐온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의 눈은 어떻습니까...지금 잘 보고 계십니까... 오늘 예수님께서는 이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이었습니다..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을 향해 가시는 길입니다... 그 길에서...어떤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는 눈이 멀어서... 잘 볼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능력이 없어서... 삶에 대한 희망도 볼 수 없었던 거지였습니다... 그의 삶은 얼마나 불편하고 또 절망스러웠겠습니까... 그러한 그는 예수님께서 지나가는 소리만 듣고..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그러는 그에게 사람들은 조용히 하라고 꾸짖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의 눈을 뜨게 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앞을 볼 수 있는 눈을 선물로 주십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은 단지 이렇게 선물을 주고 받는데서 끝나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 복음 말씀 안에는 숨겨진 사실이 있습니다...반전이 있습니다.. 사실 그 소경의 눈은 이미 떠 있었습니다... 육신의 눈이 아니라...신앙의 눈 말입니다.. 신앙의 눈이라는 것은 예수님을 볼 수 있는 눈을 말합니다 그 증거는... 바로 곁에 계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과는 달리.. 그는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을 향하는 예수님을 눈 앞에 두고 높은 자리만 바라보는 제자들과는 달리 그는 예수님을 따라 나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눈 앞에 생명의 길을 두고서 다른 길을 찾는 사람들과는 달리.. 그는 생명의 길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의 신앙의 눈은 육신의 눈을 뜨게 해 줍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사실 우리는 눈 앞에 있는 걸... 보지 못하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바로 앞에 예수님을 두고도... 엉뚱한 곳에서 예수님을 찾기도 한다는 말입니다.. 내 앞에 낮추고 낮추어져 종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을 보고도... 더 높은 곳만을 바라본다는 말입니다. 바로 앞에 영원한 생명을 위한 길이 있는데.. 엉뚱한 곳에 그 길이 있다고 여기기도 한다는 말입니다.. 무엇이 우리 신앙의 눈을 가리고 있습니까..? 누가 우리 신앙의 눈을 가리고 있습니까..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 스스로 가린 욕심이며 조급함입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을 놔두고...헛 것을 찾는 우리에게..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오늘...영원한 생명을 위한 길을 놔두고... 다른 길을 가는 우리에게...말씀하십니다.. 바로 욕심과 조급함 속의 우리에게... 우리의 주님께서는 촉구하시며 말씀하십니다.. “자..이제 신앙의 눈을 떠라... 네 신앙의 눈이 너를 살릴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신앙의 눈은 바로 우리 곁에 있는 예수님을 볼 수 있는 눈입니다.. 눈을 크게 뜹시다... 바로 신앙의 눈을 크게 뜨고...바라봅시다.. 그래서 누군가를 통해 우리 곁에 이미 와 계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아멘
최 호야옹 [요한 보스코 ] 신부님
   

 
Robin Spielberg / Remembering You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강론 묵상 모음집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