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30주일 - 하성호 신부님

2006. 10. 29. 오후 3:43:44

글자

연중 제 30주일 (예레 31,7-9/ 히브 5,1-6/ 마르 10,46-52)

    빛을 보지 못하는 맹인의 소원은 세상을 자기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이고, 기적적으로 시력을 회복해서 빛을 보게 되었을 때 그 기쁨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을 것입니다. 세상이 엄청나게 다르게 다가옵니다. 촉각과 청각과 후각을 총 동원해서 사물을 인지하긴 했지만 늘 상상의 세계에 갇혀있어야 했는데 비해, 시력을 회복하게 되면 이젠 눈으로 직접 사물을 인지하게 됩니다. 빨갛게 익은 사과의 아름다운 빛깔과 형체를 눈으로 보는 그의 세상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 변화는 형언할 수가 없을 겁니다.


    빛을 보기 전의 세상과 빛을 보게 된 후의 세상은 너무나 달라진 것입니다. 그 사람이 달라진 세상에 적응하는 모습을 한 번 상상해보십시오. 빛을 보지 못하다가 빛을 보게 된 사람에겐 엄청난 기쁨도 주어지지만, 그에 못지않게 힘든 적응 과정의 과제도 주어집니다. 새롭게 펼쳐지는 새 세상을 새롭게 익혀야 합니다. 빛을 보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눈을 감고 지팡이를 고집한다면 그는 새로운 세상에 사는 것이 아닙니다. 연인의 아름다운 모습을 눈으로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눈을 감고 손을 더듬어 모습을 파악하려 한다면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고, 우스꽝스럽겠습니까?


    우리는 세례성사를 통하여 빛의 자녀로 새로이 태어났습니다. 이 말은 세례 받기 전과 후의 세계가 완전히 다른 세계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새 세상에선 분명히 새로운 생활양식이 요구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변화를 꺼리는 본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세례로 새로이 태어났다고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머리로 받아들이는 이론이고 생활방식은 과거나 별반 차이가 없는 생활을 합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죄를 범하거나 반 복음적인 과거의 생활 자세, 심지어는 미신에 기대기까지 하는 생활 태도를 그대로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길들여진 과거의 모습에 집착하는 인간 본능 때문에 사실 나 자신이 복음화 된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선 은총임과 동시에 십자가 입니다. 새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은 큰 기쁨이지만 새 사람으로 살기 위해선 묵은 인간을 청산하는 결단을 반드시 내려야 합니다. 새 집을 짓기 위해선 옛 집을 허물어야 하듯이, 새 세상에 살기 위해선 옛 삶을 반드시 청산해야 합니다. 그 과정이 아무리 십자가라 해도 새로운 세상에 살기 위해선 새 세상의 생활양식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를 하지 못하면 마치 봉사가 빛을 보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눈을 감고 지팡이에 의지하려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새로이 태어났으면 완전히 새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마르 2,2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리코의 바르티매오라는 눈먼 거지가 눈을 뜨게 된 기적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바르티매오는 예수님께 “스승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라고 간청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하시자, 그는 다시 보게 되었고, 그때부터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바르티매오는 예수님을 만나 빛을 보게 되자 참 빛이신 예수님을 따라나서는 새로운 삶의 양식을 택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운명을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여 제자라는 새 삶을 택한 것입니다. 새 사람이 되었으니 새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바르티매오의 변화된 모습이 바로 우리 안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우린 세례를 받으며 교회에서 신앙을 청한다고 외쳤습니다. 신앙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주님의 사람이 되겠다는 전인적인 나의 결단을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바라는 삶을 살겠다는 약속을 이미 세례를 통해 한 것입니다. 빛을 온전히 보게 된 사람이 자꾸만 눈을 감고 지팡이만 고집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살지 말아야 합니다. 바르티매오 사도처럼 주님의 운명을 나의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하겠습니다. 죄악을 멀리하고 구원의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이기적인 본능을 이기고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생활양식을 택해야 합니다. 온갖 악습에 미련을 두지 말고 과감하게 주님께로 돌아서야 합니다. 신망애(信望愛)의 복음 삼덕의 생활을 하여야 하고, 이 사회를 복음화 하기 위해 사귐과 나눔과 섬김의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어지러운 이 세상에 길 한 모퉁이라도 비추는 작은 등불이 된다면 우린 행복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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