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30주일 - 방효익 신부님

2006. 10. 29. 오후 3:40:50

글자
오늘 제1 독서는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았던 것은 물론이요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바빌론으로 유배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레미아 예언자를 통하여
하느님께서 새로운 탈출을 약속해주는 내용(예레 31장)의 일부입니다.
그러나
유배를 가서도
끝까지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으로 남아있던 이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탈출을 시도하실 것인데
그 형태는 마치 시온이라고 불리는 예루살렘으로
순례를 가는 것처럼 이루어질 것이라고 합니다.

예루살렘으로 떠나는 순례의 대열에는
눈먼 이와 다리를 저는 이를 포함하여
하느님께로 돌아선 모든 이들 포함될 것이라는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외적인 장애를 가진 이들이
예루살렘으로 순례를 떠나는 대열에 낀다는 것은
이들이 모두 회개한 이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전통에 맞춰서
성지 순례는 회개하려는 이들과 이미 회개한 이들이 가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제2 독서는
구약시대의 대사제의 직무와
예수님의 사제로서의 직무를 비교하는 중요한 내용입니다.
구약의 대사제나 예수님이나
사제직을 자기가 원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부르심과 하느님의 위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구약의 대사제는 인간으로서 죄인이었지만
신약의 대사제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같은 인간이셨음에도 불구하고 죄가 없으십니다.
구약의 대사제는 백성들과 자신의 죄를 위해서 제물을 바쳤지만
신약의 대사제이신 예수님께서는
단지 우리의 죄를 위해서만 제물로 바쳐지셨습니다.
구약의 대사제는 레위 부족의 혈통을 이어서 사제직을 수행하지만
신약의 대사제이신 예수님께는
하느님께서 직접 멜키체덱처럼 영원한 사제 직무를 주신 것입니다.

이렇듯 예수님께서 수행하시는 사제 직무는
당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 인간을 위한 직무이며,
그 효력이
한 번에 그치고 마는 일회적인 제사를 봉헌하는 직무가 아니라
영원한 효력을 지니는 구원의 제사를 봉헌하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복음은
비록 예레미아 예언자의 예언과 같은 희망과 회개의 순례는 아니지만
예수님께서
수난과 죽음의 여정을 위해 예루살렘에 들어가시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치유의 기적을 베푸시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많은 군중과 함께 예리코에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시고 40일 동안 단식을 하시면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기 위해 준비를 하셨던 곳에서 가까운
예리코에 가셔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는 순례의 여정을 위해
마음의 준비를 하셨던 것 같습니다.
오아시스가 있기 때문에
많은 과일을 비롯해서 농작물이 풍부한 지역인
예리코에는 헤로데의 호화궁전이 있는 곳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들어가셔서 영원한 대사제의 직무를 수행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리코를 떠나실 때
바르티매오라는 눈먼 거지가 길가에 앉아 있다가
예수님께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소리칩니다.
눈먼 거지가 “나자렛 사람 예수님”이라는 소리를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님”이라고 부른 것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고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자비를 베풀어 달라”는 눈먼 거지의 호소는
유다인들의 역사에서 솔로몬에게까지 올라가는 놓칠 수 없는 기도문입니다.
눈먼 거지는
군중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생결단으로 예수님께 간청합니다.
복음사가는 눈먼 사람의 끈질김을 간략하게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걸음을 멈추시어 그를 부르시고,
사람들은 “용기를 내어 일어나게” 하고 부추깁니다.
그러자
눈먼 거지는 걸치고 있던 옷을 벗어던졌다고 합니다.
구약성경에서
아람의 군대가 이스라엘의 추격을 받고
살아남기 위해 취했던 행동으로 표현하듯이(2열왕 7,15)
인생을 거저 살려고 하는 구걸을 그만두고
새롭게 살아가기 위해 걸치고 있던 옷을 벗어던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구체적인 치유행위를 하신 것이 아니라
하혈하는 여인에게 하셨던 것처럼(마르 6,34)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하십니다(이사 42,18-20 참조).
예수님께서는 이미 제자들에게도 믿음을 요구하셨습니다(마르 8,34).
불신은 눈을 멀게 하고 믿음은 눈을 뜨게 합니다.

눈먼 거지는
단순하게 시력을 회복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는 자격을 얻기도 했습니다.
눈이 멀었던 이가 이제 예수님을 추종하는 이로 변화되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빌붙어 근근이 살아가던 눈먼 사람이
눈을 뜬 다음에는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이고,
동시에 예수님께서 걸어가셔야 할
수난의 길을 함께 걸어갈 순례의 동반자로 바뀐 것입니다.

눈먼 거지가 눈을 뜬 다음
“예수님을 따라 길을 나섰다”는 것은
육신의 눈이 먼 상태에서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정신과 마음이 눈먼 상태에서도 벗어났다는 회개의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눈먼 거지는
겉옷을 벗어던지면서 자신이 용기를 내기도 했지만
예수님의 부르심을 가르쳐주는 군중들의 도움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서
하느님께로 인도해주는 이를 거부하는 이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이야말로 모든 지혜를 다해 꿰뚫어본다고 생각하면서
하느님의 도우심과
이웃의 신앙적 도움을 거부하는 이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눈먼 이는 죄를 짓는 인간을 상징하고,
하느님을 모르는 이와 하느님을 멀리 떠난 이들을 상징합니다.
또한
눈먼 이는 자신을 안내자로 삼고 살아가는 이를 말합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로 가는 순례의 여정에서,
영적 여정에서
자신을 안내자로 삼는다면 바보의 제자가 되어
자신은 물론이요 이웃까지도 눈을 멀게 합니다(성 베르나르도).

구원의 길로 이끌어주시는 예수님은 물론이요
안내자를 거부한다는 것은 눈먼 상태로 그냥 살아가겠다는 것이며,
하느님의 은총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우리를 비춰주시는 빛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눈이 번쩍 뜨이게 합니다.
오늘 복음의
눈먼 거지처럼 간절함으로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십시오.
그리스도로부터 진리를 볼 수 있는 힘을 받으십시오.
하느님과 인간을 뚜렷하게 알아볼 수 있도록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나오는 빛을 받아들이십시오.

믿음을 통하여
예수님을 다시 보게 된다면
우리 역시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길을 따라 나설 수 있습니다.

우리 죄를 위하여,
눈먼 우리의 눈을 뜨게 해주시려고
당신 자신을 스스로 제물로 바치신
영원한 대사제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우리의 운명을 바꾼다면
그때에
우리는 밝고 맑은 눈으로,
마치 바빌론 유배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처럼,
눈물로 씨 뿌리던 이들이 환호하며 곡식을 거두는 것처럼
우리 입은 웃음으로,
우리 혀는 환성으로 가득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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