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로부터 온 자신의 근원, - 정창주 신부님

2006. 10. 29. 오후 3:39:59

글자

연중제29주간토요일 2006.10.29.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나가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그리고 날이 새자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으셨다.” 
오늘 복음은 우리를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를 뽑아 세우시는 
거룩한 첫 파견의 자리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자신을 당신의 제자로 뽑아 세우셨던 
하느님과 나와의 첫 만남의 자리로 우리를 불러 세웁니다. 
이제 열 두 제자를 뽑아 세우시는 그 현장을 눈여겨봅시다.

  열둘은 많은 제자들 가운데 선택된 열둘입니다. 
그리고 이 선택은 예수님께서 밤을 새우며 기도하심으로써 신중하게, 
아주 신중하게, 또 기도 중에 아주 깊은 기도 중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는 마치 태초에, 깊은 고요와 어둠 속에서 천지창조가 이루어진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열 두 제자를 뽑으신 것은 인간을 향해 하느님께서 새로운 창조를 행하신 것입니다. 
이와 똑같이 예수님께서 세례 때 우리를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뽑아 세우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 자신을 새롭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분의 기도 속에 우리의 어둠은 빛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주님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셨고, 또 기도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사람이요, 주님의 기도로써 만들어진 사람입니다. 
이제 우리의 신적인 기원이, 하느님으로부터 온 그 근원이 우리의 정체성을 결정짓습니다. 
과거 우리 자신의 단단한 껍질은 하느님의 새 창조로 부서졌고, 
우리의 사명은 인간의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것이 되었습니다.

  한편 열 두 제자는 모두 다양한 성품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다양한 사람들을 뽑으셨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는 길에서 함께 할 동료들, 즉 형제, 자매들이 있습니다. 
서로를 위해,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존재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소중한 하느님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하느님의 뜻이 실현되는 길이 
우리 안에 다양하게 열려 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합니다. 
  열 둘 중, 그토록 신중하게 뽑으신 열 둘 중에도 
훗날 당신을 팔아넘긴 배반자, 유다 이스카리옷이 있었습니다. 
우리도 배반의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배반은 그 뽑힌 근원을 떠나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를 뽑아 세우신 시초에 “기도”가 있었고, “하느님”이 함께 계셨으며, 
세상의 소란스러움을 떠난 “침묵”과, 그리고 그 가운데 이루어진 “새로운 창조”가 있었습니다. 
“기도”, “하느님”, “침묵”, “새 창조”, 우리의 근원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근원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배반자가 됩니다. 
기도를 사랑하십시오. 하느님을 사랑하십시오. 
하느님과 함께 있는 침묵을 사랑하십시오. 매일 매일 새로운 창조를 기억하십시오.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은 성 시몬과 성 타대오 사도 축일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느님의 사도로 불림을 받고 뽑혔던 그 거룩한 순간, 우리의 세례를 되새깁시다. 
예수님이 사도들과 함께 하셨던 주요한 활동은 사람들을 치유하는 것이었습니다. 
말씀과 능력으로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병들어 있는 사람들을 치유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사도로 태어난 그 순간, 우리에게도 이 사명과 능력이 주어졌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한 상본에는 이러한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 그림에는 예수님이 손을 펴서 나병환자에게 다가서고 있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뒤로는 제자들로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줄 지어 서서 예수님의 손 모양을 바라보며, 
자신의 손을 펴서는 그대로 따라 하고 있습니다. 
“군중은 모두 예수님께 손을 대려고 애를 썼다. 그분에게서 힘이 나와 모든 사람을 고쳐 주었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이 이 세상에 예수님의 치유를 일으키는 예수님의 손이 되어야 함을 똑똑히 기억합시다. 
그러나 치유는 우리 자신의 힘에서 비롯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만 하느님의 영이 우리를 관통할 수 있도록 자신을 도구로 내어드려야 합니다. 
하느님께로부터 온 자신의 근원, 자신의 정체성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며 
잘 돌보는 사도들이 우리네 신앙 공동체에 많이 늘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복자 성당 정창주(프란치스코) 보좌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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