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연중 제 30 주일. - 조성호 신부님

2006. 10. 29. 오후 3:42:54

글자

나해 연중 제 30 주일.
2006. 10. 29.
중계본동,

 

 

예레 31, 7-9.
히브 5, 1-6.
마르 10, 46ㄴ-52.

 

 

    복음을 읽다보면 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복음사가들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의 삶을 도정에 있습니다.  길이 신앙인에게 있어 주 예수라고 할 때, 우리가 이 도정에서 예수와 함께 가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복음을 보면 그 길에  함께 가고 있다는 것이 단순히 외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길 위에 예수와 함께 가는 이들과 길 변두리에 물러서 있는 사람. 예수를 둘러싸 예수의 일행이 되고 있는 사람들, 그러나 그 사람들이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길가에 밀려나 있는 한 사람, 그는 길 위에서 예수와 함께 가고 있지 않으나 그에게 신앙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길에서 벗어나 있는 바르티매오는 늘 삶에서 무엇인가를 갈구하는 사람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에 실망하고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무언인가를 보려하는 사람이고, 그는 그런 면에서 소경이 아닙니다. 그의 보려하는 노력은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보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길에서 예수와 함께 하는 이들 중에 군중에 묻혀 있는 이들은 자신들이 예수와 함께 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화려한 주목을 받고 있는 예수 곁에서 그 빛을 누려보고 싶을 뿐입니다. 그들은 보는 것처럼 보이나 보는 것이 아니고 그저 빛 가까이에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실상은 예수의 죽음으로 잠시 빛이 꺼져갈 때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이 두 경우의 사람들은 이제 자신들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예수와 함께 걷던 사람들은 예수를 가리켜 나자렛 사람 예수라고 합니다. 이들은 그저 수많은 이름 중에서 구별되는 이름으로 '나자렛 예수'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인가를 갈구했던 바르티매오는 그간 예수에 관한 소식을 들으며 그가 바로 구원자임을 감지했고, 예수가 지나간다는 말을 듣자 예수님을 보고 "다윗의 자손" 이라고 외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고백하는 메시아라는 뜻입니다. 그가 그간 듣고 가슴 속에서 고백해왔던 것이 터져나오는 순간입니다. 볼 수 없었으나 그는 메시아 예수를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소경의 외침을 가로막습니다. 그들의 길에 낯선 이가 그것도 자신들이 밀쳐버렸던 이가 올라서는 것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얼마나 많습니까? 자신들의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고 가로막고, 방해하는 세력들. 이것은 교회 안에도 존재하는 모습입니다. 신앙인인 것처럼(그리고 사실은 신앙인이다. 비록 부족하다 해도) 중심에 서 있으면서 진정으로 주님의 소리를 듣고, 주님의 삶을 쫓아가는 이들에게 보란듯이 비웃고 중심에 서지 못하게 하는 이들. 왜 그리 바보같이 사느냐며 비아냥하듯 삶을 비웃고 있는 이들. 이런 모습은 교회 내외로 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이 소경이 그런 비웃음이나 비아냥에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에겐 예수밖에 없습니다. 그저 예수를 보고 싶고, 예수와 걷고 싶을 뿐입니다. 누가 방해한다 하더라도 그저 예수를 만나 대면하고 싶습니다. 이런 믿음이 있겠습니까? 그 무엇이 방해한다 해도 난 예수를 찾을  것이라고 더 큰 소리로 외쳐댈 신앙이 나에게 있겠습니까? 신앙인에게 포기는 없습니다. 나의 기도는 어떻습니까? 나의외침은 어떻습니까? 대충 하다가 말아버리는 것은 아닙니까?

 

    이 소경의 놀라운 끈기만큼이나 놀라운 사건은 바로 이 소리에 예수께서 걸음을 멈추셨다는 것입니다. 분명 예수께서는 예루살렘 목적지를 향해 바삐 가는 중이셨습니다. 복음에서 "떠나실 때" 라는 것은 긴박함을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예리코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그곳을 지나 목적이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발걸음이었다는 것이죠. 그런데 예수께서 "걸음을 멈추십니다" (마르 10, 49) 오랜 시간을 두고 주석자들이나 영성가들은 이 대목이 복음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 중의 하나라고 말합니다. 당신이 가야할 길을 향해 바삐 걸어가시는 예수님. 그 길은 죽음의 길이고,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해도 한 사람의 외침에 걸음을 멈추신 것입니다. 그 한 사람을 위해서.

 

    그렇습니다. 예수께서는 모든 이를 구원하러 오셨지만, 결국은 한 사람을 위해 존재하시는 분이십니다. 바로 나를 위해 존재하시고, 내가 소리 높여 주님을 향해 외칠 때, 그 어떤 것이 나를 방해한다 해도 내가 그분을 향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으며 외치고 또 외쳐댈 때, 그분께서는 나의 소리를 들으시고 걸음을 멈추시는 분이십니다. 혹 내 기도를 그분께서 들으실까? '그 수많은 기도 중에서?'라고 의문을 품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게 의문을 품기 전에 과연 나는 이 소경의 소리처럼 강하고 애절하게 외쳐댔는지, 내 믿음이 누구도 침범하지 못할 만큼 강한 것인지를 먼저 살펴야 할 것입니다. 이 소경의 모습은 앞서 나온 제자들의 믿음이나 간질병을 앓는 아이의 아버지의 믿음과는 비교되는 것입니다.(마르 9, 14-29) 그는 "하실 수만 있다면" (마르 9, 22)이라고 말하지만, 이 사람은 예수께서 '보게 해달라고' 그렇게 하시는 분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그를 살립니다. 예수께서는 늘 이 믿음을 보십니다. 믿음이 있다면 우리는 못할 것이 없습니다. 믿음이 바로 우리를 구원합니다. 우리는 외치지도 않고 믿음이 없다고 투덜대거나 포기합니다. 저는 미사 때마다 건조하게 앉아있는 이들을 보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시시때때로 '아멘'을 외쳐대는 저들만은 못하더라도, 적어도 주님을 만난 사람의 생기는 느껴져야 하는데,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주님을 만난 사람이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것 아니겠습니까? 두 손을 꼭 모으고 합장을 한 모습에서도 간절함이 배어나오지 않는다면(합장은커녕 두 손을 그냥 툭 떨구고 서 있는 모습은 왜 그리 많은가? 그건 분명 기도하는 자세는 아니다. 아무리 우겨대도 그건 분명 아니다. 그게 기도의 자세일 수 없다), 우리는 그저 예수 주변을 둘러싼 군중들에 불과하게 됩니다.

 

    그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됐습니다. 분명 믿음이 우리를 구원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구원된 모습입니다. 믿음이 우리를 구원하지만, 구원된 모습은 삶으로 드러납니다. 결국 믿음은 삶의 모습 즉 행동으로 완성되어 간다는 것이죠. 이제 변두리에 있던 이가 길의 중심에 섭니다. 그저 익명의 군중이 아니라, 생각 없이 예수 주변을 맴도는 것이 아니라 예수와 함께 걷습니다. 예수의 길을 걷는 것이고, 예수와 진정한 도반이 된 것입니다. 그의 길은 미루어 예측할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향한 길이 수난 죽음의 길이기에 그는 분명 제 십자가를 지고 가는 길을 선택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는 진정으로 볼 수 있게 됐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습니다.

 

    나는 얼마나 갈망하고 있습니까? 주님을 뵈러 오면서, 주님과 함께 하고 있다면서 어떤 모습으로 앉아 있습니까? 나의 외침은 웅얼거림입니까? 진정 주님을 찾는 외침입니까? 누군가 아니면 무엇인가 내가 주님을 향해 가는데 방해하고 있다면 나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사람들의 방해에도 외쳐대던 소경입니까? 아니면 이내 포기해 버리는 나입니까? 앉아서 주님을 만나고 볼 수 있게 되어 예수를 따라가던 바르티매오처럼, 나도 여기에서 주님을 만나 과감히 일어나 생활 속에서 그분과 삶을 걸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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