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0.30. 월요일
| 루카 복음 13장 10-17절 | ||
| “여인아, 너는 병에서 풀려났다.” | ||
| 자신에 대한 수치감,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들, 귀한 존재, 치유 이성우 | ||
| 예수님은 열여덟 해 동안이나 자신을 짓누르는 병에 시달리던 여인을 보십니다. 허리가 굽어 몸을 조금도 펼 수 없었다는 것은 서 있기도 힘들 정도로 자신의 존재에 대한 혐오감과 수치감이 컸다는 것입니다. 당당하게 자신을 사랑하며 허리를 꼿꼿이 펴고 살기는커녕 극도로 자신을 비하하여 바닥만 보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존재가 다른 이와 너무도 다르다는 생각 때문에, 다른 이가 자신을 볼까봐, 부끄러운 자신이 드러날까봐 늘 불안과 두려움에 떨던 여인이었습니다. 감히 예수님께 가까이 다가오지도 못하는 여인이기에 예수님이 가까이 부르십니다. “여인아, 너 자신을 그토록 혐오스럽게 여기고 쭈그러들게 하고 허리를 펴지 못하게 하며 땅만 보고 살게 만든 그 병마, 그 생각들에서 너는 풀려났다. 왜냐하면 하느님이 너를 소중하고 귀하게 여기며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나도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에게 손을 얹는 것은 너도 나와 같은 귀한 사람이라는 의미란다. 네가 혐오스럽고 수치스러운 존재라면, 내가 너를 만지고 너를 이토록 사랑하겠니? 너는 나처럼 귀하고 훌륭한 존재란다. 너를 병들게 만든 네 생각에서 너는 풀려났다. 너는 귀하고 소중한 하느님의 모상이 들어 있는 딸이란다. 하늘과 땅에서 하나밖에 없는 내 딸아, 너도 너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기면 좋겠구나. 나의 명령이다. 너는 너를 사랑하고 귀하게 여겨라.” 여인은 예수님의 사랑을 받고 자신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존재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뒤 여인은 누구보다도 당당히 허리를 펴고 꼿꼿이 일어서서 살게 되었습니다. | ||
| 체념 | ||
| 내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그리고 내가 한탄에 잠겨 있는 동안 귀중한 내 시간은 야금야금 나 스스로 만든 불행에 갉아 먹혔다. 나중에는 내 건강한 신체적 기능마저 그 상실감 속에 병들어갔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내가 정작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현재의 소중한 내 시간이요, 세상과 나 자신에 대한 믿음과 희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조금 불편하고 힘들며, 불확실해졌다는 이유만으로 그 소중한 것을 잃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자 나의 병은 앞으로 내가 잘 보살피고 다스려야 할 손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쩔 수 없이 찾아든 병마를 손님처럼 받아들이기로 체념하자 신기하게도 다른 것들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때로는 몸에서 오는 불편이 나를 괴롭히고 짜증나게 만들고 슬프게 하지만, 나 자신과 삶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 이제껏 내가 살아온 방식과 내가 추구해온 것들이 좋은 의도와 선한 측면도 많았지만, 그 위에는 욕심과 집착, 시기심과 경쟁심이 덕지덕지 앉아 있었음도 새로이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병으로부터 배웠다.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느끼고 받아들인 다음에야 비로소 겸손해진다는 것을, 체념은 영혼을 자유롭게 한다는 것을….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모든 것은, 그것이 고통이든 기쁨이든 우리에게 뭔가를 말해준다. 물론 우리가 그것을 들으려 한다면 말이다. 삶은 그 자체로 우리의 스승인 것이다. 그 깨달음이야말로 지금도 내 곁에 있는 병마가 나에게 준 가장 큰 가르침이다. 김혜남 | 갤리온 | <어른으로 산다는 것>에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