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이는 것을 보라-
<여백의 가치>
사람의 눈은 입체적이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을 인지할 뿐
그 외의 부분은 여전히 숨은 채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눈에 띄는 것을 근거로 전체를 짐작할 뿐입니다.
그런데 그 짐작이라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이라는 한계를 갖습니다.
사각의 세 면만을 보고 그 물체가
정육면체라고 짐작하지만,
사실 눈에 띄지 않는 나머지 면은
사각이 아닐수도 있습니다.
일상에서 '일리가 있다'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얼마를 놓고 그 일부인지 판단하는 것은
환경에 따라 다르지만 그것이 온전히
옳은 것은 아니라는 표현입니다.
또한 내가 가늠하지 못한 이치에
부홥하는 부분들이 더 많이 남아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사물을 바라보며 판단하는 행위는
안간으로서 당연합니다.
그렇지만 내 판단과 관찰은 언제나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내가 관찰하지 못한 부분이 남아 있고
의외의 구석에 결정적인 내용이 담겨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안식일'이라는 당대의 사회 종교적 제도를 놓고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예수님의 견해 차이는
태도에 관한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안식일을 위해
사람이 있는 것으로 믿은 반면 예수님은
사람을 위해 안식일이 있다고 믿습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적어도
'일리 있는 것' 정도만이라도 생각했다면 그
분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스스로를 살펴봅시다. 내가 보고 느낀 것만을 근거로
세상 사물을 판단하고 있다면 이면에 있는 소중한 가치를
잃어버릴수도 있습니다.
내가 못 본 그곳에 정말 소중하고
결정적인 가치가 숨어 있을 수도 있기에
늘 내 판단에는 여백을 남겨놓아야 합니다.
+ 박동호 신부. 명동성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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