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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피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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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전 5월, 외국에 살던 제가 갑자기 병원에 실려 가서 산소를 마시며 눕는 신세가 됐습니다. 그곳에서 오랜 중병에 지쳤지만 쾌활한 노인 한 분과 병실을 나누었습니다. 노인은 전쟁 때 러시아에서 포로가 되어 12년을 수용소에서 지내다 귀국했습니다. 시립도서관 사서로 일하면서 자식 없이 상처하고, 7년째 병원을 전전한 애처로운 분이었습니다. 문병 올 사람 없는 처지는 저도 마찬가지여서, 우린 금세 마음을 열고 친구가 되었죠. 며칠 뒤 노인이 물었습니다. “무인도에 가는데 꼭 한 가지 물건만 휴대할 수 있다면 뭘 가져가겠어?” “모차르트 ‘레퀴엠’으로 할까요?” 저만큼이나 모차르트를 좋아하는 노인은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럼 기계도 가져가야 하겠네?” “그럼요. 휴대용으로 살짝 숨겨서!” 저는 진심이었습니다. 구급차를 기다리는 동안, 오락가락하는 의식을 가다듬어 휴대용 오디오기기와 집히는 대로 시디를 챙겼습니다. 나중에 보니 시디플레이어 안에 모차르트 ‘레퀴엠’이 들어 있더군요. 덕분에 골골하는 환자 둘이서 허구한 날 장례미사곡을 들었으니, 누가 보면 참 이상했겠죠?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새벽, 노인이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떴습니다. “기도가 필요해.” 저는 비상벨을 누르고 노인의 손을 잡았지만, 너무 놀라고 당황해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겨우 함께 들으며 흥얼거리던 성모님의 노래(마니피캇,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를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노인도 몇 마디씩 거들었습니다. 곧 의사가 들이닥쳤고, 저와 간호사 손을 잡고 운명하기 전에 노인이 한 마지막 말은 “나쁘지 않았다. 또 보자”였습니다. 그 날 새벽, 삶과 죽음, 생명과 생명 너머를 가르는 경계는 흐릿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숨이 멎고 체온이 식어도 생명은 사라지지 않은 듯했습니다. 평생 불운과 병에 시달린 노인이었지만, 조물주께서 허락하신 지상의 삶을 감사히 살고, 그 흐릿하기 짝이 없는 경계를 살짝 넘어 조물주의 품으로 돌아간 모습이었습니다. 죽음이 생명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머리로만 알던 진리가 가슴으로 알 듯했습니다. 지금도 저는 자주 병원 신세를 집니다. 약 먹는 시간을 넘겨 호흡이 가빠질 때, 응급실에 누워 곁에서 운명하는 사람을 볼 때, 병실에서 생명으로 넘치는 창 밖을 볼 때, 이 세상이 사람에게 잠시 맡겨진 선물임을 배웁니다. 제 심장 박동에 끊임없이 섞여드는 “메멘토 모리”(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의 경고를 듣습니다. 그래서 ‘아등바등’이 아니라 ‘감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합니다. “괜히 왔다간다”(重光)는 일갈(一喝)도 정신이 번쩍 나는 가르침이었지만, “나쁘지 않았다. 또 보자”는 그분의 인사는 영혼의 안식을 그리워하게 합니다. 생명의 5월에는 더더욱 말입니다.
주보 중에서 펌 |
마니피캇
2006. 5. 23. 오전 1:2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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