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에 누워> 박정만

2008. 3. 11. 오후 10:49:25

글자
<대청에 누워>
                                               박정만
  
나 이 세상에 있을 땐 한칸 방 없어서
서러웠으나
이제 저 세상의 구중 궁궐 대청에 누워
청모시 적삼으로 한 낮잠을 뻐드러져서
산뻐꾸기 울음도 큰댓자로 들을 참이네.
 
어차피 한참이면 오시는 세상
그곳 대청마루 화문석도 찬물로 씻고
언뜻언뜻 보이는 죽순도 따다 놓을 터이니
딸기잎 사이로 빨간 노을이 질 때
그냥 빈손으로 방문하시게.
 
우리들 생은 다 정답고 아름다웠지.
어깨동무 들판 길에 소나기 오고
꼴망태 지고 가던 저녁 나절 그리운 마음.
어찌 이승의 무지개로 다할 것인가.
 
신발 부서져서 낡고 험해도
한 산 떼밀고 올라가는 겨울 눈도 있었고
마늘밭에 북새더미 있는 한철은
뒤엄 속으로 김 하나로 맘을 달랬지.
 
이것이 다 내 생의 밑거름되어
저 세상의 육간대청 툇마루까지 이어져 있네.
우리 나날의 저문 일로 다시 만날 때
기필코 서러운 손으로는 만나지 말고
마음 속 꽃그늘로 다시 만나세.
 
어차피 저 세상의 봄날은 우리들 세상.

댓글 1

  • 2008년 3월 13일 오후 3:55

    지금은 고인이 된 박정만님의 '슬픈 일만 나에게'라는 시집을 거의 20년전에 읽은 기억이 납니다.슬프게 사시다 서럽게 가신 님의 명복을 다시 한번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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