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무더운 여름 어느 날 사랑의 주님께서는 나를 당신 곁으로 불러 주셨습니다.
당시 나는 초등학교 4학년으로 친구인 요셉이네 집에 부모님과 함께 전세를 살고 있었습니다. 나의 친구인 요셉의 호적상 이름은 임 정재였는데 그의 가족 모두는 그를 부를 때마다 항상 “요셉아 !” 하고 불렀습니다. 흔한 이름이 아닌 요셉이란 낯선 이름이 그 친구까지 신비스럽게 느껴지며 금세 친해졌습니다.
요셉 이는 당시 어떠한 사정으로 인하여 부모와 떨어져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외삼촌 부부와 함께 살고 있었지만, 항상 밝은 모습을 간직한 멋있는 아이였습니다. 외할머니는 어디가 아프신지 항상 누워만 계셨는데, 머리 밑에는 십자가와 성모상이 모셔져 있었고, 당시 보기 어려운 아주 큰 초가 있었습니다. 할머님께서는 언제나 묵주를 들고 계셨는데, 기도를 드릴 때에는 큰 초에 불을 붙였습니다. 가끔은 요셉이네 가족이 모두 모여 기도를 드릴 때에는 기도 소리와 성가를 부르는 소리가 얇은 창호지 방문을 통하여 밖으로 흘러나오곤 하였습니다.
내 친구 요셉 이는 일요일 오전이면 곱게 머리를 빗고 멋진 옷을 차려 입고서는 외삼촌 부부와 함께 어딘가를 다녀오곤 했는데, 그곳에 갔다 와서는 자장면과 군만두를 먹었던 일을 자랑스럽게 이야기 하곤 하였습니다. 그런 요셉 이를 부러워하며 초등학교 4학년의 여름방학이 시작되었고, 그 어느 때와 다름없이 여름방학을 보내던 어느 날 친구 요셉이가 “너 나랑 같이 성당 안 갈래” 하며, 내가 성당에 갈 수 밖에 없는 한 마디를 추가로 던졌는데 그 말인 즉 “성당에 가면 맛있는 과자도 준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사랑이신 주님은 내 친구 요셉이를 통하여 달콤한 사랑의 속삭임으로 당신 곁으로 불러 주셨습니다.
과자에 대한 달콤한 유혹과 기대로 쾌재를 부르며 멀고 먼(당시 걸어서 1시간 10분정도 소요 ․ 버스를 타고가면 되나 버스비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정릉 성당을 처음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당시의 정릉 성당은 정릉천변에 위치한 아담하고 큰 기와집(본당) 이었는데, 본당 마당을 돌아서면 성모님께서 신자들을 반겨 주셨습니다. 처음 참석한 미사는 매우 엄숙하였고, 자매님들의 머리에 쓴 미사보가 매우 인상적이었으며, 우렁찬 성가와 함께 신비스러운 제의를 걸치시고 입장 하시는 신부님의 모습은 적잖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장면은 영성체 의식이었습니다.
성체 성가가 울려 퍼지고, 신자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일어나 신부님 앞에 줄을 서고 신부님이 주시는 무엇인가를 받아먹는 장면은 30년이 훌쩍 지났지만 아직까지 생생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 당시에 나는 맛있어 보이는 성체를 먹으려고 요셉 이를 따라 나아가려는 찰라 요셉 이는 나를 저지하며, “너는 안돼” 하는 것이었고, 그 말이 너무나 단호하여 “왜 안돼” 라고 물어 보지도 못 하고, 요셉이가 맛있는 그 무엇을 먹고 올 때까지 가만히 앉아 있어야만 했습니다. 잠시 후 영성체를 모신 그에게 “야! 맛이 어때” 하고 물으니 그는 대답 없이 기도만 하였습니다.
미사가 끝나고 성체를 모시지 못한 서운한 마음을 요셉이 에게 이야기 하였습니다. “야 ! 너 그럴 수 있어. 성당에 오면 맛있는 것 준다고 해서 왔는데. 너만 먹을 수 있냔 말이야! 다음부터 내가 오나봐라.” 했더니 “네가 먹으려고 하는 것은 세례를 받아야 먹을 수 있어” 라고 하며, 세례를 받으려면 여름방학 동안 주일학교를 열심히 다녀야 세례를 받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멀리서 바라본 하얀 밀떡의 영성체가 어찌하여 말린 생강에 하얀 설탕을 뿌려 놓은 당시의 고급 생과자로 보였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나의 주님은 친구인 요셉 이와 영성체를 통하여 나를 불러 주셨고, 그렇게 시작된 영성체에 대한 호기심과 맛에 대한 기대 반으로 나의 여름주일학교는 시작되었습니다.
열심히 여름주일학교에 다닌 덕에 1971년 8월15일 영세를 받게 되었고, 세례명은 두말 할 것도 없이 항상 부러워했던 친구 요셉 이와 같은 세례명으로 정하였습니다. 당시 세살 아래의 남동생도 함께 주일학교를 다녔었는데, 성당에 가는 길에 정릉천변의 미루나무 꼭대기에서 맴맴 울어대는 매미를 보려고 뒷걸음질을 치다가 축대 밑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발목을 다쳐 세례를 받지 못하였고, 이후에도 세례를 받을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남동생이 세례를 받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드디어 세례를 받던 날 첫 영성체의 달콤함을 상상하며, 샘솟는 군침을 꿀꺽꿀꺽 삼키며 신부님에게로 다가가 신부님이 혀끝에 살짝 올려 주시는 영성체의 맛을 음미하려 하였으나, 입천장에 찰싹 달라붙어 버린 작은 밀떡의 밍밍함은 한 달 가까이 기다린 기대감을 한 순간에 무너뜨려 버렸습니다. 이렇게 나의 주님께서는 기대와 실망을 함께 주시며 나를 당신의 곁으로 불러 주셨습니다.
첫 영성체에 대한 기억이 수십 년이 지난 후에도 강렬하게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밀떡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감이 무척이나 컸고, 그에 대한 실망감 또한 기대감에 비하여 만만치 않았던 것 같습니다.
기대와 실망으로 시작된 주님과의 만남은 여름방학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와서는 가끔씩 요셉 이를 따라 주일 미사에 참석하다가, 그나마 요셉이네 집에서 이사를 하고부터는 아예 주님을 만나지 못하고 냉담을 하게 되었고 이후로 어머님의 종교인 불교를 나의 종교로 바꾸고, 중 ․ 고등학교에서 작성하는 신상명세서의 종교 란 조차도 “불교”라고 기록 하였습니다. 하지만 어린 마음에 세례를 받은 것을 생각하며 마음은 개운하지가 않았습니다.
그 후 대학을 마치고 군대에 입대 한 후 쵸코파이에 대한 유혹으로 인하여 신앙생활 다시 시작하게 되었으나, 고백성사 볼 용기가 나지 않아 미사 때마다 다른 장병들과 똑같이 영성체를 모시는 잘못된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고백성사 없이 주님을 뵙는 저의 마음속은 항상 지옥 그 자체였습니다.
그래서 어느 주일에 용기를 내어 그간의 모든 잘못에 대한 용서를 청하기로 굳게 마음을 먹고, 고백소 앞 긴 행렬에 서서 10년 가까이 지은 죄를 생각하며, 나의 차례를 초초하게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그날따라 죄 지은 놈들이 왜 그리도 많은지 30여분이 지났는데도 나의 차례는 오지 않았고, 내 앞에 있는 사병이 들어가는 순간 군종병이 내 앞에 서더니 “오늘 고백성사는 끝났습니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30여 분간 마음을 다지며 그동안 지은 모든 죄를 고백하고 용서 받기로 하였는데. “하느님, 너무 하십니다. 그동안 지은 죄가 너무 많아 용서를 받아 주시지 않으시는 군요.”하고 주님을 원망하며 고백소를 돌아섰다. 그렇게 그날 고백성사를 보지 못함이 “주님께서 나를 버리셨구나.” 로 판단하여 그 이후로 주님을 찾는 발길을 끊어 버렸고, 또 그렇게 주님을 외면해 버렸습니다.
이후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 가정을 이루었음에도 인생의 목표 없이 생활을 하던 1999년 어느 날, 나의 세례 사실을 알고 있던 아내가 “아이들이 성장을 하여 우리 품을 떠나기 전에 가족이 같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 고 하더니 성당에 다니자고 하였습니다. 항상 마음 한 구석에 죄스러움이 있었기에 망설임 없이 고백성사를 보고 조당을 풀었습니다. 대 희년 2000년도에 아들과 아내가, 이듬해엔 딸아이와 어머님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30년이란 길고긴 세월을 돌고 돌아 부러웠던 내 친구 요셉이네처럼 혼자가 아닌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불러 주신 겁니다. 탕자가 모든 것을 잃어버린 뒤에야 아버지의 품으로 찾아 왔듯이 나의 주님께서도 방황하는 탕자를 내치지 않으시고, 스스로 당신을 찾아오도록 기다리고 계셨음을 새삼 깨닫습니다.
주님을 멀리하고 인생의 목표 없이 지냈던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 많은 죄로 얼룩진 지난 시간들이 후회가 되지만, 그 시간들이 헛되지 않게 오늘을 살아가는 좋은 밑거름으로 쓰고 있습니다. 이제는 이정표와 목표가 확실하기에 불평불만보다는 감사와 기쁨이 앞섬을 느낍니다. 아직도 너무도 부족함이 많지만 늘 주님께서 같이 하신다는 걸 알기에 조급함보다는 한 걸음 한걸음 참 신앙인으로 거듭 날 것입니다.
두서없이 써내려가며 난생처음으로 신앙고백을 하여 보았습니다. 온전히는 못했지만 인생의 전환점에서 일부라도 지나온 날의 주님에 대한 기억을 돌아보고 반성의 시간을 가지고 나니 한결 마음이 가볍습니다. 감사합니다.
2007. 12.16 대림3주일
조병현 요셉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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