졋소부인

2007. 12. 10. 오후 4:4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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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007년 가족이 함께한 수기




                       제 목 : 졋 소 부 인

(소제목 : 신앙을 연계한 가정)







작성자 : 한 가 종(도미니꼬)


♦ 2008년도 정진석 추기경님의 사목교서의 전문「가정은 생명의 터전」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가정 공동체를 통하여 가정이 소중한 가치라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 그 동안 여러 가지 주위환경 이유로 인해 어려운 가정생활이 지속 되었지만 고난과 고통을

슬픔으로 극복한 내용은 생략하고 육체와 정신적으로 고생한 여인을 위로하는 마음으로 전문성   없는 문장력으로 이글을 적어 봅니다.

 

♦ 쉬는신자 (냉담자)인 도미니꼬가 신앙생활을 지속해 나갈 수 있도록 희망의 환경을 갖게 하고   아들을 청소년 사목(혜화동 청소년 회관)에 열심히 하도록 경제와 정신력을 갖추는 가정을 작은   교회로 재구성하였습니다.

 

♦ 급속한 사회변화로 전통적인 가족제도가 붕괴 되어가는 가정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 어려움    속에 슬픈 울음을 내색하지 않고 가정을 슬기로운 지혜로 겸손과 소박한 성격으로 회개 태도를   현실로서 가정의 공동체를 재구성한 여인(아녜스)에게 말로는 쑥스러워 사랑한다는 말 을 하지    못하는 도미니꼬가 글로 표현 하게끔 기회를 주신 신부님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건강하십시오.)

 

졋소부인






노오란 개나리꽃이 지고 새하얀 목련꽃도 지어버린지 얼마 안 된 좁은 시장 길을 빠져 나온 어느 여인은 넓은 마당에 있는 어느 건물 앞에 무엇인가 쳐다보고 있었다.

얼마 정도 시간이 흘러갔는지도 모르고 한손에 시장에서 구입한 저녁거리의 푸성귀를 담은 검정 비닐 주머니를 들고 불과 몇 미터 앞에 있는 성모 마리아상을 보고만 있었다. 어찌 내가 이 앞에 와 있는지? 그러한 느낌도 모르고 있을 때 이미 해는 기울어 시장속 상가의 간판불은 하나 둘씩 밝아지고 있을 즈음 건물의 안에서 검은색 옷을 입는 수녀님 한분이 앞으로 다가와서 “자매님! 이 본당에 다니시는 분이신가요?” 하고 묻는 말도 모르는 채, 이 여인은 조용히 아니 멍청하다고 표현 할 수 있을 정도로 성모마리아 상만 쳐다보고 있으니 옆의 수녀님도 의아한 눈으로 그 여인을 바라보고 있는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인기척을 알아차린 여인은 수녀님과 서로 묵례의 인사를 나누며 “수녀님!, 성모마리아님의 얼굴이 온유하고 너무나 평화스러워요. 저도 성모마리아님과 같이  마음의 평온 갖고 싶어요.” “자매님, 잠깐 저 사무실에 가서 음료수라도 드시면서 이야기를 나눌까요?” 여인은 수녀님의 뒤를 따라 조그마한 사무실 내부를 돌아보며 내밀어 주는 의자에 앉게 되고 수녀님은 커피포트의 온수를 일회용 컵으로 받아 녹차 주머니를 넣어 테이블에 놓으면서 “힘드신 일이 있으신가요” 그 말에 수녀님을 똑바로 쳐다볼 기회가 되어 마음속으로 놀라움을 다시 느끼게 되었다. 화장기도 하나 없는 복스럽고 조그마한 둥근형 얼굴, 약간의 미소가 흐르는 얼굴, 어딘지 모르게 여인의 마음을 다스려 줄 수 있는 평온한 얼굴 이었다. “수녀님!” 하고 조용히 불러 보는 여인의 눈가에는 슬픔과 힘들어하는 내색이 영력히 내비쳐 보였다.

사무실에 모셔진 성모 마리아상을 힐끗힐끗 쳐다보면서 “정말 평온하시군요.”혼자 중얼거렸다. 이것저것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눈 수녀님과 서로 인연이 되어 주일에 2일 내지 3일 동안 성당에서 교리도 배우면서 더욱 가까워지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인은 남편에게 이러한 이야기를 한다. “여보, 나 이번 성탄절에 영세 받는데 와서 축하해 주시겠어요?”


그 말은 들은 남편의 머리 속은 뇌리가 번쩍이는 느낌을 받았는지 깜짝 놀라는 기색으로 “뭐 영세? 그래. 가서 축하해 주고 카메라고 기념사진도 찍어줄께.” 하는  말에 평소에 없었던 기쁜 표정의 얼굴이 선명하게 나타나 있었다.

더 이상 대화가 없이 침묵중에 갑자기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여인은 전화를 받으며 “안녕하세요. 수녀님” 하면서 서로 즐거운 표정의 대화를 마치고 여인은 남편에게 “여보” 하고 부르자 남편은 퉁명스러운 어투로 “왜 그래?” 하면서 대답한다. “여보 조금 전 수녀님께서 당신과 나를 성당에서 뵙자고 전화가 왔는데 갈수 있어?” 평소에도 여인에게 다정한 표현을 못하는 남편은 마지못한 몸짓으로 외출복을 갈아입고 성당까지 아무 말도 없이 몇 미터 앞에 가고 그 뒤에 여인이 따라가는 평소 일상의 외출형태를 유지하는 풍경이 되었다.

성당에 도착한 남편은 성모 마리아상 앞에서의 상하좌우로 십자성호를 그으며 두 손을 합장. 머리 숙여 정중히 인사 하는 태도가 많이 해 본 동작이었고, 여인은 조금 서툰 동작이었다. 인사를 마친 부부는 수녀님이 계시는 사무실로 향하면서 “세운지 얼마 되지 않은 성당 같은데 당신은 이곳을 어떻게 알았어?” 여인은 약간의 웃음 띤 얼굴로 아무 말 없이 남편을 바라보며 걸어가고 있다.


  “수녀님! 저희 애기 아빠에요.” 여인이 남편을 소개하자 남편이 고개 숙여 “처음 뵙겠습니다.” 하자 “반갑습니다. 형제님 정말 너무 반갑습니다.” 하면서 수녀님은 조그마한 의자를 남편에 건네주었다. 수녀님은 남편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미리 준비한 생강차를 깨끗하고 작은 백색 웅기찻잔에 서너 개의 잣을 띄워 접시와 함께 건네주면서 “형제님! 이렇게 만나보니 너무 인자하신 성품이네요.” 하면서 남편의 얼굴에 미소를 머금게 하였다. “여기 자매님께서 그 동안 많은 대화와 교리공부를 열심히 하여 며칠 후에 영세식을 하게 되는데 오늘 형제님을 뵙고자 한 것은 이번 성탄절 영세식이 끝난 후 특별히 본당신부님께서 형제님과 자매님께 혼배 성사를 주신다는데 형제님의 의견을 듣고자 합니다.” 수녀님의 말을 들은 남편은 권투선수처럼 라이트, 레프트로 여러 차례 얻어 맞아 정신이 멍한 사람처럼 어디 쥐구멍은 없는가?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여인은 결혼 후에 남편이 천주교 신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종교에 대하여는 전혀 무관심하였고 고등학교 재학시절 영세(도미니꼬)를 받아 종교 활동에 열성적이었던 남편은 직장생활이 바쁘다는 핑계로 성당과 멀어져 갔고 주일미사는 가는 둥 마는 둥, 특히 성탄절에는 아이들과 여인에게 잠이나 자라 하면서 자정미사에 홀로 참석하는 일명 쉬는 신자(냉담자)가 몇 년간 계속 되었다.

  그런데 여인의 영세식으로 인하여 혼배성사를 한다 하니 수녀님에게 얼굴을 들을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온몸은 식은땀으로 목욕하는 육체로 변하고 말았으니,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고 고개만 땅으로 자꾸 떨어지는 모습이 되었다. 생강차에 떠 잇는 잣들은 남편의 얼굴을 쳐다보며 비웃는 듯 했다. 잠시 시간이 흘렀을까. 남편은 용기를 내어 “수녀님! 그 동안 저는 냉담자 생활을 하였는데, 아니 지금도 하고 있는데 혼배성사가 가능할까요?” 수녀님은 “예, 고해성사를 하시고 자매님과 같이 신앙생활을 다시 시작하세요.” 조용하고 인자하신 수녀님의 말씀이 평생 느껴 보지 못한 행복의 만족감, 이 행복이라는 감각이 유채꽃밭에 평화스럽게 날아다니는 나비에 비교하리냐 하면서 성모 마리아 상앞에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남편을 여인과 수녀님도 옆에서 기쁨의 미소로 응원하여 주고 있었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남편의 가슴을 누르고 있었다. 그 동안 쉬는 신자 생활을 오래 지낸 탓으로 교적이 없어진 것이다.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 보다 더 힘든 일로 여러 시간을 허비하고 노력한 결과 본당으로부터 가까스로 되찾은 교적은 새 생명이 탄생하는 분위기였다.

 

1996년 12월 11일 오후 2시 주님께서 미리 축복해주신 듯 전날 하얀 눈을 많이 내려 주시어 앙상한 나뭇가지, 모든 건물, 도로 등 온 세상이 덮여 있고 햇빛에 반사된 성전의 건물은 유달리 빛나 보이고 성모 마리아상 머리 위에 쌓인 눈은 백색의 왕관이 씌여진 것 같이 더욱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성가대가 부르는 아름다운 화음의 합창 과 교우들의 축하와 주님의 환영 속에 대모님의 앞에 촛불을 든 여인은 불꽃을 유심히 쳐다보며 주님의 품속에 안기는 영세식(아녜스)이 진행하는 동안 ‘가정을 위한 기도’

“저희가 성가정을 본 받아 주님의 뜻을 따라 살게 하소서.” 하며 기도 한 것이 가슴 깊이 새겨지게 되었다. 서로 축하의 의식과 기념촬영등 혼잡스럽게 변한 성전 안에는 여인과 남편의 혼배 성사가 시작되어 또다시 엄숙한 가운데 은반지를 서로 교환할 때 교우들의 우렁찬 축하 박수는 인자하신 하느님 아버지의 축하 메시지와 같은 생각으로 여인은 또다시 기도 속에 빠지고 있었다.

‘이제 저희가 혼인서약을 되새기며 청하오니 저희 부부가 그 서약을 따라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잘살 때나 못살 때나, 성 할때나 아플 때나, 서로 존경하며 신의를 지키게 하소서.’


이러한 모습도 잠시 뿐이던가, 여인은 수녀님과 인연을 맺기 전부터 남편은 평생직장을 그만 두게된 환경에 경제와 정신력등 여러 가지로 여려웠던 형편이었는데도

주님과 함께 평화를 유지하였던 가정이 더더욱 경제적으로 약해지고 두 아이들은 사춘기에 접어들어 갈수록 힘이 들고 남편은 매사에 독선적이고 우상으로 생각하고 짜증스러운 성격으로 변화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을 때 여인은 언제부터인지 “졌소, 졌다.”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게 되었다. 남편과 의견 충돌이 있어도 - “내가졌소!, 두 아이와 용돈 등의 이야기 중에도 - “ 그래 엄마가 졌다.” 친우와 동기들 간의 대화 중에도 - “그래 내가 졌어.” 여인이 영세를 받은지 몇 개월이라는 세월이 흘러 고맙고, 아름답고, 정다웠던 수녀님을 뒤로하고  고향을 떠나면서 이별 인사차 만나는 수녀님은 “자매님! 어느 곳에 가시더라도 주님을 항상 사랑하시고, 건강하시고, 졋소를 많이 사용하세요.” 라고 부탁하면서 손놓기가 그리 아쉬워 했던 수녀님은 촉촉이 젖은 눈시울로 “자매님, 지난번 본당 불우이웃돕기 행사시 누구든지 하기 싫어하는 음식 찌꺼기 작업을 혼자 처리 하시는 모습이 저는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씀하시며 눈물을 서로 닦아 주었던 그 수녀님을 생각하면서 서울 생활을 계속 하게 된다.


매일 비약 해지는 경제력과 말할 수 없는 마음의 고통은 더더욱 어려워지고 가족들은 각자 하고자 하는 일에 열중하다보니 모든 도움을 청할 곳이 없어 하루하루 허무한 마음을 되새기며 생활하던 어느 날 무뚝뚝하고 애정이라고는 하나 없는 남편으로부터 웃어야 할지 화를 내야할지 해석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듣는다. “여보 졋소부인, 오늘 힘들었지. 서로 짜증내지 말고 모든 것을 참고 살아봅시다.” 그러자 여인은 “ 내가 왜 젖소 부인이야?” “내가 언제 젖소 부인 이라고 했소, 졋소라고 했지” 또다시 여인은 “나는 가슴도 작은데 왜 젖소 부인이라고 불러? 앞가슴이 큰 여자보고 젖소부인이라고 하는데 나한테는 그런 말 하지 말아요.” 하고 목소리 톤이 높아진다. 다시 여인과 남편은 졋소 단어를 여러 번 반복하면서 기필코는 펜과 종이를 갖다 놓고  설명하면서 배를 움켜잡은 형태로 행복한 가정의 함박웃음이 이어져 오늘도 그 때를 생각하며 생활하는 가족의 공동체다. 말하는 사람은 졋소라고 하는데 듣는 사람은 젖소로 알아들어 우유를 생산하는 젖소가 되었으니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여인이 예비신자 교리 중에 신부님께서 “여기 모인 자매님들은 누구와 대화 중에도 언성이 높아지면 무조건 ”졋소“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동기가 되어 여인의 가정공동체는 일방적으로 대화하는 남편과 두 아들의 성격이 솔선수범, 성실건강한 가정의 공동체로 이루어 지는데는 주님의 평화가 가정에까지 스며드는 자비를 베풀어 주시어 회개의 태도를 바꾼 신앙을 연계한 가정의 여인 입니다.


오늘도 그 여인은 서너 평 남직한 방에 모셔진 성모 마리아상앞에 기도하는 모습이 이 세상에서 제일 예쁜 모습이라고 칭찬 아닌 칭찬하는 남편을 옆에 두고 ‘가정의기도’를 마치고 매일미사 책 속에 적혀 있는 묵상기도를 하면서 조용히 남편과 함께 행복한 잠 속에 빠져듭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미 자기가 가진 것만을 바라보고 감사하는 사람은 진정한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은 이미 하느님 나라를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하느님 나라를 찾기 위해서 여기저기 기웃거리지 않습니다. 이미 자신 안에 시작된 하느님의 나라를 소중히 가꾸어 나갈 것 입니다. 아멘.’


‘졋소 부인 고맙습니다 - 남편 생각‘





졋소 : 모든 것을 참아주고 희생과 사랑을 베풀어 평화를 유지해주는 용어로 해석합니다.


주 : 1. 글 속에 여인이 수녀님을 만나 예비신자 교리와 영세를 받은 배경 성당의

       위치는 전북 전주시 효자동 성당입니다.

   

    2. 도미니꼬의 교적 본당 위치는 전북 전주시 서학동 성당입니다.

 

댓글 4

  • 2007년 12월 10일 오후 5:32

    하느님 품에 안기신 도미니꼬님과 아녜스님 축하드립니다!!**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찾아가신 아녜스자매님의 지혜로우심을 저도 칭찬합니다^+^ 이제부터라도 졋소졋소. 졋네졋네. 하는 낮추는 자세를 배워야 겠습니다..._()_....

  • 2007년 12월 12일 오후 4:29

    <img src=http://icon.sie.net/image/man/santa/santa02.gif>네에..잘읽고 갑니다

  • 2007년 12월 17일 오후 2:16

    <center><img src=http://218.145.54.39/mall/HK1/HHK1000003d.gif><p>성탄{축}선물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늘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 2007년 12월 17일 오후 11:12

    <img src=http://veritas.catholic.or.kr/sun/art-3/0-0726.jpg>

좋은글나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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