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글에 대한 조갑제의 반박
자신이 쓴 글이 허위사실로 판명되고 그로 인하여 상대방의 명예를 훼손시켰다는 사실이 확실해졌을 때 취하는 태도는 보통 두 가지다. 솔직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잘못 쓴 글을 취소하는 것이다. 이게 가장 손쉽고 비용이 적게 드는 해결책이다. 다른 방법은 변명과 억지다. 지만원 씨는 후자를 선택하였다.
1998년 7월호 월간조선이 나올 때 나는 편집장이 아닌데도 굳이 나를 편집장이었다고 전제하고는 내가 <빨갱이 김대중의 국정원과 암거래>를 했고 <이는 역사에 대한 반역행위로 결코 용서 받을 수 없는 사안>이며 <이제는 커밍아웃하여 죄를 빌어야 할 줄로 믿는다>고 했던 지만원 씨는 나를 당시 편집장으로 오인(誤認)하게 된 과정에 대하여 변명하다가 자연스럽게 사실 확인 능력 부재를 스스로 드러냈다.
지만원 씨는 나를 <국정원과 짜고 부하기자가 써온 글을 묵살한 '반역행위자'>라고 단정하려면 아래와 같은 사실확인 과정을 거쳐야 했다.
1. 부하기자, 즉 당시의 김용삼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추리[또는 상상(想像)]를 이야기하고 이게 맞느냐고 물어야 한다.
2. 국정원의 당시 관계 직원을 찾아 물어야 한다.
3. 나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야 한다.
4. 독자적 취재를 더한 뒤 결론을 내려야 한다.
지만원 씨는 김용삼 기자에게도 나에게도 전화 한 통 걸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의 상상력에 의지하여 일종의 소설을 썼다. 그런 글이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내용이라면 웃고 넘길 수 있을 것이다. 기자 생활 43년 동안 사실보도에 충실하려고 노력하다가 정권에 의하여 세 번이나 해직된 적이 있는조갑제가 국정원과 암거래하여 부하의 특종기사를 묵살할 정도의 파렴치한 사람이라고 몰아가려면 그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를 찾기 위한 처절한 취재가 따라야 했다. 숙녀를 창녀로 몰려면 숙녀 뒤를 따라다니기라도 해야 할 것 아닌가? 숙녀를 만나 물어보기라도 해야 할 것 아닌가?
오늘 그는 자신의 '시스템클럽' 사이트에 올린 <조갑제 반론에 답한다>는 제목의 글에서 내가 1998년 7월호 월간조선을 만들 때 편집장이었다고오인하게 된 과정을 설명하였다. 조갑제닷컴(chogabje.com)에 실려 있는 나의 아래 이력서를 읽고서 1998년 7월호 월간조선 때 내가 편집장이었다고 단정하였다는 것이다.
1962년 부산중학교 졸업
1965년 부산고등학교 졸업
1967년 부산수산대학 중퇴
1997년 하버드 대학 1년 연수(니만 펠로우)
1971년 부산 국제신보 수습기자
1981년 월간 마당 편집장-취재부장
1983년 조선일보 월간조선 기자
1991~2000년 12월31일 월간조선 편집장(출판국)
2001년 1월 3일 월간조선의 독립법인화(化)에 따라 편집장 겸 대표이사
2005년 4월1일 조갑제닷컴 대표
<1991년~2000년 12월31일 월간조선 편집장(출판국)>만 읽고서 1998년 7월호 편집장이 나였다고 단정을 하였다는 것인데, 지만원 씨의 안일한 사실확인 태도를 잘 보여준다. 그가 확인해야 할 일은 1998년 7월호 월간조선 편집장이 누구냐였다. <1991년~ 2000년 12월31일 월간조선 편집장(출판국)>만 보지 말고 그 위에 나오는 <1997년 하버드 대학 1년 연수(니만 펠로우)>도 읽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내가 1997년을 전후하여 미국에 연수 중이었으니 월간조선 편집장 일을 하지 못한 시기가 있었을 것이라고 의심하고, 나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하였어야 했다. 전화 걸기가 그렇게 어려운가? 나를 반역행위자로 단정하는 글을 준비 중인 사람이 왜 전화를 걸어 물어보지 않나? 전화 한 통화만 있었더라도 지만원 씨는 오늘의 이 곤경을 피할 수 있었다.
지만원 씨는 김용삼 기자의 기사가 실렸던 1998년 7월호 월간조선을 읽지도 않고(읽었다면 책 맨 뒤 페이지의 조직표에 적힌 편집장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음모론을 썼던 것 같다. 이 역시 부실한 취재를 드러낸다. 당시 편집장이 누구였느냐를 알려면 내가 쓴 간략한 이력서가 아니라 나에게 묻든지 그 호의 월간조선을 봐야 한다. 확인 취재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정확한 정보원에 접근하는 것이다. 나에게 전화도 걸지 않고, 나의 설명도 구하지 않고서, 즉 사실확인을 하지 않고서 상상력을 동원, 나를 악의적으로 모함하는 글을 일방적으로 써갈긴 그의 나태함과 무모함은 법정에 설 경우 그에게 매우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그가 나를 1998년 7월호 월간조선 편집장으로 오인하였다고 치자. 내가 1998년 7월호 월간조선의 편집장이었다면 나는 자동적으로 국정원과 암거래 하여 부하의 글을 묵살한 사람이 되어야 하나? 두 남녀가 호텔에서 같이 나오는 장면은 자동적으로 두 남녀가 간통하였다는 증거가 되나? 그는 내가 당시 월간조선 편집장이었다는 확신(사실은 착각)이 서자 최소한의 사실확인 절차도 거치지 않고 나를 국정원과 암거래한 사람으로 단정해가는 데 전력을 다한다. 참으로 경이로운 무모함이고 논리의 비약이다.
지만원 씨는 내가 1998년 7월호 월간조선 제작에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출판국 편집위원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은 듯 애매한 표현을 쓰면서 어제 글에서 새로운 억지를 내 왔다.
<월간조선은 조갑제의 왕국이었다. 조갑제는 1997년 여름에 하버드에서 돌아와 그의 자리를 임시로 지켜주었던 대타 '서희건'이 2년의 임기를 채우는 동안 임시로 "조선일보 출판국 편집위원"이라는 자리에서 서희건의 임기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중략) 그런데 바로 그 기간에 황장엽은 조갑제의 관리 하에 있었고, 월간조선은 조갑제가 황장엽을 띄우는 데 전적으로 활용됐다. 황장엽과 월간조선도 모두 조갑제의 영향 하에 있었던 것이다.>
지만원 씨는 내가 월간조선 편집장이 아니었음이 밝혀지자 이번엔 내가 편집장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월간조선은 내가 왕국처럼 장악하였으므로 국정원과 암거래할 수 있는 입장이었다는 새 억지를 개발하였다. 그런 억지를 뒷받침하려고 <황장엽은 조갑제의 관리 하에 있었고>라는, 새로운 거짓말을 등장시켰다. 거짓말을 변명하려고 하면 반드시 새로운 거짓말을 만들어내야 한다. 이른바 '거짓의 법칙'이다.
1998년 당시 황장엽은 국정원이 엄중하게 관리하고 있었다. 김정일 정권이 가장 죽이고 싶어한 인물을 민간인인 내가 관리하였다고? 1998년 7월까지 내가 황장엽 씨를 만난 적은, 그가 조선일보를 방문하였을 때 다른 사람들과 합석하여 만난 것 딱 한 번이었다. 그런 내가 황장엽을 관리하였다니? 전통 있는 조선일보에 기자가 왕국을 만들어?
내가 황장엽을 관리하여다는 거짓말은 후속 시나리오를 쓰기 위하여 필요하였던 모양이다. 지만원 씨는 이렇게 주장한다.
<역사사실을 은닉하기로 합의했던 그 시기에 월간조선 운영의 내막을 잘 아는 국정원, 황장엽을 조갑제가 장악하고 있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그 국정원은 과연 누구를 상대로 은닉음모를 벌였을까? 조갑제? 서희건? 김용삼? 이는 상식이 판단하고 조사가 밝혀낼 일이다. 필자의 상식으로는 당시 서희건은 바지였고 조갑제가 사실상의 주도권을 행사했을 것으로 본다.>
내가 황장엽을 장악하고 있었으니 국정원은 월간조선 편집장도 아닌 나를 상대로 암거래 하여 황장엽의 발언을 월간조선에서 기사화하지 못하도록 하였다는 희한한 주장이다. 당시 황장엽의 신변을 장악한 것은 국정원이었는데, 지만원 씨는 뒤죽박죽의 공상을 몇 바퀴 돌리더니 조갑제가 편집장이든 아니든 상관 없이 김용삼의 기사를 묵살한 장본인이라고 선언해버린다. 여기서 그의 공상은 최소한의 논리도 포기하고 파탄 난 것이다. 내가 문제의 기사가 실릴 때의 월간조선 편집장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으면 "잘못 했습니다"고 말하면 될터인데, 이제는 편집장이 아니더라도 국정원과 공모할 수 있었다는 억지를 펴니 '막간다'는 말로는 설명이 안 되는 코미디다.
비행기가 추락하였다. 그는 확인도 하지 않고 '조갑제 기장이 조종을 잘못하여 추락하였다,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간 자다'고 규탄한다. 그런데 조갑제 기장은 그 비행기를 타지 않았다. 그 사실이 밝혀지자 그는 <그래도 조갑제가 추락시켰다. 비행기를 안 타도 그렇게 할 수 있는 마술을 가진 인물이다>고 우긴다. '그'와 지만원 씨는 무슨 차이가 날까?
우기기 대회가 있었다고 한다.
4등: 구제역이 지하철역이었다고 우긴 사람
3등: 으악새가 새라고 우긴 사람
2등: 복상사가 절이라고 우긴 사람
1등은 '조갑제가 반역행위자'라고 우기는 사람이 타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런 '소설'을 쓸 시간에 그는 왜 김용삼 기자에게 전화를 걸지 않았을까? 6월3일 현재 김용삼 씨는 지만원 씨로부터 전화 한 통 받은 적이 없다고 한다. 전화 한 통화면 끝날 문제를 왜 지만원은 추리와 상상에 매달렸을까? '사실은 관심이 없다. 오로지 나의 상상력과 추리력만 믿는다'는 생각이었을까?
그렇다면 소설을 써야지 왜 조갑제, 김용삼이란 실명을 써서 화(禍)를 자초한 것일까? 나에게 전화 한 통 걸지 않고, 나의 설명을 듣지도 않고, '당신은 창녀야'라는 정도의 욕설을 나에게 퍼부은 지만원 씨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그의 다음 행동(또는 소설)이 기다려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