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갑제 주장에 대한 반박

2013. 5. 23. 오후 9:37:53

글자

평생을 군에서 보내며 고도의 전략 전술을 연구했고 실전과 같은 고된 훈련과 다양한 수많은 경험을 축적한 군사전략가들이 오랜기간에 걸쳐 심혈을 기울여 기획하고 연출한 작전이라면 일반인들은 말할 것 없고 웬만한 군사작전가들도 속을 수 있다.

어느 탈북자 증언대로 김일성이 4.19를 보고 남침하여 적화통일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고 통탄한 것이 사실이라면 김일성은 박정희 대통령 시해 후에 신군부의 정권 장악에 따른 혼란을 호기로 보고  제2의 4.19를 획책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그 성공을 위해 절대로 북한이 개입한 사실이 드러나지 않게 치밀하게 기획하고 연출했을 것이다.  

물론 탈북자들의 증언이 모두 사실은 아닐 것이다. 조 기자가 지적했듯이 '카더라' 류의 믿기 어려운 증언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조 기자가 '북한군 개입은 없었다'며 제시한 근거와 이유들 역시 설득력이 없거나 미흡한 것 또한 사실이다. 진실은 눈에 보이거나 생각하지 못한 곳에 있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조 기자는 어느 탈북자가 일부 방송에 출연하여 '자신의 경험이 아니라 광주에 내려온 북한특수군에게 들은 이야기'에 불과한 것을 보수 우익들이 사실인 것처럼 퍼뜨리고 있다고 했지만 본문 아래에 게시된 지만원 박사 글을 읽으면 그렇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 글은 조갑제 기자의 반박에 대한 나의 견해이고 반박이다. 



1, 조 기자가 '북한군은 광주에 오지 않았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가장 큰 근거는 그 자신을 포함한 백여 명의 국내 및 외국기자들이 현장을 취재했는데 어느 누구도 북한군이 개입한 증거를 보지 못했고 또 그 당시 모든 정보에 밝았을 것이 분명한 게엄군 대공수사당국도 북한군 개입은 없었다며 부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4.19도 그렇지만 5.18도 북한이 개입한 사실이 드러나면 절대로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을 북한은 누구보다도 잘 알 것이다. 따라서 개입을 철저히 은폐하기 위해 치밀하게 기획하고 연출했다고 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신군부에 저항하는 광주시위가 북한의 사주에 의한 것이 되어 게엄군의 유혈 또는 강경진압이 정당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신군부도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개입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단지 의심스럽다는 정황 증거만으로 북한이 개입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당시 게엄군의 대공수사책임자였던 이학봉은 개입이 확실하다고 주장하는 지만원 박사에게 의심되는 여러 정황들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확실한 증거는 없었다며 자제하라고 권했을 것이다.

2, 조 기자가 북한군 개입을 부정하는 두번 째 이유는 특수군이 300~600명이나 되는 대대급 규모인데도 그들을 상대로 싸운 게엄군 장교들 누구도 의심한 일 없었고 상부에 보고한 일도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산전수전 다 겪었다는 배태랑 조 기자가 이렇게 말하는 형편이니 경륜과 경험이 적은 다른 가자들은 무슨 말을 못하겠는가. 

북한특수군 개입을 주장하는 이들의 공통점은 1개조가 10~20명 정도이고 내려온 시기와 방법이 각각 달라 그들도 자신들 조원 외에는 시민군들 중에 누가 북한특수군인지 또 몇 명이 언제 내려와 어디에서 어떤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북한이 발각될 경우에 대비하여 오래 전부터 치밀하게 계획했다는 근거이다.   

그리고 김일성이 모든 준비를 철저히 끝낸 상태에서 제2의 4.19를 획책하며 기회를 20년이나 기다리고 있었다는 증언이 사실이라면 군 대공수사부대도 감쪽 같이 속은 상태라 시위진압 현장의 전투 장교들은 말할 것도 없다. 따라서 조 기자의 그런 주장은 일반인들은 할 수 있어도 군사전문가들은 할 수도 또 해서도 안 되는 주장이다.

3, 조 기자가 북한군 개입은 없었다고 주장하는 세번 째 근거 역시 설득력 없기는 마찬가지다. 북한군이 대대급 병력이고 더구나 특수군인데 게엄군과 싸웠다면 게엄군이 겨우 7명만 전사했겠느냐고 했지만 북한특수군의 주 임무는 게엄군과 전투가 아니라 잔혹한 짓을 저지르고 게엄군의 만행으로 선전 선동하여 폭동을 부추겨 전국으로 확대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당연히 선전선동 임무 외에 시위를 부추겨 확대하는데 필요한 전략과 전술의 전문가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 내가 특수군을 교육하고 훈련시켜 내려보낸 책임자라면 부득이한 상황이 아닌 이상 2~3명 씩 흩어져 행동할 것 그리고 절대로 직접 나서지 말고 시민군이 하도록 유도하라면서 그에 필요한 전술을 가르쳤을 것이다.    
  
4, 조 기자의 4번 째 아니라는 근거의 주장은 이 말이 정말 조 기자가 한 말인가 의심될 만큼 실망스럽다. 사회 일각에서 '북한특수군 광주5.18개입'을 주장하는 이들 대부분은 남북한에서 군 생활을 오래한 고위 장교 출신들이다. 따라서 언론계에서 대기자 대우를 받고 있는 조 기자는 자신의 한 마디가 독자들에게 영향이 큰 만큼 위상에 걸맞게 해야 한다.  

명백한 증거는 아니라도 북한군 개입을 주장하는 이들의 정황 근거들 중에는 무시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다. 따라서 신빙성 없음을 지적하려면 그러한 정황 근거들에 대하여 모두가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해야 설득력 있고 대기자의 위상에도 걸맞는다. 그런데 조 기자는 11가지나 지적하면서 이른바 '카더라' 류의 반박하기 쉬운 것들만 골라서 하고 있다. 

5, 조 기자의 5번 째 6번 째의 아니라는 근거의 주장은 반박할 가치도 없다는 생각이다. 5번 즉, 신군부는 그 당시 광주사태를 핑계로 북한이 남침할까 걱정 때문에 정신 없었을 것이고 군 대공수사책임자 이학봉도 그 때문에 특수군 침투 정보에 집중했지만 확실한 증거는 없었다며 그러한 확신은 지금도 변함 없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들의 무능으로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고 후에 증거를 확보했더라도 비판을 의식하여 덮을 수밖에 없는 일 아닌가.  

6, 그리고 6번 째 '탈북자 증언은 전언(傳言)에 불과하여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 없다'고 했는데 그런 문제보다는 실종자 66명이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는 이유와 신원이 밝혀지지 않는 무명의 사망자 12명은 어떤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가. 도대체 어떤 경우에 그러한 일이 발생할 수 있는지 설득력 있게 해명하는 것이 먼저이고 순서일 것이다. 

7, 특수군 개입은 없었다는 7번 8번 째 근거도 이제까지 한 이야기의 중북이라 이제는 같은 말을 반복하고 싶지 않아 생략한다. 조 기자는 특수군 600명이 광주 시민군을 도와 게엄군과 싸우려고 내려온 것처럼 주장하고 있는데 그러한 그에게 무슨 말을 하겠는가.

9, 9번 10번 쩨의 광주발로 전국에 급속도로 확산된 사망자가 2000명이 넘는다는 유언비어의 잘못 지적은 옳지만 그게 바로 폭동의 전국 확산을 노리고 퍼트린 불순분자로 위장한 특수군이 개입한 근거일 수 있다. 그리고 '화려한 휴가' 영화가 사실을 왜곡한 이유도 반정부 선동을 위한 것이지 그들이 주장하는 역사의 다양성과 그 조명을 위한 것이 아니다.    

특수군이 광주에 왔었다는 주장도 역사의 다양성과 그 조명을 위한 일인데 거짓을 사실로 왜곡하여 광주시민과 유족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다며 특수군 개입을 주장하는 이들을 처벌하라고 고발했으니 말이다. 그들의 주장은 광주 시민군에게 죽은 게엄군과 경찰 그리고 유가족들의 명예는 애당초 없다는 말 아닌가. 또 사실을 왜곡한 엉터리 영화로 인해 피해를 입는 군경과 유가족들은 언제까지나 죄인이라는 논리의 근거는 무엇인가. 

10, 조 기자가 북한군 개입은 없다고 주장하는 10번 째 근거를 보면 조 기자는 처음부터 특수군 개입을 주장하는 이들을 오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북한이 광주사태가 일어날 것을 5.18 훨씬 전부터 알고 고도로 훈련된 특수군 상당수를 내려보내고 있었으며 기다리던 사태가 발생한 후에는 정체를 숨기고 시위대를 뒤에서 부추겨 무장폭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도록 획책한 정황 근거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북한이 어떻게 미리 알고 있었는지 또 어떤 방법으로 많은 특수군을 내려보내 처음 시위를 주도한 지휘세력을 도와 무장폭동으로 확대시켰는지 등을 궁금해 하는 것이다. 광주사태가 시작되자마자 무장한 진압군 그것도 공수부대를 몰아내고 10일간이나 광주시 전체를 무법천지로 만든 것은 일반시민은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광주시민 대부분은 신군부가 부당하게 김대중을 체포 구금한 일에 분격하여 시위에 참가했을 것이다. 하지만 좌익들의 전매특허인 시체를 훼손하여 선전 선동에 이용하는 악랄하고 잔인한 수법과 날조된 유언비어로 온건한 항의 시위를 무장폭동으로 확대시킨 시위대 지도부는 좌익이념에 매몰되어 항상 반정부 활동에 앞장선 이들이었다.

따라서 조 기자는 시위자들이 '간첩 같은 사람이 끼여 있다'고 군 당국에 신고했다거나 '김일성은 오판 말라'는 구호가 늘 있었다는 말이 얼마나 순진한 말인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대한민국 세력은 진실 위에 정의를 세워야지 정의 위에 진실을 세우려 해선 안 된다'고 했는데 맞는 말이다. 다만 광주사태의 본질과 성격을 정확히 알고 그렇게 말해야 한다.


이번의 5.18추념 행사에 '임을 위한 행진곡'이 문제되었는데 그 '임'은 5.18 시위 유공자 '윤상원'을 뜻한다. 윤상원은 전남도청을 지키다가 '진압군에게 사살되었다' 또는 '광주5.18이 실패했다고 판단하여 가지고 있던 수류탄으로 자살했다' 또 '진압군 총에 맞아 체포될 상황이 되자 총으로 자살' 등등 설이 많지만 5.18을 지휘한 총책임자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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