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갑제는 그런 사람이었는가.

2013. 6. 12. 오후 8:3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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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제 기자는 그런 사람이었는가.

나는 그동안 조갑제 기자를 정의와 진실을 존중하는 보수 우익을 대표하는 한 사람으로 알고 존경해왔다. 그런데 요즘 그의 괴이한 행보를 보면서 '그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는데 내가 잘못 알고 있었다'는 생각에 허탈한 마음을 넘어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요즘 며칠 지만원 박사와 조갑제 기자 사이에 있었던 격론의 핵심은 '광주5.18사태에 북한특수군이 개입했었는가'라는 문제였다. 지 박사가 그에 대한 여러가지 정황 증거와 근거를 제시하며 북한특수군이 개입한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한 데 대하여 조 기자가 '북한군은 개입하지 않았다'며 몇 가지 이유를 내세워 반박했다.


그러나 조 기자의 개입하지 않았다는 근거들은 독자들이 볼 때 분명히 개입했다는 지 박사의 정황증거와 근거보다 설득력이 약하다. 그래선지 조 기자는 1998년 월간조선 7월호 편집장은 자신이 아니었다며 논쟁의 핵심을 돌렸지만 나는 '당시 편집장이 누구였는가' 문제 역시 '북한군 개입' 문제보다 조금도 덜하지 않은 아주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1998년 11월 황장엽과 김덕홍의 폭로증언 즉, '광주5.18에 북한이 개입하여 배후조종했고 사태가 끝난 후 대남공작부서 사람들 상당수가 훈장을 받았다'는 증언을 인터뷰한 월간조선 김용삼 기자의 초대특종이 그대로 게재되지 않고 그 부분이 삭제된 채 7월호가 발간되었다. 그리고 조갑제씨는 그때 편집장이 서희건씨라며 삭제는 자신과 상관 없다는 것이다.

삭제된 내용이 왜 그토록 중요한가? 김용삼 기자가 김덕홍을 처음 만나 그런 내용이 적힌 황장엽이 직접 쓴 매모를 건네 받은 싯점이 1996년 11월이었고 김영삼정권 말기였다. 그리고 그때는 월간조선이 조선일보 소속이었고 조갑제씨가 김용삼 기자 상사인 편집장이었는데 조갑제가 9월호 제작을 마치고 연수차 도미한 직후라 서희건이 편집장이었다. 
  

그러나 조갑제가 없었다고 해도 월간조선에서 그의 입지와 위상을 고려할 때 초대특종이고 또 기사화했을 때 월간조선의 명운을 좌우할 수 있는 엄청난 후폭풍이 예상되는 어려운 문제도 있어 서희건에게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국정원이 보도 자제를 요구하는 상태에서 조갑제에게 알리지 않고 서건희 임으로 삭제를 결정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설사 서희건 임으로 삭제했더라도 10개월 후인 1997년 여름에 귀국했을 때는 대특종과 삭제된 사정을 알았다고 보는 것이 상식이다. 그리고 만일 그때 조갑제가 김용삼 기자에게서 황장엽의 매모 내용을 자세히 확인한 다음 국정원 요구를 무시하고 그 내용 그대로 월간조선에 기사화했다면 그후의 정국과 시국이 어찌되었을까? 
  

전남 일원의 44개 무기고를 털어 무장한 광주시민군이 경찰과 게엄군에게 총으로 저항하여 유혈을 빚은 '5.18무장폭동'이 민주항쟁으로 바뀌고 대법원이 '관심법'이라는 희한한 법을 만들어 5공세력들을 짓뭉개어 두 전 대통령을 감옥에 잡아 넣은 상황에서 광주사태에 북한군이 개입하여 시위대를 배후조종했다는 폭로증언은 핵폭탄급 파장을 불렀을 것이다.
 

따라서 김영삼정권에게 내란음모자 반역자로 몰려 투옥되었거나 죽은 듯이 지내고 있었던 5공세력들의 반격이 시작되지 않았을까? 만일 그랬다면 그 같은 어수선한 사회분위기에서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을까? 오늘날 좌파들이 자기들 세상처럼 설치고 있는 것도 노무현이 대통령이 된 것도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었기 때문 아닌가?


정국과 시국은 살아서 움직이는 생명과 같아서 앞 일을 예측하기 어렵다. 그래도 그때 만일 김용삼 기자를 통해 매모 내용을 알았을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되는 조갑제가 월간조선에 그 기사를 그대로 게재했다면 그 후의 정국과 시국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김용삼과 조갑제는 어렵고 힘든 고난을 겪었겠지만 그것은 절대 부끄러운 일 아니다.


지 박사의 북한군 개입 주장이 가장 중요한 이유가 그 때문이다. 그래서 황장엽과 김덕홍이 귀순하여 기자회견했을 당시 또는 그 이후에 김덕홍이 증언할 때 황장엽이 제지했던 '광주사태에 북한개입 증언'을 조갑제가 알고 있었는가? 아니면 그 사실을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다가 이번에 김덕홍의 방송 출연으로 알았는가 하는 점이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그에 따른 그동안의 여러가지 일들을 고려할 때 조갑제는 김용삼 기자와 함께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정상이고 또한 상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만일 조갑제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 오늘까지 모른 채 했다면 그는 한갖 시류에 영합하여 보신을 도모한 그저 그런 기자일 뿐 정의와 진실을 존중하며 추구하는 대기자가 아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조갑제 기자를 존경해온 독자들은 황장엽과 김덕홍에게서 광주사태에 북한특수군이 개입하여 배후조종했었다는 정보를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알고 있었는가? 하는 사실이 무엇보다 궁금하고 만일 알고 있었다면 그게 언제였고 왜 오늘까지 숨기고 있었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정상적인 독자들 대부분은 조갑제쯤 되는 대기자가 그런 엄청난 핵폭탄급 대특종을 오늘까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고 믿지 않을 것이다. 오랫동안 같이 일해온 부하직원 김용삼기자에게 그 사실을 보고받지 못했다는 건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문제는 조갑제가 연수차 도미하여 그 당시 편집장이 아니었다는 변명과 상관 없다.


조 기자는 이번에 지 박사가 김용삼기자에게 전화 한 통이면 확인되는 사실을 하지 않고 틀린 추측을 사실로 재단해 자신을 공격했다고 맹비판했다. 하지만 조 기자도 월간조선 편집장으로서 부하 기자가 갖고 있는 업무상의 큰 불만(조 가지가 복귀하기 한달 전 국정원이 대특종 기사를 보도통제한 사실)을 오늘까지 수십 년이나 모르고 있을 수 있는가?


광주5.18사태의 성격이 어떻게 규정되는가에 따라 역사는 물론 정치와 사회 등 국민들의 모든 면에 직간접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다. 그리고 북한군 개입 문제는 5.18사태의 성격 규정을 좌우할 수 있는 엄청난 정보인데도 조 기자는 당시 시위현장을 직접 취재했다고 주장하면서 '절대로 개입하지 않았다'고 단언하고 있는 것도 큰 문제이다.


그리고 그처럼 자신있는 '불개입'의 이유로 조 기자가 주장하고 있는 근거들도 정상적인 독자들에게는 교활한 북한 대남공작 전문가들의 전략과 전술 수법을 조금도 모르는 어수룩한 판단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는 어리숙한 사람 아니다. 그래서 독자들은 조 기자에게 양심에 손을 얹고 단 한 점의 실수나 잘못이 없었는지 묻고 있는 것이다.


건국 이후에 수없이 많았던 정치적 사회적 소요사건 모두가 대한민국을 적화하려는 북한의 비열한 책동에 의한 것임을 해방과 6.25를 겪은 국민들은 모르는 사람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조 기자가 유독 광주5.18사태 만큼은 절대로 북한특수군이 개입하지 않았다고 자신있게 그것도 아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지만원 박사와 김대령 박사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북한특수군은 게엄군과의 직접 교전이 아니라 광주시민을 선동하고 이간질하여 게엄군과 무력 충돌을 촉발하도록 하는 불쏘시개역할이 주 목적이라고 했다. 과연 교활한 김일성 다운 일이다. 그렇다면 북한특수군은 절대로 정체를 노출시키면 안 되었고 숨기는 일이 다른 일보다 가장 중요했을 것이다.


북한특수군의 정체가 드러나면 광주5.18 시위가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선 시위대들이 동요하고 진압군의 대응 성격이 대간첩작전으로 바뀌어 더욱 강력하게 진압할 것이다. 그것을 잘 알고 있을 김일성이 어리숙하게 게입하여 정체를 노툴시키겠는가? 그런데도 조 기자는 특수군처럼 보이는 사람이 없었다며 절대로 특수군은 없었다 주장하고 있다.


5.18측이 유엔에 제출한 80여만 쪽 5.18관련 서류를 분석한 김 대령은 북한특수군의 목표에 대해 먼저 광주에 해방구를 만들고 각 지방 도시로 확산시키면서 그 세력을 서울로 밀고 올라가게 하는 일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각 지방의 시위가 예상과 달리 시원치 않았고 서울 진출도 게엄군의 강력한 저지로 막혀 더 이상 어려워 실패했다고 판단한 북한이 후퇴를 지시한 것으로 분석했다. 그 때가 5월 23일이고 특수군은 광주를 탈출하고 없었다.


그런데 조 기자는 23일에 광주에 들어갔다고 하면서 17일부터 22일에 있었던 6일간의 상황에 대해 어떤 근거로 특수군의 개입을 극력 부정하는가? 17~22일의 그 기간은 다른 지역의 평화적인 시위와 달리 유독 광주에서만 무장폭동으로 바뀐 아주 중요한 시기인데 그 중요한 변화 과정의 모든 일들을 조 가자가 직접 눈으로 본 것도 아니지 않은가?


조 기자는 또 당시는 전국이 비상게엄 상태였는데 600명이나 되는 북한특수군이 어떻게 삼엄한 게엄군의 포위망을 뚫고 광주에 침투할 수 있느냐며 특수군 개입을 부정하는 중요한 근거로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주장은 북한특수군의 남한 침투능력과 인명 살상능력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북한특수군은 고첩들의 안내로 산과 바다 등 여러 경로로 나누어 얼마든지 침투하고 또 돌아갈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봐야 한다. 우리 군의 방위망이 헛점이 많아 생각하는 것처럼 물생틈 없이 완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남한에서 암약하고 있는 수많은 고첩들에게 주어진 중요한 일이 그들의 비밀출입로와 은신처 개발이라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 아닌가?


여러 탈북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광주5.18사태에 내려온 북한특수군들은 남여노소 가리지 않고 누구든지 자신들 정체를 눈치챘다고 생각되면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유인하여 죽였고 그 흔적조차 없애버렸다고 했다. 광주5.18사태로 실종되어 지금까지 생사를 모르는 이들이 66명인데 그들 상당수가 그들에게 죽어 암매장 당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조 기자는 광주에 들어가 취재했다면서 '북한특수군을 못봤다'가 아니라 '광주에 북한특수군은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 표현의 차이가 중요한 것은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못봤다'는 말은 기자정신에 따른 것이라는 변명이라도 할 수 있지만 '없었다'는 백번을 양보해도 지나치고 비상식적인 말이라 그래서 어떤 '이유'가 있지 않은가 의심하는 것이다.


조 기자도 지나친 표현임을 모를 리 없다. 그래서 더욱 이상하고 '그동안 존경해온 조 기자가 그런 사람이었는가?' 허탈한 마음을 넘어 배신감에 분노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좌파들이 대한민국을 마구 흔들고 있어도 속수무책인 오늘 아닌가? 그런데 그때 조 기자가 '정의와 진실을 존중하는 대기자' 답게 황장엽의 폭로증언을 밝혔어도 이렇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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