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9/22) : 1. 우리나라의 많은 독립운동가들은 순수하게 비폭력으로 했는가요?
그리고 안중근 의사에게 고백성사를 거부했던 것은 잘 한 일일까요?
일제 강점기 시절 독립운동가들의 폭력저항은
양육강식 시대에 자신들보다 약한 동물만 잡아 먹는 포악한 짐승과 같은 강대국 일본에게서
빼앗긴 나라를 되 찾기 위한 약소국의 부득이한 폭력이었고 그 방법밖에 없던 불행했던 시대의 일입니다.
세계사에도 강대국에게 나라를 빼앗긴 약소국들이 폭력으로 저항한 예는 무수히 많으며
국제사회는 그런 폭력에 대하여 그 비슷한 행위를 하고 있는 일부 국가들 외에는 대부분 비난하지 않습니다.
한 나라와 민족이 영원히 없어지고 멸망해야 하는 상황에서 나라와 후손들을 위한 몸부림이기 때문이지요.
오늘의 강대국들도 과거 어려웠을 때 국가를 위해 적국 또는 적장을 괴롭히고 죽인 이들을 영웅시합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 개인의 이익이 아닌 국가와 국민의 생존을 위해 했다는 점이 다르고 또 중요한 것입니다.
몇몇 개인의 지나친 욕심 때문에 발생한 용산참사를 독립운동에 몸 바친 애국행위에 비교는 당치 않습니다.
고백성사를 거부한 신부님의 잘 잘못 문제는 평신자들이 판단할 수없고 해서도 안 되는 일이며
다만, 만일 옛날의 그런 상황이 오늘 또 발생한다면 수많은 신자들이 제2의 안의사를 자임하리라 믿습니다.
구원 여부를 떠나서 나라와 국민을 사랑하여 목숨 바치는 것이 의로운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2. 용산참사의 원초적인 시발점은 전철연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욕심때문 아닐까요?
재개발 광풍에 휘말려, 돈에 눈이 멀어 자기 이웃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자신의 잇속만을 두둑히 챙기려했던 그 욕심때문 아닐까요?
전철연의 문제는 그 다음 문제구요....
순수한 목적의 보다 더 나은 도시환경과 생활환경 문제를 도외시한다면 그렇게 보는 것이 일반적이겠지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순수한 것인지 욕심 때문인지 구분하기 어렵고 모호하게 재개발 목적이 변질되었습니다.
속내는 욕심이 분명한데 겉으론 도시 미관과 주민들 생활환경 개선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전철연은 순전히 그러한 인간적인 욕심 성취만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고요.
3. "우리가 종교적으로 원죄가 되었던 것은....." 이 문장은 비문입니다.
우리=원죄??? 이게 대체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이 부분은 저도 원문을 정확히 몰라 견해를 유보합니다.
4. 변호사들과 많은 분들이 용산참사 해결을 위해 봉사하고 계시죠.
문제는 3000쪽이 넘는 조사기록을 공개하지 않으며
재판에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들이 있다는 거 아닐까요?
사건 해결 지연 이유가 조사기록 미공개에 있다는 주장이 바로 '문제'라는 생각을 왜 하지 못하는지....
용산참사를 보는 대부분 사람들은 3,000쪽이 아니라 참사 원인 즉 '불법 폭력시위'를 훨씬 더 중시합니다.
애당초 참사의 원인이 그들의 '불법 폭력시위'에 있다면서 미공개 운운을 본질 호도 행위로 보는 거지요.
즉 '불법 폭력시위'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그릇된 폭력시위가 참사의 근본적인 본질이고 핵심이며
과거 정부들은 그런 방법이 통했지만 이제는 정부도 지각있는 대다수 국민들도 용납하지 않는 상황입니다.
진작에 그랬어야 할 일이었으며 이제라도 폭력을 앞세운 요구는 이유불문 절대로 안 된다는 것입니다.
경찰은 폭력시위를 방치하면 안 되는 입장이고 또 그 분야 전문가들이지만 실수는 이해해 줘야 합니다.
경찰도 희생되었는데 폭력시위를 자행하다 희생된 이들보다 못한 목숨 아니며 오히려 훨씬 더 숭고합니다.
경찰 직업이 이른바 모두가 선망하는 대우 좋고 편하기 그지 없는 '철밥통' 이 아니잖습니까?
좀 더 신중히 대처하지 못한 실수 비판은 몰라도 과잉진압 운운은 방관했어야 했다는 주장 다름 아니며
아무 죄없는 건물 앞 도로 통행자들이 생명을 위협받고 있는데도 모른체 방치하면 직무유기입니다.
그 상황에선 강제진압 외 다른 수단은 없으며 화재에 의한 희생자 발생은 피차 예상 못한 사고일 뿐입니다.
미공개 문건 공개 주장도 법원에서 검찰의 미공개를 합법으로 판결했다고 하던데 그에 승복할 수 없다면
상급법원에 항소하고 그래도 아니면 대법원에 상고하면 되며 그도 아니면 끝내야 할 문제입니다.
법이 적법하다고 인정한 미공개인데 뭐가 문제고 그 법은 누가 어디에 어떻게 적용하라고 있는 것입니까?
불법 폭력시위가 참사의 핵심적 원인인데도 은근슬적 미공개에 모든 문제가 있다는듯이 주장하고 있는데
국민들이 그렇듯 모두가 어리석고 우매하다고 보는 이들이 더 큰 문제입니다.
그러한 불법 행태가 통했던 지난 날이 잘못된 것이고 그 짓이 통하지 않는 오늘이 잘못일 수 없습니다.
5. 마지막으로... 만약 예를 들어
형제님 아드님이 본당에서 석연찮은 이유로 큰 상처를 받게 되었을 때
다른 이들이 함께 마음 아파하며 상처를 나눠주기보다
그런건 변호사한테 맡겨'라고 돈봉투 주면 감사하다며 넙쭉 받으시겠는지요?
아파하고 있는 이에게는 가장 필요한 것이 함께 마음을 나누고 상처를 다독거려주는 것 아닐까요?
6. 참고로
용산 참사에서 있었던 폭력들에 대해서 원칙적으로 옳치 않았다는게 저의 기본적인 전제입니다.
용산 문제가 진작 해결되지 못하고 계속 지연되는 이유가 바로 그러한 사고 때문입니다.
용서하고 사랑으로 감싸는 것은 국민들이 이웃들에게 할 일이며 국가와 공권력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리고 왜 다르고 또 달라야 하는지 아마도 그 이유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국가 또는 공권력이 모든 불법한 일들을 개인들이 하듯 용서하고 감싸주면 사회가 어떻게 될까요?
국민들도 함께 아파하고 고통과 슬픔을 나누더라도 그들의 과오를 나무래야 불행을 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잘못을 무조건 상대에게 돌리면서 자식을 감싸는 이기적인 부모처럼 행동하고 있지 않은지요.
많은 신자들과 일반인들은 용산 희생자에게 적극적이신 신부님들을 정구사 소속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활동 자체는 공감하면서도 희생자들의 일방적인 '옹호' '편향'을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적정한 선에서 끝내지 않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듯한 모습에 머리를 흔들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아무리 옳고 정당한 일도 신뢰를 잃으면 쉽게 공감하려 하지 않습니다.
대개의 일반인들은 근래 일부 신부님들 활동에 실망하고 있으며 특히 용산 문제로 더욱 부정적입니다.
교회의 상당수 신자들도 이해 못하는데 여타 일반인들이야 오죽 하겠습니까?
말씀대로 '예' 해야 할 때 '예' 하고 '아니오' 해야 할 때 '아니오' 했는지 겸허하게 돌아 볼 일입니다.
그리고 워낙 많아 선별적 활동이 불가피하다 해도 그 선별 기준을 이해 못하는 이들이 매우 많습니다.
불행한 일에 동참하여 위로해 주는 일도 중요하지만 불필요한 오해 불식도 그 못지 않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안중근 의사에게 고백성사를 거부했던 것은 잘 한 일일까요?
일제 강점기 시절 독립운동가들의 폭력저항은
양육강식 시대에 자신들보다 약한 동물만 잡아 먹는 포악한 짐승과 같은 강대국 일본에게서
빼앗긴 나라를 되 찾기 위한 약소국의 부득이한 폭력이었고 그 방법밖에 없던 불행했던 시대의 일입니다.
세계사에도 강대국에게 나라를 빼앗긴 약소국들이 폭력으로 저항한 예는 무수히 많으며
국제사회는 그런 폭력에 대하여 그 비슷한 행위를 하고 있는 일부 국가들 외에는 대부분 비난하지 않습니다.
한 나라와 민족이 영원히 없어지고 멸망해야 하는 상황에서 나라와 후손들을 위한 몸부림이기 때문이지요.
오늘의 강대국들도 과거 어려웠을 때 국가를 위해 적국 또는 적장을 괴롭히고 죽인 이들을 영웅시합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 개인의 이익이 아닌 국가와 국민의 생존을 위해 했다는 점이 다르고 또 중요한 것입니다.
몇몇 개인의 지나친 욕심 때문에 발생한 용산참사를 독립운동에 몸 바친 애국행위에 비교는 당치 않습니다.
고백성사를 거부한 신부님의 잘 잘못 문제는 평신자들이 판단할 수없고 해서도 안 되는 일이며
다만, 만일 옛날의 그런 상황이 오늘 또 발생한다면 수많은 신자들이 제2의 안의사를 자임하리라 믿습니다.
구원 여부를 떠나서 나라와 국민을 사랑하여 목숨 바치는 것이 의로운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2. 용산참사의 원초적인 시발점은 전철연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욕심때문 아닐까요?
재개발 광풍에 휘말려, 돈에 눈이 멀어 자기 이웃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자신의 잇속만을 두둑히 챙기려했던 그 욕심때문 아닐까요?
전철연의 문제는 그 다음 문제구요....
순수한 목적의 보다 더 나은 도시환경과 생활환경 문제를 도외시한다면 그렇게 보는 것이 일반적이겠지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순수한 것인지 욕심 때문인지 구분하기 어렵고 모호하게 재개발 목적이 변질되었습니다.
속내는 욕심이 분명한데 겉으론 도시 미관과 주민들 생활환경 개선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전철연은 순전히 그러한 인간적인 욕심 성취만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고요.
3. "우리가 종교적으로 원죄가 되었던 것은....." 이 문장은 비문입니다.
우리=원죄??? 이게 대체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이 부분은 저도 원문을 정확히 몰라 견해를 유보합니다.
4. 변호사들과 많은 분들이 용산참사 해결을 위해 봉사하고 계시죠.
문제는 3000쪽이 넘는 조사기록을 공개하지 않으며
재판에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들이 있다는 거 아닐까요?
사건 해결 지연 이유가 조사기록 미공개에 있다는 주장이 바로 '문제'라는 생각을 왜 하지 못하는지....
용산참사를 보는 대부분 사람들은 3,000쪽이 아니라 참사 원인 즉 '불법 폭력시위'를 훨씬 더 중시합니다.
애당초 참사의 원인이 그들의 '불법 폭력시위'에 있다면서 미공개 운운을 본질 호도 행위로 보는 거지요.
즉 '불법 폭력시위'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그릇된 폭력시위가 참사의 근본적인 본질이고 핵심이며
과거 정부들은 그런 방법이 통했지만 이제는 정부도 지각있는 대다수 국민들도 용납하지 않는 상황입니다.
진작에 그랬어야 할 일이었으며 이제라도 폭력을 앞세운 요구는 이유불문 절대로 안 된다는 것입니다.
경찰은 폭력시위를 방치하면 안 되는 입장이고 또 그 분야 전문가들이지만 실수는 이해해 줘야 합니다.
경찰도 희생되었는데 폭력시위를 자행하다 희생된 이들보다 못한 목숨 아니며 오히려 훨씬 더 숭고합니다.
경찰 직업이 이른바 모두가 선망하는 대우 좋고 편하기 그지 없는 '철밥통' 이 아니잖습니까?
좀 더 신중히 대처하지 못한 실수 비판은 몰라도 과잉진압 운운은 방관했어야 했다는 주장 다름 아니며
아무 죄없는 건물 앞 도로 통행자들이 생명을 위협받고 있는데도 모른체 방치하면 직무유기입니다.
그 상황에선 강제진압 외 다른 수단은 없으며 화재에 의한 희생자 발생은 피차 예상 못한 사고일 뿐입니다.
미공개 문건 공개 주장도 법원에서 검찰의 미공개를 합법으로 판결했다고 하던데 그에 승복할 수 없다면
상급법원에 항소하고 그래도 아니면 대법원에 상고하면 되며 그도 아니면 끝내야 할 문제입니다.
법이 적법하다고 인정한 미공개인데 뭐가 문제고 그 법은 누가 어디에 어떻게 적용하라고 있는 것입니까?
불법 폭력시위가 참사의 핵심적 원인인데도 은근슬적 미공개에 모든 문제가 있다는듯이 주장하고 있는데
국민들이 그렇듯 모두가 어리석고 우매하다고 보는 이들이 더 큰 문제입니다.
그러한 불법 행태가 통했던 지난 날이 잘못된 것이고 그 짓이 통하지 않는 오늘이 잘못일 수 없습니다.
5. 마지막으로... 만약 예를 들어
형제님 아드님이 본당에서 석연찮은 이유로 큰 상처를 받게 되었을 때
다른 이들이 함께 마음 아파하며 상처를 나눠주기보다
그런건 변호사한테 맡겨'라고 돈봉투 주면 감사하다며 넙쭉 받으시겠는지요?
아파하고 있는 이에게는 가장 필요한 것이 함께 마음을 나누고 상처를 다독거려주는 것 아닐까요?
6. 참고로
용산 참사에서 있었던 폭력들에 대해서 원칙적으로 옳치 않았다는게 저의 기본적인 전제입니다.
용산 문제가 진작 해결되지 못하고 계속 지연되는 이유가 바로 그러한 사고 때문입니다.
용서하고 사랑으로 감싸는 것은 국민들이 이웃들에게 할 일이며 국가와 공권력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리고 왜 다르고 또 달라야 하는지 아마도 그 이유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국가 또는 공권력이 모든 불법한 일들을 개인들이 하듯 용서하고 감싸주면 사회가 어떻게 될까요?
국민들도 함께 아파하고 고통과 슬픔을 나누더라도 그들의 과오를 나무래야 불행을 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잘못을 무조건 상대에게 돌리면서 자식을 감싸는 이기적인 부모처럼 행동하고 있지 않은지요.
많은 신자들과 일반인들은 용산 희생자에게 적극적이신 신부님들을 정구사 소속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활동 자체는 공감하면서도 희생자들의 일방적인 '옹호' '편향'을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적정한 선에서 끝내지 않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듯한 모습에 머리를 흔들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아무리 옳고 정당한 일도 신뢰를 잃으면 쉽게 공감하려 하지 않습니다.
대개의 일반인들은 근래 일부 신부님들 활동에 실망하고 있으며 특히 용산 문제로 더욱 부정적입니다.
교회의 상당수 신자들도 이해 못하는데 여타 일반인들이야 오죽 하겠습니까?
말씀대로 '예' 해야 할 때 '예' 하고 '아니오' 해야 할 때 '아니오' 했는지 겸허하게 돌아 볼 일입니다.
그리고 워낙 많아 선별적 활동이 불가피하다 해도 그 선별 기준을 이해 못하는 이들이 매우 많습니다.
불행한 일에 동참하여 위로해 주는 일도 중요하지만 불필요한 오해 불식도 그 못지 않게 중요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