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이 미국사람들보다 잘 난 근거가 있나요?
저는 제 60 평생에서 10 여년간, 선진국 사람들과 함께 전쟁도 치러보고, 공부도 해보고, 일상 생활도 해 보았습니다. 1960년대 후반, 저는 소위로 월남에 파병했습니다. 병사들로 하여금 모래 밭 위에 서있는 미군 소령의 발밑에 대고 조준사격을 하라 시켰습니다. 뚱뚱한 미군소령은 그야말로 혼비백산하여 도망을 쳤습니다. 소령이 한국군을 멸시하는 행동을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다음 날, 미군 중령이 제게 와서 사과를 했습니다. 그 소령을 다른 것으로 전근 보냈다고도 했습니다. 미군 장교들 중에는 나쁜 소령이 있는가 하면, 훌륭한 중령도 있었습니다.
미군 장교클럽에는 가끔 월남에서 일하는 한국 민간인들이 밤에 와서 술을 마셨습니다. 어쩌다 한번 들렸더니, 한국 사람들을 향해 미군 병사들이 조소를 던지며 멸시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가서 항의하다가 집단 폭행을 당해 앞니가 두 대나 부러졌습니다. 그 때에 저는 미군이라면 모두 쏘아 죽이고 싶었습니다.
1978년, 미해군대학원에서 공부를 할 때, 한국군 장군 몇 사람이 한달 과정으로 교육을 받으러 왔습니다. 한국에서 맞춘 안경들이 답답하고 어지러워 불편하다 하길래 제가 미군병원을 권했습니다. 수속을 하려 하는데 미 여군 중위가 차별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저는 그녀의 태도를 윗선에 항의하겠다고 다그쳤고, 그녀는 울먹이면서 사과를 했습니다. 세 분의 장군은 미군 병원에서 해준 안경을 쓰고는 이구동성으로 세상이 다 달라 보인다며 기뻐했습니다. 미국인들과의 접촉에서 이런 일들만 계속 당한다면 미국인들이 너무 밉고 저주하고 싶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인간들은 세계 어디에나 다 있습니다.
지금부터는 좋은 기억 몇 개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월남에서는 사병이 정비해 주는 차만 타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미국에 가서 타이어에 펑크가 났습니다. 아무런 상식이 없는 저는 비를 맞으며 납작하게 주저앉은 차만 바라보았습니다. 휴가를 즐기려 이웃 고급 호텔에 머물던 한 쌍의 부부가 곱게 차려입은 옷을 비에 적시고, 손에 검은 기름때를 묻히며 타이어를 갈아 주었습니다. 부부는 제가 차를 몰고 가는 뒷모습을 보며 손을 흔들어 주었습니다. 비를 맞으면서!
미 해군병원, 아들 녀석의 병실은 7층, 수술실은 4층이었습니다. 4층으로 귀 수술을 받으러 가는 아들 녀석이 겁을 먹었습니다. 보호자가 4층 수술층에 내려온다는 건 금기사항이었습니다. 그런데, 쌀쌀해 보이던 최고 의사가 저에게 수술실 출입용 옷을 입고 수술실까지 들어와 아이의 손을 잡아주라고 했습니다. 수술대에 오른 아이는 제 얼굴을 보면서 안심했습니다. 고깔 형의 마스크를 코에 대자 아들 녀석은 잠이 들었습니다.
의사는 유리문 밖에 의자를 하나 내주면서 수술과정을 들여다보라고 했습니다. 수술실과 복도는 유리문으로 격리돼 있었습니다. 수술대에 있는 여 의사가 틈틈이 대열에서 이탈해 나와 손가락으로 동그라미 사인을 해보이면서 윙크를 해 주었습니다. 수술이 잘 돼 간다며 저를 안심시켜 주는 것이었습니다. 공포에 떠는 아이의 마음과 수술과정이 궁금해 할 아버지의 마음을 너무나 세심하고 친절하게 돌보아 준 것입니다.
한 반에 있는 미 해병대 소령이 저와 가까웠습니다. 하루는 저를 자기 집으로 초청했습니다. 그런데 아주 어린 아이가 뛰어나와 “대~디” 하면서 아빠의 목에 매달려 사랑과 행복감감을 마음껏 표현했습니다. 그 여아는 한국 사람들이 버린 아이였습니다.
1987년 4월, 저는 대령이라는 거추장 스러운 계급을 버리고 미국으로 갔습니다. 사정상 돈이 모자라 동방 양자회에서 어린 아이 셋을 비행기에 태우고 갔습니다. 나은지 4개월짜리도 있었고, 6개월짜리도 있었습니다. 아기들이 울면 창피하다고 생각해서 기저귀를 자주 갈아 주었습니다. 시카고 오해오 비행장에 착륙했습니다. 모든 손님들이 내리고 난 후, 여러 명의 미국 어머니들이 입양아를 맞이한다는 기분에 들떠서 기체내로 들어왔습니다. 아이들을 보자마자 기록을 대조하며 자기 아이를 찾자, 얼굴에 입을 맞추며 그렇게 좋아할 수 없었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버린 아이들을!
44세였던 저 역시 한국이 버린 큰 아이였습니다. 연구소에 있을 때, 미 국방성에 있던 2성 장군 급의 민간관리(SES)가 제 연구 재능을 늘 칭찬해 주었습니다. 한국에서는 국방장관-차관-기획실장이 저를 탄압하여 저를 버렸지만, 미국에 가니 그 고급관리가 저를 반갑게 맞으며 “당신 같은 사람, 한국이 안 쓰면 미국이 쓴다”며 고용해 주었습니다. H-1비자를 내주면서.
미국 교수들은 제가 배우고 싶은 게 있다고 하면 토요일, 일요일에도 따로 시간을 정해서 가르쳐 주었습니다. 제가 배우고 싶은 것이 과정에 오픈 돼 있지 않을 때에는 1대 1 과정을 신설하여 여느 과정과 똑같이 시간을 지키며 강의를 해주었습니다. 그야말로 귀족공부였습니다. 의미 그대로의 상아탑, 아름다운 그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저는 한국의 대학원들이 어떻게 석사와 박사 과정을 공부하는지 매우 잘 압니다. 제가 다닌 미국의 대학원이 고색창연한 상아탑이라면 한국의 대학가는 그야말로 상업적이요 눈가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국 서해안은 가는 곳 마다 공원이요 절경입니다. 곳곳에 차를 세우면 다람쥐와 새들이 와서 손에 있는 먹이들을 먹습니다. 어린 아이들에게 미국 부모들이 가르칩니다. 동물들을 존중하라고요. 모션을 크게 쓰거나 빠르게 하지 말고, 크게 말하지 말고, 애정 있는 말로 대화를 하라고 시킵니다. 어쩌다 한국에서 온 가족들이 가담하면 아이가 다람쥐와 새들을 멀리 쫓아버립니다.
생명도 인격도 없는 한국사회
같은 시기에 한국에 돌아와 아이들을 보았습니다. 노란 병아리들을 사다가 2층에서 내기를 겁니다. 병아리를 던져서 누구의 병아리가 살고 누구의 것이 죽는지를! 이렇게 자란 아이들이 커서 의사가 되면 환자의 아픔과 가족의 아픔을 전혀 도외시할 수 있습니다. 며칠 전, 간호보조원들이 신생아들을 마치 생명이 없는 장난감처럼 마구 다루는 모습이 보도되어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렇게 허술한 병원에 어떻게 생명을 의탁하겠습니까? 싱가포르, 태국, 심지어는 중국까지도 친절하고 안전해 보이도록 개발한 의료 시스템으로 외국인 환자를 유치하고 있다는 뉴스를 봅니다. 어쩌다가 이 땅의 사람들이 이렇듯 동물적으로 변해가고 있는지 참으로 기가 막힙니다.
당신들이 입만 열면 외치는 민족! 민족이 그렇게 귀하고 훌륭한 것이면 어째서 자기가 낳은 아기를 내다 버리며, 그 버린 아이들을 한국이 맡아 기르지 않고 왜 미국으로 보냅니까? 내 민족이 낳은 자식들을!
민족이 그렇게 귀하고 훌륭한 가치라면 미국인들은 어째서 생김 새 조차 낯선 다른 민족이 낳은 자식들을 갖다 기릅니까? 더구나 장애인 자식들까지도?
새와 다람쥐에게도 속삭이며 친구가 되려고 노력하는 미국 아이들은 누구이고, 병아리를 사다가 아파트에서 떨어트려 죽나 안 죽나를 보는 비정한 아이들, 그리고 신생아들 장난감처럼 가지고 노는 간호인들은 누구입니까?
한쪽은 문명권 인간들이고, 다른 한 쪽은 비문명권 인간들이 아닌가요? 비문명권으로 지정된 북한, 한승조 교수에 돌을 던지듯 사람들을 끌고 언덕으로 올라가 만인이 보는 앞에서 총으로 쏘아죽이는 북한이 그리도 선망의 대상인가요? 사랑도, 애정도, 에티켓도 없는 한국인들을 누가 위대한 민족이라 했고, 사랑과 품위와 종교적 심성들이 넘치는 미국인들을 누가 세상에서 쓸어버려야 할 인류의 적이라고 가르쳤습니까?
공부는 하지 않고, 정상적인 경쟁 사회에서는 살아날 길이 암담한 사람들, 그래서 내세울 거라고는 오직 색다른 것, 그 중에서도 국민 모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안보라는 보물에 역행해야 세인의 관심을 받을 거라는 삐뚤어진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당신들이 아닌가요?
당신들이 언제 미국에 가서 살아 보았으며, 당신들이 언제 미국인과 함께 생활해 보았으며, 미국이라는 국가와 사람들에 대해 연구했습니까? 미국과 미국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누군가가 장입해준 코드만 외우는 로봇이 바로 당신들입니다. 그 증오심과 코드를 심어준 선생들이 누구인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게 누구였습니까?
스스로 공부하고 스스로 생각할 능력이 없는 당신들에게 인터넷이 있다는 것은 국가사회의 건강을 위해 참으로 비극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에겐 명예와 품위라는 게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들에겐 그게 없어 보입니다. 당신들의 명예와 품위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당신들에게 존중받을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당신들의 글을 보면 당신들이 이 세상 최고라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당신들이 쓴 글은 겨우 함부로 방치한 초등학생들이나 쓸 수 있는 그런 글들입니다. 욕하고 조롱하고 어른들을 가지고 놀고!
미국의 제 모교에 유명한 통계학자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분으로부터 다양한 방법으로 매트릭스를 사용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의 장남이 손재주가 있어서 아름다운 공작물들을 아주 잘 만들었습니다. 그것으로 애인과 앞날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며 부모 말을 듣지 않고 대학을 포기했습니다. 부모는 자기 인생 자기가 책임지는 거라며 더 이상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저는 그 집에 초대됐다가 이 사실을 알았습니다. 저는 그 장남과 이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너 지금 나와 이야기 하는 게 편하고 즐거우냐?”
“그럼요. 저는 지선생님을 아주 좋아합니다.”
“왜 그러냐?”
“우리 부모님들과 지박사님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면 품위가 있으면서도 즐거워요”
“지금 네가 만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냐?”
“그냥 아무 말이나 막 하고, 품위 같은 건 없어요”
“품위, 유머, 지혜, 이런 게 좋으냐?”
“그럼요”
“그런 것들은 적어도 대학교 이상은 졸업한 사람으로부터나 기대할 수 있지, 대학에서는 독서를 참으로 많이 한다. 독서는 사색과 지혜와 품위를 자극하고 그로부터 내면적 교양이 길러진단다. 고등학교만 졸업한 사람에게는 그런 기회가 별로 없고, 그래서 품위와는 거리가 멀게 길들여질 수 있단다. 품위 있는 사람들과 만나며 살려면 대학을 가거라. 그리고 독서를 많이 해라. 위인전부터”
무엇이 집혔던지 녀석은 곧바로 대학에 진학하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그 후 그의 부모님은 저를 마술사라고 부르며 고맙다 했습니다.
품위(dignity)! 이 세상에는 품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두 부류는 선진사회에도 존재하고 후진 사회에도 존재합니다. 그러나 선진사회와 후진사회가 다른 게 있습니다. 선진사회에서는 품위를 가꾸지 못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늘 품위를 동경하며 자기도 품위와 예의를 숭상하는 부류의 인간임을 나타내려 합니다. 품위를 많이 갖지 못한 사람은 그것을 많이 기른 사람을 존경하고, 적게 배운 사람은 많이 배운 사람을 존경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 제 가정은 정신적 물질적으로 가난한 부류에 속했습니다. 그래서 그것들을 많이 가진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존경했습니다. 그래서 자식들을 반듯하게 잘 가르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사회는 발전합니다.
RESPECT!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보면 자극이 생깁니다. "나도 저런 사람이 돼야지!"자기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람, 지금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무슨 발전이 있겠습니까? 이런게 당신들, 지지리도 못난 당신들입니다.
어른 없는 네티즌 사회
하지만, 한국의 삐뚫어진 네티즌들에겐 이런 개념이 전혀 없어 보입니다. 나보다 많이 가진 사람을 증오하고, 나보다 나은 사람을 조롱하며, 나이든 사람을 멸시합니다. 70평생, 80평생 가꾸어온 개인의 성가를 하루 아침에 땅바닥에 짓밟고 조리돌리며 야유하고 조롱하며 장난감으로 삼습니다. 아프리카 토인들에서나 불 수 있는 이 무서운 광경이 지금 한국의 삐뚫어진 네티즌들에서 보여지고 있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인터넷 1등국이라고들 합니다. PC방에 가보면 담배연기 자욱한 방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소란스러운 소리를 내며 게임에 몰두하고, 이런 저런 사이트를 찾아다니며 어른들을 희극화하는 일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냅니다. 이런 사람들의 장래는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훤합니다.
그들이 미워하는 미국인, 일본인들은 촌음을 아끼며 창의력을 기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들은 골방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습니까? 이런 자폐아들의 집합체를 놓고 어찌 인터넷 강국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PC방에서 무슨 창의력을 기르며, 어른들을 조롱하고 욕하는 일에 몰두하는 그런 사람들에게 무슨 창의력이 길러집니까?
“지상에서의 마지막 가정”이라는 일본 소설이 있습니다. 히키고모리라고 불리는 자폐증 환자를 아들로 둔 가족의 슬프고 답답한 이야기를 묘사한 소설입니다. 그 히키고모리는 두꺼운 검은 종이로 모든 창을 바르고 그야말로 암흑의 방에서 시간을 보냅니다. 어머니가 문을 두드리면 어머니를 때리고, 아버지도 때려 눕혀 병원으로 보내더니, 아예 집에서 내 쫓아 버렸습니다. 가정이 풍비박산됩니다. 4인으로 이루어진 한 가정에 단 한 사람의 자폐증 환자가 온 가정의 하루하루를 지겨운 날들로 채우게 하더니 결국에는 파산하게 만들었습니다.
당신들이 바로 대한민국 국민의 하루 하루를 불안하게 만들고, 급기야는 멸망하게 만들 그런 자쳬아들인 것입니다. 히키고모리 족!
포털 사이트의 역할
한국사회에는 네티즌들이 서식하는 넓은 온상들이 꽤 여럿 있습니다. 각 사이트마다 이념적 색깔이 있다는 것이 통념입니다. 사이트의 이념적 성향이 어떻든 간에 대한민국을 파괴하려는 목적이 아니라면 네티즌 문화를 건설적인 것으로 가꾸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봅니다. 해맑은 정서와 미래 지향적인 지혜를 교환하는 광장으로 가꾸어야 하는지, 아니면 지금처럼 음습하고, 살기가 등등하고, 품위와는 거리가 먼 아이들이 온갖 악을 배설하는 그런 배설장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각 사이트에 올라 있는 지만원, 한승조 등에 대한 표현을 한번 봐주시기 바랍니다. 한승조 교수는 수십만 마디의 단어들 중에서 한-두 개의 단어를 잘못 사용하였을 뿐입니다. 그의 역사관에는 학문의 세계에서 문제될 게 하나도 없는 건전한 내용들이 담겨있습니다. 그런데 그를 욕하는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은 그의 논문을 읽어보지도 않고. 질낮은 언론들이 전해주는 내용을 하느님의 진리로 믿고 그를 욕하고 짓밟았습니다. 학문 분야에도 학문의 자유가 있습니다. 학문의 자유를 언론이 나서서 대중을 선동하여 침해하는 것은 레닌과 모택동식 혁명방법입니다. 민주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저는 학문의 자유를 침해하는 사람들을 향해 “한교수에 돌 던지지 말라”고 했을 뿐입니다. 그랬더니 저를 친일파로 매도합니다. 미친 사회가 아니고는 이럴 수가 없습니다. 모두가 미쳤습니다. 200년 전의 아프리카 토인을 보는 느낌입니다. 최근 간호보조원들이 신생아를 장난감으로 취급하여 물의를 일으켰습니다. 아주 잔인했습니다. 그 이상의 잔인성이 지만원을 향해 표출됐습니다. 지만원이 원희룡의 펀치에 맞아 돌맞은 개구리처럼 경련을 일으키면서 피를 토하고 죽는 모습을 보면서 당신들 자식들의 가슴엔 어떤 그림이 그려집니가? 좋은 그림이 그려지겠습니까 아니면 사악한 그림이 그려지겠습니까? 어떤 그림을 그려야 당신들의 자식들 앞날에 도움이 되겠습니까?
60평생 극기과 절제와 노력으로 가꾸어온 인생입니다. 나름대로 가꾼 인생이 당신들 눈에는 짐승같이 보였고, 때려죽여야 할 동물로 보였습니까? 원희룡에게 맞아 피를 토하며, 돌맞은 개구리처럼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당신들은 어떤 쾌감을 느낍니까? 그게 사람이 할 짓인지 묻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당신들의 사이트에 접대해놓고 심심하면 열어보는 것이 당신들의 취미인지, 그것도 묻고 싶습니다. 그걸 패러디라고 해놓은 인간들이나, 그걸 유치해놓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랑하듯 보여주는 운영자들이나 다 같이 정상적인 인간들은 아닙니다.
지만원과 당신들을 놓고 볼 때, 어째서 당신들이 지만원보다 더 잘났다는 말입니까? 노력한 사람보다 노력하지 않는 불한당이 더 잘났다는 겁니까?
당신들을 한국 밖의 어느 외국 땅에 갖다 놓으면 국제 미아 신세가 됩니다. 세계적인 기준으로 보면 당신들은 사람 축에도 들지 못하는 최 하류, 쓰레기 같이 냄새풍기는 기피 동물들입니다. 조금도 가꾸어지지 않은 냄새나는 동물! 단지 당신이 덮고 있는 이불 속에서만 당신이 위대합니다. 하느님보다 더!
단지 못 배웠다는 것 때문만이 아닙니다. 타이타닉의 남 주인공 잭-도슨을 보십시오. 많이 배우진 못했지만 깨끗한 영혼, 자유로운 영혼을 가졌습니다. 당신들의 영혼은 깨끗하지도 않고 자유롭지도 않습니다. 열등의식에 사로잡히고, 김일성 주체사상에 포로가 된 로봇에 불과한 존재들입니다.
시스템클럽은 한낱 개인 사이트입니다. 하루에 방문하는 사람 수는 많지 않아도 격이 있습니다. 격이 낮은 사람은 들어올 수 없습니다. 한국사회의 포털 사이트! 방문자 수는 많겠지만 문화가 없습니다. 수가 중요한 것 같지만 정말로 중요한 건 가치입니다. 좀 더 격이 있고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사이버 광장으로, 한국사회를 밝게 이끌어 나갈 수 있는 품격 있는 사이버 문화의 공간으로 발전시켜야 하겠다는데 착안을 해준다면 그나마 매우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2005. 5. 17 지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