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소리 신부님의 주보글중에서>
기억 못하는 선물들
2011.11.06
외국에서 4년 정도 수련 생활을 마친 수녀님께서 모처럼 찾아오셨다.
자리에 앉자마자 책상에 놓여 있는 커다란 십자가를 쳐다보더니 어디서 구했냐고 묻는 것이었다.
기가 막혔다. 그 십자가는 어디서 구하기 힘든 십자가라며, 바로 그 수녀님께서 4년 전 외국으로 떠나며 주신 것인데 말이다.
자신이 준 선물을 잊은 것이다. 애지중지 소장했던 것이라며 누구에게도 주지 말라고 신신당부까지 하며 준 십자가인데 말이다.
몇 년 전 추석 명절날의 일이다.
추석 전날에 선물을 주고 간 형제가 추석날 점심을 함께하겠다며 부인과 함께 사제관에 찾아왔다. 식사를 마친 후, 명절에 받은 선물 꾸러미 하나를 들어 건네주었다. 부인과 맛있게 먹으라고 말이다.
그런데 선물을 받은 그 형제의 얼굴이 뻘겋게 달아오르는 것이 아닌가? “신부님, 이건 어제 제가 드린 과자 선물이잖아요?” 나 역시 얼굴이 달아올랐다. 누가 준 선물인지 까맣게 잊어버린 것이다.
평생을 살면서 내가 누구에게 준 선물과 누군가로부터 받은 선물들을 기억해 본다. 그리고 물질적인 선물만 아니라 따뜻한 위로와 격려가 담긴 마음의 선물들도 기억해본다.
누구와 무엇을 주고받았는지……. 잊은 것이 기억되는 것보다 훨씬 많을 성싶다. 오고 간 선물이 많아서만도 아닐 것 같은데 말이다.
이러한 생각을 하면서 나에게 정성을 담아 선물한 분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게 미안할 뿐이다
내게 수시로 선물을 주는 분이 누구이고, 받은 선물 가운데 가장 큰 선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그것은 나를 소중히 아끼시고 좋아하시는 하느님께서 주신 생명의 선물, 즉 은총의 선물이 아닐까?
눈으로 보이는 선물들과 ‘사랑’, ‘용서’, ‘자비’, ‘구원’ 등의 굵직굵직한 초자연적인 생명의 선물들을 그분께 받으면서도
그런 선물을 까맣게 잊고 사는 바보스런 우리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과분한 분의 과분한 선물임을 너무 잊고 사는 우리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