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과 믿음의 단순성

2009. 12. 31. 오후 4:17:31

글자
- 1857년 주의 공현 대축일 슈브리에 신부님 강론 발췌-
 
그리스도 신자 여러분, 하느님께 민첩하게 복종하는 덕행이 우리에게 있습니까?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시는 일을 즉시 이행하는 민첩함이 우리에게 있습니까?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영혼에 거룩한 영감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우리의 영혼에 우리의 마음에  말씀하신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분의 사제들의 말씀을 통해 우리 마음에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분의 계명과 그분의 교회와 우리 지도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특히   그 분의 은총의 말씀을 통해 우리 마음에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느님께 복종하고 있습니까?
대체로 투덜거리면서, 마지 못해 일을 하거나, 아니면 늦장을 부리면서 지체하지는 않습니까?
 
만일 동방박사들이 우리가 흔히 하듯이 이치를 따졌다면, 아가 예수님께 경배 드리는 복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며, 성인이 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은총을 잘 활용하였으며,     빛을 보았을 때 길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정해두신 목적지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민첩하게 하느님께 복종하고, 하느님의 뜻을 행해야 합니다.
 
우리가 죄인에서 가장 완전한 의인에 이르기까지 영혼의 모든 단계를 경험해 본다면, 우리는 우리를 부르는 하느님의 음성에 응답하지 않고, 우리를 방해하거나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모든 것을 두려워하는, 또한 하느님의 은총을 무시하고, 덕행의 삶으로 돌아오라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억누르고, 하느님의 음성을 알아듣지 못하는 우리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아기 예수님께 경배 드리기 위해, 멀리서부터 찾아온 동방박사들의 모범을 보면서, 그리고    먼 곳으로부터 찾아온 그들이 치른 희생과 그들의 믿음의 단순성을 보면서, 우리는 하느님을  위해 어떠한 희생도 하지 않고 있으며, 모든 일에서 자신의 만족과 평안만을 추구하면서,     조금이라도 수고가 되는 일은 피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오 하느님! 믿음과 참된 덕행과 참된 용기와 영으로 진실하게 하느님을 섬기는 영혼들을 찾아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하느님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들을, 하느님을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믿음과 은총으로 거룩한 영감에 기쁘고 신속하게 복종하는 사람들을  찾아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만약 행동을 억제하고, 자신의 기질과 습벽을 제어하여  하느님을 위해 고통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진실한 덕행도 진정한 종교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유감스럽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느님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겉모습으로만 종교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단지 일부 사람들만이 자신들의 구원을 위해 힘쓰며, 자신을 희생하며, 애덕을 실천합니다.
프랑스 아르스 본당의 성인인 비안네 신부님은 아기 예수님이 사람들의 방문을 많이 받지 못하고, 아기하느님의 구유를 경배하는 동방박사들과 목동들이 너무 적다는 이유로 여러 날 동안 우셨다고 합니다.
그러니 부디 하느님에 대해 너무 무심하지 마십시오.
활기 없고 무기력한 우리의 신앙에 활력을 불어 넣읍시다. 동방박사들의 모범이 우리에게 용기를 불러일으키고,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과 사랑을 북돋아 주기를 바랍니다.
희생 없이는 종교도 없습니다. 하느님께 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평안과 기쁨과 재산을 희생할 줄 알아야 합니다. 동방박사들을 본받으십시오. 여러분의 구체적인 삶을 들여다 보십시오. 
그리고 하느님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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