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저녁 6시 30분에 소주 한 병을 사 들고, 치즈 2조각으로 다 마셨습니다.
마누라가 그래도 어제 저녁 술 마시는 것은 용서를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8시경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오늘 새벽에 일찍 일어나기 위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새벽 4시 30분에 잠에서 깨어 준비를 했습니다.
문득 TV를 켜 보니, 네덜란드와 코스타리카의 월드컵 8강전에 시작하기 직전 이였습니다.
5시 40분에 마누라와 같이 성당에 갔습니다.
글로리아 자매님의 장례미사에 참석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성당 모든 좌석이 꽉 찼습니다.
227번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 입당 성가를 시작할 때부터,
이곳 저곳에서 흐느낌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독서 하시는 자매님의 첫 시작부터가 불안해 보였습니다.
독서 하시는 도중에도 자꾸 글로리아 자매님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드디어 마무리 때에는 몇 초간의 멈춤에 이어
겨우겨우 ‘주님의 말씀 이였습니다’ 를 하셨습니다.
참석한 신자들의 ‘하느님 고맙습니다’ 라는 소리도,
내가 겪은 미사 중, 가장 작은 목소리로 들렸습니다.
저는 미사 중에도 집중을 하지 못하고, 뒷좌석에서 몇 번이고,
글로리아 자매님의 남편과 함께 앉아 있는 아들 모습을 보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 섰다 앉았다를 반복했습니다.
울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몇 번을 쳐다 보았는데,
수람이는 안경을 꺼내고 눈물을 훔치는 모습이 제게 보였습니다.
제 아들과 같은 첫영성체, 그리고 같은 우리 성당의 복사,
우리 아들과 오버랩 되면서 더욱 더 가슴이 메여 왔습니다.
신부님 강론이 시작되었습니다.
‘제발 제발 슬픈 이야기 하지 마세요’ 하고 마음 속으로 외쳤습니다.
그러나 제 바램과는 다르게, 신부님도 결국은 말씀을 여러 번 멈췄습니다.
목이 메어지는 인간의 본능을 신부님도 숨기지 못했습니다.
미사 중에 하느님이 원망스럽다는 말씀도,
결국엔 우리들의 육체의 죽음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씀도,
순간 순간 멈추기를 반복 하셨습니다.
마누라는 제 옆에서 미사를 보는 것이 아니라 흐느끼러 온 것 같았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옆구리를 제가 찔러 울음을 멈추게 하고 싶었지만, 오늘은 그냥 가만히 있었습니다.
잠시 잠시 스치는 가슴 메임이 제게도 찾아 왔기 때문입니다.
글로리아 자매님이 참숯가마 찜질방에 가고 싶다는 소리를 듣고,
회사 휴가를 내고 준비를 해서 여러 자매님들과 같이 갔다 왔다는 소식,
7월 4일날은 나도 같이 운전을 해서 같이 갈 거라는 마누라와의 약속,
글로리아 자매님의 병 악화로 결국은 가질 못하고 말았지만,
그 때 저도 같이 한번 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멈춰질 것 같았던 신부님의 강론도 겨우 겨우 무사히 마쳤습니다.
파견 미사를 하는 도중에도 많은 자매님들의 흐느낌은 계속 되었습니다.
미사 중에 그런 흐느낌의 소리는 처음 들었고,
장례미사는 가족과 친지들의 울음과 통곡은 가끔 들었지만,
신자들의 절반이상이 눈시울이 붉어져, 울고 있는 모습을 본 것은 오늘 미사가 처음 이였습니다.
서서히 장례식을 빠져 나가는 글로리아 자매님의 영구시신은 그렇게 성당 밖으로 나갔습니다.
몇 분의 자매님들은 차를 타고 벽제로 떠나시고,
성당 1층에는 수람이 첫 영성체 할 때 같은 반 이였던 자매님들이 모였습니다.
수녀님도 같이 좌석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고 저는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비신자인 수람이 아빠와 독실한 신자인 우리 인창동 성당의 복사 수람이..
앞으로 어떻게 될 지가 제 머리를 흔들고 있습니다.
또 시간이라는 악마는 우리들 뇌리에서 서서히 수람이를 잊혀져 가게 만들겠지요..
어쩌면, 복사를 할 수 없을지도 모르고, 우리 성당을 다닐 수 없을지도 모르는
수람이를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은 정영 없는 것일까요?
결국 살아 있는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천국으로 이끌어 달라는 기도,
정녕 우리들에겐 그것밖에 할 수 없는 것이
슬프지는 하루입니다.
그래도 우리들의 기도로 글로리아 자매님이 예수님과 함께하는
우리들이 가야만 하는 세계,
그 하늘 나라의 천국으로 가실 수 있다면
정말 정말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