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을 알기 전 어느날..

2011. 5. 31. 오전 3:3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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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9월 어느 날

 

4살짜리 애기가 병원으로 실려 갔습니다.

복수에 물이 차서 배가 산더미만 하고,

고추 아래 붕알이 풍선처럼 커지는 현상이 일어 났기 때문입니다.

 

가까운 구리 한양대 병원 보다는

좀 더 큰 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어느 소아과 의사의 말을 듣고,

마누라는 4살짜리 아들과 7살 짜리 딸을 데리고 지하철을 타고,

다시 택시를 타고, 현대 아산병원으로 달려 갔습니다.

 

7월과 8

 

2개월을 을지 훈련관계로 출장만으로 보낸 저에게 전화가 온 것은, 

마누라가 택시를 타고 88 올림픽 도로를 달리면서였습니다.

 

전화 받고 차를 돌려서 대구에서 서울 아산 병원으로 가는 데 걸린 시간은

2시간 30분 정도였습니다.

 

11시경에 도착한 응급실 입구에서 마누라는 눈물 범벅이 되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와 우노

 

한마디 던지고,

응급실 침대에 누워있는 애기에게로 달려 갔습니다.

 

팔에 링겔을 꼽고, 곤히 잠자고 있는 4살짜리 아들 옆에서

피를 뽑아야 한다고 간호사는 주사기를 들이대고 있었습니다.

 

잠에서 깬 아기는 2개월 만에 보는 아빠가 옆에 있는 기쁨도 잠깐,

 

아빠 너무 아파, 너무 아파, 주사 안 맞을래.. 너무 아파…’

너무 힘을 주어 파르르 몸이 떨리기까지 했습니다.

 

전 온 몸으로애기야 참아, 조금만 참아.. ‘ 하고 같이 울부 짖었습니다.

 

반항하는 아기를 손으로 짓누르며,

내 얼굴은 떨어지는 눈물과 땀으로 범벅이 되고,

 

마누라는 저만치서 우리를 쳐다 보면서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표정을 지어면서 울고 있었습니다.

 

팔에서는 피 뽑기를 실패 하고, 다리에 다시 주사를 꽂아 피를 뽑아 내는데는

참으로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느껴졌습니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7살 짜리 딸래미는 울다가 지쳐 옆 고객용 의자에 누워

잠이 들고 있었습니다.

 

다음날 병실을 겨우 잡은 후, 의사의 진단은신 증후군이라는

10만명중에 1-2명 걸리는 희귀한 병으로 진단이 나왔습니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아기를 가진 죄인가 싶기도 하고,

무조건 내 잘못이라 여겨지는 시간이 흘러 갔습니다.

 

스테로이드로 치료를 하는 도중에 발생하는 고열과, 복통,

그리고 안압이 높아져서 눈을 계속 비비는 등, 만병 통치약인스테로이드의 부작용은

입원한 지 일주일이 지난 후에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6인실의 대기자가 너무 많아, 특급 호텔의 숙박료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생활은 열흘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겨우 얻은 6인실로 이사를 하는 날,

내 아기보다 더 큰 병을 얻은 환자는 없을 거라 확신하면서

우울과 슬픔에 찬 모습으로

짐을 나르기 시작했는데,

 

하나, , 침상에 앉아 있는 아기들의 모습들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갑자기 부끄러움과 함께, 저 스스로에게 옹졸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한,

다섯 침상에서의 어린 환자들 모습이 저를 일깨우기 시작했습니다.

 

출입문 옆에 있는 침상에서는

새벽 6시에 과일을 팔기 위해  새벽에 병실에서 나가는

어느 아낙의 5살짜리 아기는

 

기계(?)가 없으면 숨을 쉴 수 없는,

의사도 포기했지만, 퇴원을 할 수 가 없는 그런 침상이였습니다.

 

그 아줌마의 소원은 ...

'치료 해서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는 병이면, 얼마나 행복한가'  였습니다.

 

또 다른 침상에는 역시 산소 호흡기 없이는 살 수 없는 4살짜리 아기였는데,

그 엄마가 잠을 자는 것을 저는 본 적이 없습니다.

 

낮이고, 밤이고, 동화책을 읽어 주는 모습은,

처량하다 못해 정신 이상자로까지 느껴 지게 하는 모습이였습니다.

분명 아기는 의식이 없어 보이는데, 의사가 회진을 돌 때면,

'선생님, 우리 애기가 내 말에 눈을 깜박였어요, 좋아 지고 있는거죠?'

 

의사가 손 댈 수 없는 일부의 병은신의 영역이라고 말 하지만,

만일 그 아이가 완쾌된다면, 그건 분명 의사의 힘도, 신의 힘도 아닌,

엄마의 힘이라고, 과감히 전 얘기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침상 바로 옆의 아기는 태어난 지 6개월이 되었다고 하는데,

신체의 크기는 갓난 아기와 비슷하게만 느껴 졌습니다.

 

역시 그 애기도 산소 호흡기(?)를 코에 걸고 있었는데,

그 기계 돌아 가는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잠을 잘 수가 없는데도,

나머지 5개의 침상에서는 아무 불평이 없었습니다.  

 

그 애기의 부모는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의 얼굴 형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죄스러운 모습, 스스로 자신의 잘못이라고 자학하는 모습,

 

3일째에 접어 들면서도,

하루 종일 커튼을 치고 있는 그 젊은 부부의 목소리를

의사와의 대화 이외에는 저는 한번도 들어 보질 못했습니다.

 

부산에서 올라 왔다는 또 한 부부는

엄마는 보조 침대에서 자고,

아빠는 이불을 가지고, 1층에 놓여진 4개짜리 고객용 의자에서 잠을 자고

아침이면 올라오곤 했습니다. 10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 아인데, 수술을 2번째 했다고 했습니다.

 

우리 애기가 걸린 병명신 증후군은 애기가 스스로 통증을 전혀 느낄 수

없는 병이라, 가장 시끄럽고, 말 많고, 까불고 떼쓰는 것은 그 병실에서

우리 애기 뿐이였습니다.

 

간호사가 주사를 가지고 오면, 악을 쓰면서,

 

'아빠, 매매 가져와, 저 누나 매매 해 줘..매매 큰 거 가지고 와 빨리.. .....'

 

그나마 다른 침상에서도 미소를 돌게 해 주는 그런 시간이였습니다.

 

오늘로써 19일째를 맞이하는데, 아직도 퇴원의 조짐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까마득한 옛날 기억들이 떠 올랐습니다.

하느님을 알기 전의 사건 들이였습니다.

 

내가 조금 더 빨리 알았다면,

기도하면 될 것들이,

하느님에게 맡기면 될 모든 것들이

저렇게 힘들었었나 생각 되어 집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3년 전 하느님을 알고 난 이후로는 왜 우리 가족에 년중 행사로

다가오든 고통의 날들이 일어나지 않는가가

이상하리만큼 행복으로 다고 오고 있습니다.

 

이제는 어떤 어려움도 하느님과 함께 하면 견딜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데도 말입니다.

 

그 애기는 지금 우리 인창동 성당에 복사하는 누나를 따라서

토요일 주일학교에 다니는,  

우리 가족이 식사 전 기도를 도맡아 하는 초등학교 1학년이 되었습니다.

 

혹시나 우리 아들 붙들고 고추 보자고 바지 내리시려고 하시는 우리 교우님들,

없어시리라 생각 됩니다.

지금은 정상입니다. ㅎㅎㅎ

 

시골 초등학교 100주년 기념행사 참석 하느라, 엇그제 주말 미사 불참했는데,

고해 성사 볼 때, 하느님께서 제 목소리 알아보시고 까분다고, 건방지다고,

묵주기도 하루에 100단씩 일년동안 바쳐라 하고 보속 주시는 것은 아닌지,

 

고해 성사때 목소리 변조 할랍니다

 

그래도 100% 들키겠죠?

어떡하지?

묵주기도 1년 바쳐라 함은, 쉽게 받아 들일수 있는데..

보속 없이도 매일 하는 일이라...

 

 

 

 

 

 

 

댓글 2

  • 2011년 5월 31일 오후 2:32

    진정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은혜로 오늘을살고있는지

  • 2013년 2월 17일 오후 4:39

    우성이 어느누구보다 더 건강한 아이로 자랄것 같네요.축구도 정말 잘 한다는 우성이에게 그런 사연이 있었는지 몰랐습니다.더 건강하고 밝게 자라길 기도드립니다.

15구역 삼환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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