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1월 14일 일요일 아침 7시경에 이애연 마리아 님이 돌아 가셨습니다.
죽음 이후로 50일 미사 봉헌을 올렸습니다.
올해 1월 15일 저녁 7시 미사를 마지막으로 우리 가족은 그 분을
먼 하늘나라로 보내 드렸습니다.
살아 계셨을 적에,
무 감각한 삶에 치친 영혼을 달랠 아무것도 없는 우리를,
그 분은 성당으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3년 전 어느날, 저의 교리 수업 등록을 손수 해 주셨고,
저는 그 분의 등록으로 인한 반 강제적(?) 교리수업에 참여 했었고,
냉담으로 헤아릴 수 없는 무한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집사람도 저와 같이
성당을 다시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 분은 우리 애기들을 돌보시면서 우리와 같이 사시던
제 장모님이였습니다.
마흔에 자식을 보고,
남들이 생각하는 늦둥이가 우리는 첫 아이라는 사실이,
‘어떻게 키워야 할지’의 부담감으로 항시 우리 부부를 괴롭혀 왔습니다.
그런 와중에 자연스럽게 애기들도 성당을 따라 다니게 되었습니다.
우리 가족 모두가 종교를 갖게 되었다는 기쁨의 눈빛으로
장모님은 흐뭇하게 쳐다 보고 계셨습니다 .
작년 어느 날,
10살짜리 딸래미가 첫영성체를 마치는 날,
그렇게 기쁘하시는 장모님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그 이후 딸은 복사 과정도 무사히 끝을 내고,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준비하는 새벽 미사의 복사도,
여러차례 무사히 임무 수행을 마쳤습니다
그 이른 새벽 시간에도 불평없이
‘도윤아 성당 가야지’ 하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는 딸아이를 보면,
‘모든 시간을 학교 성적 올리는 목표’로 삼는 다른 가정과는
확연히 차이가 나지만,
나이 많은 상태에서 자식을 가진 우리 부부의 모든 고민들,
‘어떻게 애기들을 키워야 하는가?’ 의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이 되었다는
자부심을 가지게 됩니다.
하느님을 알고 성경을 가까이 하고 있는 어린 자식들을 보면,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그 무엇'
부모가 할 수 있는 수 많은 것들 중에서,
우리는 가장 보람된 선물을 자식들에게 주고 있다고 감히,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장모님의 죽음은,
군 장교 시절 잠시 성당을 다녔던, 아들과 며느리의 기나긴
냉담을 깨뜨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경기도 양주라는 지역의 어느 허럼한 조립식 건물로 된 성당을,
장모님의 죽음 이후로,
처남 가족 전체가 한번도 미사를 빠지지 않고 봉헌한다는 소식은
우리 가족에게도 약간의 충격(?)과 의아함이 느껴 지는데,
그렇게도 바라셨던, 하늘 나라에 계실 장모님의 기쁨은 어떨까요..
지금도 원망하고 있는 한 대학 병원에서,
숨을 거두시기 불과 2시간 전에,
집사람은 병원 중환자실에서 절규 하면서 외쳤습니다 .
‘엄마! 일요일인데 성당 가야지’ 고함 치듯 울부짓는 목소리에
장모님의 고개가 끄덕여 지고 있는 것을,
제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고,
집사람도 같이 분명히 보았습니다.
장모님의 죽음은, 병원 의료진의 실수라고 개인적으로 굳게 믿고 있습니다.
분하고, 원통하고 억울해서 그 병원을 향한 나쁜 마음도 먹었었습니다.
하지만,
장례미사를 치르고,
산에서 내려 오는데, 그렇게 슬프지만은 않은 것은 왜일까요.
종교는,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식들을 위해서 믿는 것은 아닐까?’
란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우리 가족들 모두는 분명 장모님이 하늘 나라로 가셨다고,
믿으니까요.. 그래서 덜 슬프니까요.
하지만, 그래도,
장례식 이후,
저는 성당에 가는 것이 정말 싫었습니다.
우리들 옆에 장모님이 앉아 계셔야 하는데,
문득 돌아보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 놀램과 슬픔이 지속적으로 저의 마음을 괴롭혔습니다.
누구도 해답을 줄 수 없는 갈등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지속적인 기도가 어느 정도의 해결을 주었지만, 그래도 마지막까지
뭔가가 남아 있는 듯한 느낌을 가지고 생활해 왔었습니다.
연미사 50일 중 마지막 날,
올해 1월 15일은 우리 가족이 모였습니다.
양주에 있는 처남도 중국 출장을 미루고, 가족을 데리고
그 날 마지막 미사에 '인창동 성당'으로 참석을 했습니다.
아들, 딸 가족들이 전부 모여서 함께 미사를 봉헌하는 모습을
보고 계셨을 장모님의 미소 띈 얼굴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했습니다.
그 날 저녁 미사 후, 우리 성당 앞에 있는‘정우연’이란 식당에서
온 가족이 함께 했습니다.
평소에 그렇게도 ‘신부님과 수녀님 모시고 우리 집에서 식사 한번 같이 하자’고
간절한 바램을 가지셨던 장모님 이셨기에,
그 날 저녁 신부님을 초대하여 같이 식사를 하고 싶었지만,
나약하다고만 생각한 저는 감히 용기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주,
드디어 우리 집에서 ‘15구역 미사’를 봉헌 했습니다.
그 날, 분명 장모님은 예수님을 뒤따라 먼 뒷발치에서 우리와
함께 했으리라 확신합니다.
주무셨던 방도 둘러 보시고, 같이 미사를 보시던 동료 자매님들이
우리 집에 오신 것도 보셨을 것입니다.
15구역 자매님들의 정성어린 음식들도 함께 하셨을 겁니다.
몇달간 해결하지 않고 가슴속에 남아 있던, 제 마음을 답답하게 했던,
그 무언가가 뻥 뚤리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살아 생전 소원이셨던 장모님의 바램이
돌아 가신 이후에 모두 해결 되었기 때문입니다.
자식들의 성가정 모두 이루었고, 신부님 수녀님 초청하여 미사도 봉헌하고
식사도 함께 했으니까요..
그래서 이제는 장모님을 미련없이 떠나 보내려 합니다 .
가슴을 짓누르던 작은 그 무엇도 이제는 해결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과 함께, 그 곳 나라, 미움과 시기와 불신이 없는 나라,
병을 치료할 필요가 없고, 의료 사고가 없는 나라,
우리가 숙명적으로 가야만 되는 나라, 그 나라로 먼저 보내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15구역 형제 자매님들에게 미안하고, 죄송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모두들 하고 싶어 하신, 형제 자매님들 댁에서의
‘15구역 미사’를 저희 집으로 양보 해 주신 깊은 뜻,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염치 불구하고 제가 우리 집을 고집한 이유,
이제사 이렇게 밝힙니다.
용서 하십시요.
그리고 15구역 가가 호호(家家戶戶) 성령 충만으로 기쁜 나날들이
지속될 수 있게,
용서 받는 마음으로 저 또한 기도 드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