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가을 어느날 ...
마흔 셋의 나이에
딸래미 어린이집에서 하는 ‘가을 운동회’에 참석했습니다.
이제 막 걸음을 걷고 비틀비틀 달리기 시작한 아들도 데리고 갔습니다.
소위 말하는 ‘늦둥이’ 보다도 더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가니
우리 부부가 단연 최고의 고령이였습니다.
몸풀기 게임에서 부모중 한명이 나와서 자기 애들과 손을 마주 치는
게임이 있었습니다.
쑥스럽지만 제가 나갔습니다.
저녁에 소주 한잔 할때 ‘마흔 두살’의 마누라가 그랬습니다.
내가 딸아이와 손 마주 치는 모습을 멀리서 보니 눈물이 왈칵 쏫아 지드라고…
‘이기 미쳤나’ 그랬습니다.
푸른 하늘에 고무 풍선이 둥실 떠 있는
그래서 과거의 기억을 새삼 떠올리는 시간들이였습니다.
70년대,
‘합천’ 하고도 ‘삼가’라는 아주 작은 촌동네였지만,
주변에 학교가 없어서 한 학년에 여섯반이나 되는
거대한(?) 크기의 국민(초등)학교에서는
운동회 때 마다 비가 오기로 유명한 학교였습니다.
누군가가 학교를 지켜주는 능구렁이를 죽였기 때문이라고…
지금도 저는 그 사실을 굳게 믿고 있습니다.
모두들 비가 오지 않기를 기도할 때,
비가 오길 진심으로 기도하는 사람은 바로 저 였습니다.
운동회 날이면 떡과 국수를 팔기 위해
운동장 모퉁이에 상을 펴고,
앉아 있는 어머님을 보기가 싫었던 것이였습니다.
학교 들어가기 전의 5-6세의 기억으로는
마음껏 떡도 먹고, 국수도 먹고, 운동회도 구경할 수 있었기에…
너무나 즐거운 운동회 날이였습니다.
또한 운동회 하루 전날 떡을 만드는 시간이면,
어머님 옆에 앉아서
간장 종지 같은 것으로 송편을 만들고
귀퉁이 쪼가리가 남으면 그것을 먹느라고 정신이 없었고,
어머님은 그 쪼가리를 여러개 모아서
하나의 송편이라도 더 만들려고 나와의 전쟁을 하는
그런 재미있는 추억들이였지만,
언제 부터인가 나에게 ‘쪽팔림’이란 단어의 의미를 깨닫는
3-4학년이 되면서 부터는,
운동장 귀퉁이에서 떡과 국수를 파는 어머님을
친구들이 아는 것이 부끄럽기 시작했습니다.
혹시나 시골 5일장과 겹치는 날이면,
나와 누나는 강력하게 학교 보다는 시장이 장사가 더 잘 된다고,
그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운동회 때,
친구 어머니들이 짙은 화장과 모자를 쓰고,
담임 선생님 점심 서로 해 오겠다고 할 때,
모든 사람들이 축제의 ‘가을 운동회’를 즐길때
단지 장날이란 이유만으로 기뻐했던 사실은
6년동안 단 한번이였지만,
지금껏 아무도 모르는 나와 누나만의 비밀이였습니다.
400m 계주 달리기나 풍선 터뜨리기, 씨름 등에서
2등이나 3등을 했던 친구들과 그들의 부모들이
같이 어우러져 기뻐하고 덩실덩실 춤추는 모습을 보면서도,
1등을 한 나를 반겨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가끔은 상으로 받은 노트나 연필을 싼 값으로
친구들에게 돈을 받고 팔아서,
그토록 갖고 싶었던
샤프 연필을 산 못된 기억도 어렴푸시 나곤 합니다.
아뭏든
운동회가 끝나고 다들 부모들 손잡고 돌아가는 시간이면,
공책과 연필을 한 아름 안고
운동장 모퉁이에서 장사하고 있는 어머님 곁으로 가서
마무리 일을 도우고 리어카를 끌고 집으로 올 때,
뒤에서 던지시는 힘없는 한마디는
‘운동회는 잘 했나?’
왜 그 때는
‘옴마 상 탄거 바라, 내가 전부다 1등했다 아이가’
그 말을 못하고
그냥 아무말 없이 리어카만 끌었는지에
지금 후회가 몰려오는 밤 늦은 저녁입니다.
딸래미 어린이집 운동회 한 적이 엇그제 같은데,
그 어린것이 벌써 4학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어린것이 우리 '인창동 성당'에 복사가 되었습니다.
내 어머님이 마흔에 나를 낳으셨고, 내가 마흔에 우리 딸래미 첫 애기로 보았습니다.
어머님이 말귀를 못알아 들을때,
우리 딸래미가 말귀를 알아 듣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님이 걸음을 제대로 걷지 못할 때에
우리 딸래미가 걸음마를 시작했습니다.
이루어 질 수 없는 내 소원이
우리 딸래미와 우리 어머님이 같이 걸어면서 의미있는 대화 하는 것을 옆에서 듣는 것이였지만,
저는 결국 제 생애는 그것을 이룩할 수가 없는 운명인가 봅니다.
그래도 20년간 써 오고 있는 이 일기장을 가끔씩 지금 새벽 2시가 되어서 술 한잔 취하고 들추어 보는 기쁨이 저에게 아직도 남아 있는 것 만으로도 스스로 푸지고 고마운 것이라고 느껴지는 새벽입니다.
지금이 새벽 2시지만, 내일, 아니 오늘 새벽 5시에 일어나서 6시 미사에 우리 딸래미 데리고 사순절 새벽 미사 갈 겁니다.
그것이 저를 지탱해 주는 마지막 힘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