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장례식에서 연도를 했습니다.

2011. 9. 17. 오전 7:45:31

글자

 

엇그제 목요일(15일) 저녁에 장례식을 다녀 왔습니다.

 

우리 15구역의 어느 자매님의 시아버님이 돌아 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운전 기사가 필요 하다는 구역장님의 요청으로 을지로의 국립의료원으로 향했습니다.

 

기타를 메고 성령기도회에 참가하는 '비오'를 성당에서 만났고,

연령회장이신 '비오' 아버님 내외분도 함께 출발 했습니다. 

 

장모님 장례식 이후 '연도'를 하기는 처음이였습니다.

 

고인의 자제분들이 대부분 개신교를 가졌지만, 우리 인창동 성당의 성실하진 자매님이신

며느님의 요청으로 무사히 연도를 마쳤습니다.

 

떨렸고, 긴 음률을 따라하다가 가끔은 호흡이 가빠서 채우지 못한 구절도 있었습니다.

 

고인의 얼굴도 모르지만, 고인의 영혼을 천국으로 보내야 겠다는 열망으로 '연도'는

계속 되었지만, 중간 중간 담배를 끊어야 겠다는 생각도 함께 했습니다.

 

연도를 마치고, 식사 중이던 형제 자매님들을 뒤로 하고,

밖으로 나와 끊어야 하는 담배를 피우면서 잠시 상념에 잠겼습니다.

 

 

종교와 무관했던 과거의 기억들이 떠 올랐습니다.

 

 

저는 1984년도에 아버님을 하늘나라로 보냈습니다. 
간 경화증으로
...

평소에 집안을 위해 그렇게도 잘 하시지도 못했고,

돈도  못벌었지만,

그래도 자식과 마누라에겐 다정하셨던

제 아버지는

특히 막내인 저에게 각별한 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간경화증 판단 이후 부터는

왜 그렇게 폭군(?)으로 변해 버렸는지에 대해,

지금까지도 전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아버지의 죽음 이후,

우리 가족들의 슬픔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고,

저를 비롯한 각자 본인의 업무에 쉽게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죽은 자를 그리워 하고 추모하는 행위가

정말 가치가 있는 것인지, 망자가 정말 위안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인지,

종교를 갖기 전이였던 그 시절에는 저는 잘 몰랐습니다. 

 

 
부산 백병원에서 간경화증으로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삼가 집으로 돌아 왔을 때,

아버지의 침묵이 2-3일간 지속 되더니만,

어느 날 부터는 과거 그 어떤 오기와 권위보다

더 심한 행위들 ,

치매보다 더한 기억의 상실된 모습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몇달을 집에서 누워서

당신의 죽음을 기다리던 어느 날,

 

84년도 9 6

군 입대를 앞둔 저를 환영한다고 시골 친구들과의

강도 높은 술 좌석에서 심하게 취한 후, 집으로 돌아와서

아버님 방으로 들어 갔습니다.

 

아무리 죽음을 앞둔 환자이고, 나에겐 하늘 같았고,

당신의 사랑을 받을 때면,  다른 형제들에게 미안한 마음까지 받았던 저였지만,

해도 해도 너무해서 한판 할 참이였습니다. 

 

 

술이 들어 가서 많은 용기가 생긴 것입니다.

 

아부지! 하고 강한 어조로 불렀습니다.

술 냄새가 방안을 진동했습니다.

 

어버지는 나를 쳐다보지 않고 돌아서 누워 가만히 있었습니다.

 

여느 때 같으면,

썩어죽을 놈.  하고 댕기는 꼬라지 하고는..

내가 죽고 나모, 맨날 술 쳐묵고, 니 하고 싶은데로 다 해라..

 

뭐 이것보다 더 심한 욕설과 삿대질을 했어야 당연한 것인데, 

그냥 돌아 누워서 꼼짝을 하지 않고 계셨습니다.

 

난 한판 하러 아부지 방에 들어 왔는데,

그냥 갑자기 눈물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고함을 치듯이 다시 얘기했다.

아부지 와이리 변했심니꺼?

내가 좋아하는 아부지 모습이 아님미더

 

울면서 저는 아부지 등 뒤에서 소리쳤습니다.

 

술 냄새와 내 고함과 뒤섞여서 어수선하였지만,

 

저는 보았습니다. 

그 강하고 독하고 오기로 변해져 있었던

아버지의 얼굴에서

흘러 내리는 눈물이 아버지 소매를 적시고 있다는 것을 .

 

저는 누워 있는 아버지를 등 뒤에서 안고 더 크게 울어 버렸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의 눈물을 보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다음날부터 똑깥이 가족들에게 모질게 대함과

특히 막내인 저에게로 향한 독설은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날 까지도 계속 되다가

결국엔 그 해 4월에 돌아 가셨습니다.

 

 

세월이 20여년이 지났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나도 살고 싶다 그 마음이 왜 없었을까

 

그 시간도 있었으리라..

 

가족들에게, 특히 막내인 저에게

더 안아주고, 더 빰을 비벼주고 싶은 심정이

왜 없었을까.

 

그 해, 아버지 장례 치르고 5개월 후

전 군에 입대해서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 없이

무사히 군 생활을 마치고 제대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가끔 들려오는 친구들의 부모님 사망 소식과

 

어느 성당에서 '장례미사' 소식을 들으면, 

 

더욱 더 제 아버지 생각이 나곤 합니다.  

 

훗날 제가 죽을 때,

 

지금 저 11, 8살짜리들에게

나도 모질게 대해야만 하는데,

내 아주 강하게 더 미워해야 하는데

내 그럴 수 있을까?

 

 

혹시나

어린 것들 부둥켜 안고

내 목숨같이 사랑하는 너거들 두고 먼저 가려니 눈을 감을 수가 없다.

 

이런 택도 없는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닌지.. ㅎㅎㅎ
 
 
아뭏든 밤 10시가 넘었지만,
 
번쩍이는 조명등으로 야간을 밝힌 동대문과 청계천을 지나 오면서, 
뒷좌석의 어르신들의 죽음과 삶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내 귀에서 친밀감을 느끼게 하는 것은, 저도 이제 늙어 가는 것일까요?
 
아직 오십이 되려면 한해가 더 지나야 하는데.........
 
 
 
 

댓글 2

  • 2013년 2월 17일 오후 4:14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안지만 작년 11월매일미사 였던가?매일미사에서 죽음에 대한 글귀를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 하는것은 지금현재 생활에 충실하지 못하기 때문이다.그렇기에 죽음을 생각하며 두려워하거나 슬퍼하지 말고 지금에 충실하여라!!형제님께선 지금 충분히 자녀분들에게 훌륭한 아버지 이시잖아요.

  • 2013년 2월 17일 오후 4:16

    인생의 시작은 60부터라는데 아직 인생에 시작도 멀으셨네요.가족과 더 행복하시고 사랑하시고 건강을 위해 운동도 많이 하셔서 건강하세요!!홧팅!!

15구역 삼환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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