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나의 혼인 잔치”
▒ 사흘째 되는 날, 갈릴래아 카나에서 혼인잔치가 있었는데, 예수님의 어머니도 거기에 계셨다. 예수님도 제자들과 함께 그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으셨다. 그런데 포도주가 떨어지자 예수님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포도주가 없구나.”하였다. 예수님께서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어머니는 일꾼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하고 말하였다. 거기에는 유다인들의 정결례에 쓰는 돌로 된 물독 여섯 개가 놓여 있었는데, 모두 두세 동이들이였다. 예수님께서 일꾼들에게 “물독에 물을 채워라.”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이 물독마다 가득 채우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다시, “이제는 그것을 퍼서 과방장 에게 날라다 주어라.”하셨다. 그들은 곧 그것을 날라 갔다. 과방장은 포도주가 된 물을 맛보고 그것이 어디에서 났는지 알지 못하였지만, 물을 퍼간 일꾼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과방장이 신랑을 불러 그에게 말하였다. “누구든지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놓고,
손님들이 취하면 그보다 못한 것을 내놓는데,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남겨두셨군요.”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갈릴래아 카나에서 표징을 일으키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요한 2장 1절~11절)
묵 상
오늘 복음은 우리를 카나에서 벌어지는 혼인 잔치에 초대합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어머니이신 성모님의 뜻에 따라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기적을 행하십니다. 성경에서 혼인은 하느님과 그의 백성인 인간의 완전한 일치를 의미하는데 사용되어 왔습니다.그런 의미에서 혼인잔치에서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이 일어났다는 것은 깊은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바꾼 기적은 성경말씀 그대로 ‘아직 때가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때’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아들로서의 영광을 드러내는 시간을 가르치는 말로써, 이 ‘때’는 예수님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성부 하느님의 뜻이 반영되는 ‘때’를 의미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모님께서 “무엇이든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라고 하신 말씀에 따라 예수님께서는 그 ‘때’를 앞질러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 즉 구세주 메시아임을 증명해 보여주셨습니다. “무엇이든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라는 성모님의 말씀이 혼인잔치의 일꾼에게만 하신 것이 아니라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하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이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시키시는 대로 하기만 하면 그분은 우리에게 당신이 우리의 구세주 메시아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실 것입니다.
빈 물독에 좋은 포도주가 가득 차게 된 과정을 한 번 되돌아 묵상해봅시다. 예수님께서 물을 좋은 포도주로 바꾸셨지만, 그것은 빈 물독에 물이 채워져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굳이 일꾼들에게 물독에 물을 채우라고 말씀하십니다.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것이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면 빈 물독에 물을 채우는 일은 우리 인간이 해야 하는 일입니다. ‘무엇이든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라고 하신 성모님의 말씀이 오늘날에도 적용되어야 하듯, 빈 물독에 물을 채우는 것 역시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둘러보면, 속이 텅 비어 메마른 물독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사랑이 말라가고, 정의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믿음이 사라지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마음조차 찾아보기 힘들어 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빈 물독처럼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카나의 혼인잔치에서처럼 우리의 희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희망을 두었다면 우리는 빈 물독에 물을 채우는 수고를 감수해야 합니다. 사랑이 말라가고 정의가 바닥을 드러낸 세상, 믿음이 사라지고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을 찾아보기 힘든 세상이지만, 정성된 마음으로 우리의 간절한 소망과 뜨거운 열정을 채워 넣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때 비로소 주님께서는 이 세상을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어떤 특별한 행위나 멋진 장면을 연출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일꾼들이 늘 하던 물 긷는 일을 한 것처럼 우리도 그저 우리가 심겨진 곳에서 묵묵히 말씀대로 살아가면 될 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