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영적 독서 및 묵상

2018. 10. 12. 오후 5:22:41

글자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고치시다”

 

 예수님께서 다시 티로 지역을 떠나 시돈을 거쳐, 데카폴리스 지역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갈릴래아 호수로 돌아오셨다. 그러자 사람들이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에게 손을 얹어 주십사고 청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그러고 나서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 그에게 “에파타!” 곧 “열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곧바로 그의 귀가 열리고 묶인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들에게 분부하셨다.

그러나 그렇게 분부하실수록 그들은 더욱더 널리 알렸다.

사람들은 더할 나위 없이 놀라서 말하였다. “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 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는구나.(마르 7,31~37)

 

           

 

성경에는 놀라운 하느님의 역사가 일어날 때마다 ‘하늘이 열리며’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묶는 것이 사탄의 역사라면, 여는 것은 하느님의 역사입니다.

사탄은 사람들의 생각을 묶고 마음을 묶습니다.

그래서 절망과 좌절로 사람 관계를 닫아버리게 만듭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닫힌 삶을 사는 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가 흔히 ‘농아’라고 부르는 ‘귀먹고 말 더듬는 이’입니다.

그들이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이유는 대부분이 소리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정확히 들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입모양을 보고 비슷하게 소리를 낼 수 있어도 정확히 발음할 수 없는 것이 그런 이유입니다

 죽은 사람도 살리신 예수님께서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고쳐주신 것은 어쩌면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어서 그저 스쳐지나갈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습니다

바로 ‘그를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라는 부분입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들이 보는 앞에서 손을 얹어 고쳐주셔도 되었을 텐데

예수님은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 고쳐주십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많은 사람 앞에서 그 사람을 고쳐주셔야 일종의 홍보 효과가 생겨서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더 잘 믿을 것 같기도 한데 말입니다

 왜 예수님은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가셔서 고쳐주셨을까요?

아마도 육체의 병뿐만 아니라 마음의 상처까지도 치유해 주시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장애는 하늘의 벌’로 여겨졌던 당시의 상황을 생각해 볼 때, ‘귀먹고 말 더듬는 이’는 분명 사회로부터 큰 멸시와 조롱을 받으며 고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손수 닫혀 있는 두 귀를 만져 주시고, 말문을 닫아 버린 혀에 손을 대서 고쳐주심으로써 육체의 병과 함께 마음의 상처까지 치유해 주시며 자신이 얼마나 큰

축복을 받고 있는지 느낄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행동을 통해 치유와 축복을 느끼게 하신 후, ‘에파타’라고 외치시며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우리에게도 “에파타!”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열려야 할까요?

주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닫힌 마음을 활짝 열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내가 사랑과 축복을 받고 있음을 가슴 깊이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내 마음을 활짝 열도록 합시다. 그래야 사랑과 축복의 마음으로 이웃에게

주님의 사랑으로 다가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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