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자 요한의 설교”
▒ 군중이 그에게 물었다. “그러면 저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옷을 두 벌 가진 사람은 못 가진 이에게 나누어 주어라. 먹을 것을 가진
사람도 그렇게 하여라.” 세리들도 세례를 받으러 와서 그에게, “스승님, 저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자, 요한은 그들에게 “정해진 것보다 더 요구하지 마라.” 하고 일렀다.
군사들도 그에게 “저희는 또 어떻게 해야 합니까?”하고 묻자, 요한은 그들에게 “아무도
강탈하거나 갈취하지 말고 너희 봉급으로 만족하여라.”하고 일렀다. 백성은 기대에 차
있었으므로, 모두 마음속으로 요한이 메시아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요한은
모든 사람에게 말하였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러나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오신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또 손에 키를 드시고 당신의 타작마당을 끼끗이 치우시어, 알곡은 당신의 곳간에 모아들이시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 버리실 것이다.” 요한은 그밖에도 여러 가지로 권고하면서 백성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였다. (루카 3장 10절~18절)
묵 상
언제부터인지 잘 모르겠지만, 보험이나 연금 같은 말이 우리 일상생활에서 자주 등장하곤 합니다. 가족이나 이웃이 우리를 돕는 시대는 지나가고, 나라의 복지 시스템이나 기업의 금융상품이 우리를 돕는 시대가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복지 시스템이나 금융상품도 우리가 낸 세금이나 월납 입금을 재원으로 하고 있으니, 결국 우리가 낸 돈으로 각자의 노후와 건강을 돌보는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자신의 돈으로 스스로의 노후와 건강을 책임져야 하는 사회가 되어서인지 갈수록 다른 이들의 삶을 돌아볼 여유가 사라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복지의 사각지대에 계신 분들이 많고, 그분들은 여전히 많은 이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대림 제3주일은 특별히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기억하며, 사랑의 구체적인 실천에 대해 생각해보는 자선주일입니다. 복음의 앞부분에서 세례자 요한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루카3.8)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는 사람들에게 “옷을 두 벌 가진 사람은 못 가진 이에게 나누어 주어라. 먹을 것을 가진 사람도 그렇게 하여라.”라고 말하고, 세리들에게는 “정해진 것보다 더 요구하지 마라.” 라고 말합니다. 또 군인들에게는 “아무도 강탈하거나 갈취하지 말고 너희 봉급으로 만족하여라.”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것을 이웃과 나누고, 남의 것을 빼앗으려고 하지 않는 것이 회개에 대한 합당한 열매, 즉 회개하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행동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특별한 무엇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기가 살고 있는 환경 안에서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라는 것입니다.
사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우리가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 큰일이거나 멀리 있는 일이 아닙니다. “너희의 입과 너희의 마음에 있기 때문에, 너희가 그 말씀을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신명기 30.14)라고 하신 것처럼 그것은 우리와 아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거울을 통해 우리의 겉모습을 살펴보듯, 성경말씀을 통해 우리의
마음속을 들여다봅시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살고 있지 못하다면 우리의 마음가짐을,
우리의 행동을 성경말씀이 가르쳐 주는 대로 바꿔봅시다.
자선은 이웃을 돕는 구체적인 사랑의 행위이지만, 결국은 우리 자신의 구원을 보장받는 일입니다. 우리가 이웃에게 아무리 큰 자선과 사랑을 베푼다고 해도, 우리의 구원을
위해 인간이 되신 예수님의 사랑만 하겠습니까?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아기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성탄절입니다. 곧 태어나실 아기 예수님, 재림하여 우리에게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이웃에게 구체적인 사랑을 실천하는 꾸르실리스따가
되도록 노력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