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5년 1월 17일 성 안토니오 아빠스 기념일 |
|
|
재생 클릭!!
|
제1독서 히브리서 5,1-10 대사제는 누구나 사람들 가운데서 뽑혀서 사람들을 대표하여 하느님을 섬기는 일을 맡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대사제는 속죄를 위해서 예물과 희생을 제물을 바치는 것입니다. 대사제는 자기도 연약한 인간이므로 무지하거나 유혹에 빠진 사람들을 동정할 수 있습니다. 그는 또 이렇게 연약하기 때문에 백성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도 속죄의 제물을 바쳐야 하는 것입니다. 이 영예로운 직무는 자기 스스로 얻는 것이 아니라 아론처럼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얻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대사제의 영광스러운 자리를 스스로 차지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 영광스러운 자리는,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하고 말씀하신 하느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또 성서의 다른 곳을 보면, "너는 멜기세덱의 사제 직분을 잇는 영원한 사제이다." 하신 말씀도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인간으로 이 세상에 계실 때에 당신을 죽음에서 구해 주실 수 있는 분에게 큰 소리와 눈물로 기도하고 간구하셨고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경외하는 마음을 보시고 그 간구를 들어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아들이셨지만 고난을 겪음으로써 복종하는 것을 배우셨습니다.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후에 당신에게 복종하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으며 하느님께로부터 멜기세덱의 사제 직분을 잇는 대사제로 임명받으셨습니다.
복음 마르코 2,18-22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단식을 하고 있던 어느 날,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의 제자들은 단식을 하는데 선생님의 제자들은 왜 단식을 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잔칫집에 온 신랑 친구들이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야 어떻게 단식을 할 수 있겠느냐?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그럴 수 없다." 그러나 이제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온다. 그때에 가서는 그들도 단식을 하게 될 것이다. 낡은 옷에 새 천 조각을 대고 깁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하면 낡은 옷이 새 천 조각에 켕겨 더 찢어지게 된다. 또 낡은 가죽 부대에 새 포도주를 넣는 사람도 없다.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도 부대도 다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이제 좀 살 것 같습니다. 사실 어제는 제 몸이 아니었습니다. 목이 너무 아파서 느끼한 빠다킹의 진면목을 보여 줄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느끼한 목소리가 아니라 허스키한 목소리로 미사를 봉헌을 했지요. 아마 어제 성지에 처음 오신 분은 그러실꺼에요.
‘저 목소리가 느끼한 목소리야? 정말 이상한 신부네…….’
아무튼 목감기와 몸살이 같이 와서 온몸이 쑤신 것은 물론 목소리도 나오지 않아 약간의 고생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목감기와 몸살을 앓으면서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른답니다.
얼마 전, 성지에 어떤 분이 오셨는데 몸이 너무나 안 좋아 보였습니다. 그리고 미사가 끝난 뒤에 그 분의 가족으로 보이는 분께서 제가 와서 부탁을 하는 것입니다. 그 분이 암 환자인데 폐와 간까지 전이되어서 상당히 힘들어 한다고, 그래서 안수를 좀 부탁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나 힘들어하시는 이 분을 보면서 저는 안수를 할 때 이런 기도를 바쳤습니다.
‘성령님, 이 형제님께서 당신 안에서 큰 위로를 받으시길 기도합니다. 그리고 저 역시 이 분의 고통을 나눌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이 분의 고통을 나눔으로서 이 분께서 지금의 그 큰 고통에서 조금이라도 해방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이런 식의 기도를 바쳤습니다. 그런데 그 날 저녁부터 몸이 이상한 것입니다. 감기가 걸린 것이지요. 목이 이상하고 팔 다리 안 아픈 곳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계속되는 감기 몸살은 저를 상당히 힘들게 했지요.
사실 예전 같으면 이 순간에 ‘주님, 제가 얼마나 할 일이 많은 줄 아십니까? 저 좀 낫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기도를 바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감기 몸살이 꼭 암에 걸리신 형제님께 안수 기도를 했을 때의 기도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저를 너무나 부끄럽게 만든 것은요, 이 감기도 힘들어하는 주제에 감히 그런 기도를 얼굴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바쳤다는 저의 교만이라는 것입니다. 즉, 제대로 실천도 못하는 주제에 말은 항상 자신 있게 그리고 그럴싸하게 한다는 것이지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 사람들이 질문을 합니다.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의 제자들은 단식을 하는데 선생님의 제자들은 왜 단식을 하지 않습니까?"
명망 있는 스승의 제자들이 단식을 하고 있으니까 당신의 제자들도 단식을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 말은 경건한 사람들은 단식을 하는데, 예수님 당신은 단식을 하지 않으니 경건하지 않다는 의미도 담겨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서 봐야 할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 말하고 있는 이들은 말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말은 힘없는 공허한 말에 불과할 뿐인 것입니다.
자신의 말에 힘이 있기 위해서는 반드시 실천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 실천이란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웬만한 노력과 주님께 철저히 의지하는 마음이 없고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오늘을 지향하여 봅니다.
말만 하지 맙시다.
말의 위력 한 구루가 군중들에게, 사람들이 말에 어떻게 반응 하는지, 어떻게 현실보다는 말에 의지해 사는지를 설명해 주려고 애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남자가 일어나더니 항의 했습니다.
“ 난 말이 우리에게 그처럼 큰 영향을 끼친다는데는 데 찬동하지 않습니다. ” 구루가 말 했습니다. “ 앉아, 이 개자식아. ” 그 사람은 노발대발 했습니다.
“ 자칭 깨달은 자, 구루, 스승이라면서 그런 소릴 하다니, 부끄러운 줄 아시오! ” 그러자 구루가 말했습니다.
“ 용서하십시요. 내가 정신이 나갔습니다. 진정으로 용서를 빕니다.
실수 했습니다. 죄송 합니다. ” 그 사람은 마침내 잠잠 해졌습니다.
그때 구루가 말 했습니다. “ 단 몇 마디 말이 당신 속을 벌꺽 뒤집어 놓았고, 단 몇 마디 말이 당신을 진정 시켰잖아요?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