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나라 완성 위해 늘 깨어 준비해야

2005. 1. 12. 오후 1:05:15

글자

죽음, 천국/연옥/지옥, 영원한 삶 등은 가장 중요한 그리스도교의 교리인데, 쉬은 듯 하면서도 논리적으로 이해하려면 매우 어려워 지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하느님 나라 완성 위해 늘 깨어 준비해야

 

죽음과 부활

죽음은 생명이 있는 것은 무엇이나 반드시 겪어야 할 운명이다.  사람 또한 예외일 수 없다.  하지만 죽음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이 죽음 때문에 사람들은 인생의 허무함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죽음은 모든 것을 무(無)로 만들어 버리기에 삶 자체가 허무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신자들은 죽음을 넘어선 희망을 이야기한다.  죽음은 그 자체로 끝이 아니요 죽음을 넘어서는 부활의 삶,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믿고 고백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이에 대한 가장 확실한 보증이다.

 

육신부활

신자들은 사도신경을 바칠 때마다 육신의 부활을 믿는다고 고백한다.  그렇다면 육신 부활이란 무엇인가.  인간이 영혼과 육신이 결합된 존재이듯이, 육신 부활이란 죽은 다음에 우리가 온전한 인간으로 부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활을 지금과 똑 같은 몸으로, 그래서 죽은 시체가 다시 살아나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그래서 성서는 이렇게 말한다.

“ ‘죽은 사람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떤 몸으로 살아나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리석은 질문입니다.  심은 씨는 죽지 않고서는 살아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심은 것은 장차 이루어질 그 몸이 아니라 밀이든 다른 곡식이든 다만 그 씨앗을 심는 것입니다… 죽는 자들의 부활도 이와 같습니다.  썩을 몸으로 묻히지만 썩지 않을 몸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 (1고린 15, 35-37, 42).

결국 육신 부활이란 우리가 죽은 다음에 온전한 인간, 참 인간으로 부활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표현이지 지금과 같은 몸 그대로 부할 한다는 뜻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죽음 이후의 세계

교회는 인간은 죽으면 누구나 하느님 앞에서 심판을 받는다고 가르친다.  심판에는 죽은 다음에 하느님 앞에서 설 때 개인적으로 받는 사심판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으로 재림하실 마지막 날 곧 종말에 산 사람과 죽은 사람 모두가 받게 될 공심판(최후심판)이 있다.

죽은 다음에 사람은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삶에 대한 심판(사심판)을 받게 되며 그 심판결과에 따라 천국의 영원한 생명에 들거나 지옥의 영원한 벌을 받거나 연옥에서 정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천국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을 간직하고 죽은 사람 그리고 연옥에서 완전한 정화과정을 거친 사람이 하느님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린다.

이 상태를 천국이라 한다.  천국은 하늘 저편 우주 공간의 어떤 장소가 아니다.  천국에서 산다는 것은 사랑 자체이신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 함께하는 삶 자체이다.  이 천국은 인간이 바라는 궁극적 목적(하느님과의 일치, 친교의 삶)이 실현된 상태이며, 가장 행복한 상태다.

교황 요한 바오로2세는 이와 관련 “천국은 구름 위의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성삼위(聖三位)와 하나 되는 인격적 관계이며 현세에서도 성찬례와 자선 등을 통해 어느 정도 체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성체성사를 통해서 그리스도와 일치할 때 또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할 때 맛보는 행복감 등을 통해서 천국의 기쁨을 부분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옥

하느님 은총과 사랑 안에서 죽었으나 완전히 정화되지 않은 사람들이 완전히 정화되기 위해 거치는 정화 상태를 연옥이라고 한다.  연옥 역시 특정한 장소적 개념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연옥에 대한 교회 가르침은 “그가 죽은 자들을 위해 속죄의 제물을 바친 것은 그 죽은 자들이 죄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 (2마카 12,45)는 구약성서 마카베오서에 기초를 두고 있다.  우리가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를 바치는 이유도 이 연옥 교리에 근거하고 있다.  연옥이 없고 천국과 지옥뿐이라면 구태여 죽은 이를 위해 기도를 바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연옥은 완성되지 않고 사랑 속에서 성숙되지 않은 인간이 거룩하고 무한하며 사랑하신 하느님을 만나는 과정에서 치르는 정화  자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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