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의미로 굶을까? 옛 단식과 새 단식법

2005. 1. 18. 오전 7:01:53

글자
마르 2,18-22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단식을 하고 있던 어느 날,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의 제자들은 단식을 하는데 선생님의 제자들은 왜 단식을 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잔칫집에 온 신랑 친구들이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야 어떻게 단식을 할 수 있겠느냐?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그럴 수 없다." 그러나 이제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온다. 그때에 가서는 그들도 단식을 하게 될 것이다.
낡은 옷에 새 천 조각을 대고 깁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하면 낡은 옷이 새 천 조각에 켕겨 더 찢어지게 된다. 또 낡은 가죽 부대에 새 포도주를 넣는 사람도 없다.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도 부대도 다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 어떤 의미로 굶을까? 옛 단식과 새 단식법

단식이란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먹는 것을 의지로 참아내는 일입니다. 먹기 싫어서 안 먹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이유로 안 먹는 것입니다. 그래서 단식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일에 목숨을 건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하느님을 믿는 우리도 오래전부터 단식을 해 왔습니다. 이미 예수님이 오시기 이미 전부터 말입니다. 오늘 복음은 그런 단식이 예수님이 오심으로 해서 그 의미가 바뀌게 될 것임을 알려줍니다. 같은 단식이라 하더라도 세례자 요한과 바리시아파들의 오랜 단식과 예수님의 제자들이 곧 하게 될 단식의 의미가 다를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기본적으로 단식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하느님께 우리의 생명을 바쳐드리는 행동이라는 것에는 다름이 없겠지만 예수님이 오시기 전의 단식은 하느님 앞에 자신의 나약함을 드러내고 죄를 뉘우치는 보속의 단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때는 우리의 수많은 죄로 마음을 상하신 하느님의 진노를 피해보고자 하는 의도가 많았습니다. 한마디로 무서운 하느님의 벌을 피하고자 우리 자신에게 해를 입힘으로써 우리 스스로 보속하고 있음을 하느님께 정성으로 보인다는 이야기입니다. 마치 세례자 요한의 세례가 죄를 씻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음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이 하게 될 단식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 의미가 다릅니다. "잔칫집에 온 신랑 친구들이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야 어떻게 단식을 할 수 있겠느냐?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그럴 수 없다. 그러나 이제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온다. 그때에 가서는 그들도 단식을 하게 될 것이다." 는 예수님의 말씀은 단식이 예수님이 오심 때문에 잠시 중단된다는 뜻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 잠시의 시간 동안 예수님은 단식의 의미를 바꾸어 놓으십니다. 단식하는 의미가 바뀐다는 이야기입니다.

곧 예수님의 제자들이 하게 될 단식은 우선은 신랑을 빼앗긴 슬픔의 단식이 될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예수님이 안 계신 상태에서도 예수님이 가르치신 그 뜻을 지키고자 단식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살면서 실천하는 단식의 새로운 의미입니다. 단식은 하느님의 뜻에 우리의 생명을 걸어 의지를 보이는 같은 모습의 일이지만 이제는 그 의미에 그리스도처럼 사랑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의지를 담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전엔 살고 싶어서 단식했다면 이제는 사랑하기 위해 단식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물의 세례가 불의 세례로 바뀌듯 단식의 의미도 그렇게 바뀌게 되리라는 것을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같은 단식이지만 옛 것과 새 것이 다를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같은 모습의 신앙생활이라도 모두 같은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은 어떤 자세로 하느님 앞에 단식하시렵니까? 적당히 둘을 섞거나 기워 사는 것은 주님의 바람은 아니신 것 같습니다. 주님이 오심으로 해서 우리가 하는 일들은 이처럼 많은 의미의 변화를 겪습니다. 저에게 어느 하나를 선택하라시면 저는 새 것을 택하겠습니다. 새 것이 좋아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위한 단식이 저 자신을 위함이 아닌 하느님께 드릴 수 있는 선물이 되겠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사랑의 단식에 함께 하시지 않겠습니까?

* 부산교구 박상대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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