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사회 - 정하권 몬시뇰 하상신앙대학 강의

2004. 10. 23. 오전 12:39:17

글자

(배경음악 : 임석수 신부 곡 "흰눈이 내리면")

주제 : 교회와 사회 - 인간에게 봉사하는 상호협력 관계 (퍼온 글: 평화신문 10월24일)

 

인간은 이중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절대적 종속성상대적 자율성이다. 모든 인간은 그 존재와 능력, 목적을 하느님에게서 받았기에 창조주에게 절대적으로 종속돼 있다. 동시에 지성과 자유의지를 가진 피조물로서 이 세상을 관리할 자격과 책임을 받았기에 세계 안에서 상대적 자율성을 가지고 있다.

   인간이 이러한 이중적 정체성 중 어느 한편을 무시하고 행동한다면 그것은 인간의 참된 품위를 손상하고 포기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인간이 이룩한 모든 분야, 정치ㆍ경제ㆍ사회ㆍ과학ㆍ문화가 이 이중적 정체성에 부합해야만 진정한 문명이라고 평가한다. 따라서 이러한 그리스도교 신앙을 전제로 교회와 사회, 특히 교회와 정치(국가)의 상호관계에 대한 신약성서와 현대교회의 가르침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예수는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그리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라'(마태 22,21)고 말했다. 몇몇 사람들은 이 말을 오해해 마치 하느님과 카이사르가 대등하다고 이해한다. 그러나 이는 큰 오류다. 카이사르를 포함해 모든 인간은 어떤 분야에 있어서도 하느님의 절대 주권에 종속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말에서 우리는 국가에 대한 본분과 하느님에 대한 본분을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국가의 정당한 권위는 인정하되 국가를 하느님 권위 밖에 있는 절대적 독립 존재로 보아서는 안된다.
 
   예수는 당시 로마의 국권을 인정했고 자신은 하느님 나라 선포에만 주력했기에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재산 분배자로 세웠단 말이냐'(루가 12,14)고 말했다. 간혹 제자들은 예수에게 이스라엘을 언제 회복하겠느냐고 물었다. 그때마다 예수는 하느님 나라에 대해서만 대답했다. 그리고 빌라도 앞에서는 '내 왕국은 이 세상 것이 아니다'(요한 18,36), '네가 하늘에서 권한을 받지 않았다면 나를 어떻게도 할 수 없을 것이다'(요한 19;11)고 말했다. 정당한 모든 권위의 근거는 하느님에게 있으며, 그 권위 행사도 하느님 뜻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정당한 국가 권력은 하느님 통치권에서 위임받은 것이다. 통치자는 국민 이익을 위해 일하는 하느님 심부름꾼이다(로마 13,4). 따라서 통치자들은 하느님 뜻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공동선을 위해 선을 권하고 악을 벌해야 한다. 공권력은 국민에게 봉사하기 위해 존재하고 하느님 시종으로서 책임져야 한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벌이 무서워서뿐만 아니라 자기 양심을 따르기 위해서도 권위에 복종해야 합니다'(로마 13,5)에서 보듯 신자가 국법을 지키는 것은 양심적 의무다. 그러나 주의할 것은 이것이 맹목적 복종이 아니라는 점이다. 공동선에 객관적으로 위배되는 요구에 대해서까지 양심적 복종을 요구할 수는 없다.
 
   스위스 성서학자 쿨만(O. Cullmann)은 신약성서에 나타난 국가에 대한 가르침을 3가지로 요약했다. 첫째, 교회는 국가 존립에 필요한 것을 정당하게 제공하고 교회 안의 모든 무정부주의와 반국가 경향을 배격해야 한다. 둘째, 교회는 국가에 대해 경계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국가가 자신의 한계를 넘으려 할 때 교회는 비판세력으로 그 역할을 해야 한다. 셋째, 교회는 국가가 특정 종교나 사상을 국민에게 강요하면 이를 거부하고 하느님 뜻에 반대되는 것이라고 규탄해야 한다.
 
   현대교회는 이러한 성서 가르침과 역사적 경험을 토대로 국가와 교회의 관계를 구별과 협력으로 본다.
 
   교황 레오 13세는 교회와 국가를 분명히 구별했다. 그는 '하느님은 인류를 두 가지 권한으로 나누어 위임하셨다. 하느님 일을 주관하는 교회 인간 일을 주관하는 국가다. 따라서 교회와 국가는 각자의 본성과 추구하는 목적에 따라 일정한 한계를 지니고 있고, 그 한계 안에서 고유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으므로 자기 분야 안에서 주권을 행사한다'고 말했다. 목적과 본성이 다른 두 공동체, 국가와 교회는 서로 혼합될 수 없다고 강조한 것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 「사목헌장」에 따르면 정치공동체(국가)는 국민의 공동선을 추구하기 위해 존재하고 그로 인해 필요한 권력을 갖는다. 공동선은 물질적 번영뿐 아니라 정신적, 윤리적, 종교적 발전을 포함해야 한다. 또한 교황 요한 23세도 공동선은 인간의 권리와 의무를 보장하는 것이라 했다.
 
   정치권력은 이 공동선을 실행하기 위한 국가의 필연적 속성이고 하느님 절대 권위에 종속돼 있다. 그러므로 국가권력은 물리적 힘 이전에 도덕적 힘이다. 또 정치공동체와 공권력은 인간 본성에 바탕을 두고 있으므로 이것이 국민들의 자유의사에 맡겨졌더라도 하느님이 정한 질서 속에 있음은 명백하다. 
 
   교회는 인간의 영원한 구원을 추구해야 하는 고유한 목적이 있기에 특정 정치ㆍ경제ㆍ사회체제에 얽매이지 않는다. 교회는 국가와 혼동될 수 없고 어떠한 정권과도 유착될 수 없다. 그러나 인권과 공동선을 존중하는 정권과는 공존할 수 있다.
 
   국가는 자율적 행동 권리를 가지고 있지만 종교 영역에 들어와 종교를 박해하는 것은 명백한 월권이다. 그러나 국민이 종교를 빙자해 공동선을 손상하는 경우에는 국가가 엄연히 개입해야 한다. 국가는 공동선을 증진하는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교회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 중 윤리성과 종교성에 대해서 관여한다. 인간관계에는 반드시 윤리성이 내재돼 있기에 그 일에 교회가 침묵할 수 없다. 교회는 사건이 일어나면 그 일이 윤리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평가해 주어야 한다.
 
   따라서 교회와 국가는 명백히 구별되지만 완전히 분리될 수는 없는 관계다. 정교분리는 정치(국가)와 교회의 분리가 아니라 정권과 교권의 분리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동안 교회가 투쟁한 것은 정부를 반대한 것이지 국가를 반대한 것은 아니었다.
 
   교회와 국가는 인간에게 봉사하기 위한 상호협력 관계이어야 한다. 국가는 사회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고 사회정의를 실천해 국민의 영성적 성숙을 이끌어야 한다. 교회는 국민에게 양심을 가르치고 국가에 대한 본분을 다하도록 지도해 국민의 정치적 성숙에 기여해야 한다. 여기에서 교회는 복음에 바탕을 둔 방법과 수단만을 사용해야 한다. 교회의 목적은 현세에서 하느님 나라를 '증거'하는 것이지 낙원(유토피아)을 건설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정의가 완전히 실현된 유토피아는 없다. 그곳은 오직 천국뿐이다. 우리는 다만 하느님 나라가 이 땅에 올 것을 믿으며 하느님 뜻에 가까이 다가가는 지상 낙원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댓글 1

  • 2004년 10월 24일 오전 12:43

    우리 사회에서의 사회정의는 무었인지 생각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