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민족의 기원>
우리가 이스라엘민족을 흔히 유태인, 또는 유대인, 유대민족이라 부르는데 유대인이라는 말은 성조시대에는
없던 말이다. 이스라엘민족의 뿌리는 아브라함에서 시작되며 이들은 셈족출신으로(창세기, 노아의 후손) 오늘날의 이라크, 아라비아를 포함한 아랍민족과 같은 민족이다. 팔레스타인들은 지금은 한 신앙으로 아랍인과 같이 문화공동체의 일원으로 행세하나 그들은 폐니키아라는 해양민족의 후손으로 성서에는 블레셋인으로 나오는
민족이다. 레바논인들은 가나안족의 후예들이 맥을 이어오는 팔레스타인 지방(가나안땅)의 토착인들로서
민족적 뿌리가 다르다.
아브라함이 자신의 처자와 조카를 데리고 갈대아의 우르(지금의 아락남부 삼각주 지방)에서 터어키 동남부의
하란지방으로 갔다가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는데 이들은 조그마한 한 무리로서 토착민에 얹혀 살거나
땅을 불하받아 유목생활로 삶의 근거를 유지하는 떠돌이 신세였다. 손자 야곱에 와서 하느님의 축복을 다시받고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고쳐부르며 오늘의 이스라엘의 뿌리를 이루게 되었다. 우리족보의 개념으로 본다면
중시조나 ㅇㅇ파의 조상으로 보아 무방할 것이다. 아브라함의 첫째아들 이스마엘이 오늘의 아랍족(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이락)의 조상이며, 이란은 폐르시아인으로 그들은 아리안족의 한 갈래이다.
야곱시대만해도 그들에게 민족이라는 개념은 없었다. 다만 가문이라는 혈현공동체만 있을 뿐이다. 그들이 요셉으로 인하여 형제 11명과 부친과 자식들을 몽땅 데리고 이집트(이집트는 함족의 후예)로 가서 400년간이나 더부살이를 하게되는데
이들이 처음에는 요셉에 의하여 하층민을 면하고 이방인으로 집단 정착촌을 유지하며 살았으나( 당시 이집트는 14왕조가 끝나고 힉소스라는 북방민족이 이집트를 정복해서 지배하게되는데 그 시기에 요셉이 국무총리쯤의
출세를 하게된다. 그러므로 이집트의 새로운 왕조인 제18왕조가 기원16세기에 들어서서 이민족을 몰아내자
이민족에 붙여살던 야곱의 후손들이 어떤 대접을 받았을지 상상이 갈 것이다)
이집트의 새왕조가 들어서자 하층민으로 전락하여 반노예생활, 또는 노예생활을 하며 나일 삼각주의 고센지방
언저리에서 집단촌을 꾸리며 살았는데, 최근 발굴 결과에 의하면 요셉이 살던 대저택의 컴퓨터 그래픽을 보면
아주 웅장한 왕궁같이 호화로왔으며 집단브락을 이루며 살았음을 보여준다. 이들을 이집트인들이 경멸조로 부른 이름이 '히브리인'이다. 이들은 400년동안 타향살이를 하며 자신의 말과 정체성을 지켜오며, 자연스럽게 민족이라는, 같은 피를 나눈 겨례라는 개념을 생각할 수 있었으며, 단단한 민족적, 또는 부족적 결속력이 고된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으며, 그들에게 확고한 야훼신앙은 없었던 것으로 판단한다.(이건 내 개인생각임)
모세에 와서 19왕조 끝자락 가까이(기원전1234년:외우기도 좋다1234) 람세스2세때 출애급하고 홍해를 건너
시나이반도로 탈출한 뒤 40년의 광야생활을 하게된다.( 이 광야생활의 의미는 매우 중요하며, 신앙적인 커다란 의미가 있기 때문에 다음 기회에 다시 언급하기로 하고,)
모세에 의하여 호렙산에서 야훼 하느님께로부터 계시를 받은 후 그들은 선민의식으로 무장한 후 아브라함이 약속받은 땅, 가나안을 향한다. 이때에도 많은 이스라엘 민족은 이집트에서 가져오거나 토착신앙, 또는 조상신등
신앙체계가 복잡하여, 모세가 전해준 야훼신앙을 받들기는 했으나 체질화하지는 못하여, 그들이 성서상에 보듯이 금방 딴짓을 하다 혼나게 되는 모습을 보인다.
그들이 에돔과 모압땅을 지나(지금의 사해남부와 동쪽해안땅) 예리고를 처부수고 가나안에 입성하게 되는데
그당시 가나안에는 가나안인들이 흩어져 살았으며 성서와같은 커다란 전투는 없었다고 고고학적 발굴이 이야기하고 있으나, 그것은 아무도 단언할 수 없는 미지의 장이다. 우리는 그냥 성서를 따라 판단하자.
이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지배층으로 자리잡고 12지파중 레위인만 빼고 11지파에 땅을 분배하였다.
여기에서 빠지는 부분이 지금의 예루살렘지방과 서해안 지역이다. 예루살렘지방에는 강력한 토착세력이 저항하여 정복하지 못하였으며(다윗시대에 정복) 성소도 에브라임의 실로(나중에 놉과 기브온으로 옮겨감)에 있게된다.
정복한 땅에서 정착한 이들은 가나안인들을 피지배민족으로 하여 부족국가를 이루게 되는데(기원전12세기)
이들의 정치형태는 원로회의체제였다. 이들은 여기에서 피지배민족과 혼혈이 일어나고 목축에서 농경사회로
변하게 되며, 이는 필연적으로 빈부의 차가 불가피해졌으며, 사회의 복잡화를 이루었다.
종교적으로도 그들은 모세가 전해준 야훼신앙을 사회의 기초로 삼았으나 농경사회의 신인 풍요의신등 이민족 신이나 독자적인 씨족신앙등이 얽혀 혼란스러웠다. 이에 판관들에 의해서 정화를 하게되고 사회의 구심점을 위해서 유일신앙과 선민의식을 정신적 구심점으로 삼기에 이른다. 선민의식은 나중에 바빌론유수이후 더욱 확고한 민족정기로 승화되어 발전해 나간다.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은 위에서 보듯이 가나안의 정착단계에서 비로서 나타난 민족개념이다.
유대인이란 왕조가 들어서고 유다지파인 다윗이 왕위를 이은후 죽자, 솔로몬이 왕이 되는데 북쪽의 지파(사울은 북쪽지파 출신임)가 반발하였으나 겨우 무마되었지만 성소를 기브온에서 정복된 예루살렘으로 옮기자 그들은 더욱 반발하였으며, 솔로몬 사후 그들은 독립하여 북이스라엘이 된다.
북이스라엘이 멸망하고(앗시리아) 그후 유다왕국마져 바빌론에게 멸망하자 유수에서 돌아온 유다인들이 이스라엘을 재건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유다인들이 민족을 대표하게 되어 오늘날 유대인으로 통칭하게 된다.
그 이유중 결정적인 것이 북이스라엘이 멸망하자 앗시리아는 대대적인 혼혈정책을 쓰는데 이때 형성된 혼혈족이 사마리아인들이다. 이로서 이들은 민족의 정통성을 상실하게 되고 천대받는 지방족으로 남게된다.
시회의 지배민족자리는 바빌론에서 고생해온 예루살렘 재건의 유다인의 몫이었던 것이며, 이들은 그 고난을 겪으며, 민족정기를 다시 세우고 성서를 만들기 시작했으며, 선민의식으로 무장하고, 강한 혈통주의를 내세우며
율법을 강화하고 민족으로 거듭나기를 경주하였다. 이들이 바로 유태인, 유대인, 유대민족이다.
PS: 완벽한 내용은 아니니 지적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