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다

2004. 8. 27. 오전 12:12:11

글자

<퍼온 글 - 베네딕트 J. 그뢰셸 지음, 우리곁에 있는 하느님 나라>

 

 명성이나 재산 혹은 권력이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면 사랑은 어떨까?  아름다운 이야기만큼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없을 것이다.  특히 진정한 사랑을 통해 온갖 난관을 극복하고 마침내 행복에 이르는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한 부자 친구가 내게, 가난한 사람들의 삶은 어떤지 궁금하다고 한 적이 있었다.  나는 할렘가 한가운데에 있는 한 가난한 가정으로 그를 데리고 갔다.  그 집에는 젊은 부부가 어린 자녀 넷과 함께 살고 있었다.  이들 부부는 많지 않은 수입으로 낡은 임대 아파트 4층에서 생활을 꾸려 나가고 있었다.  이들의 몇 개 안 되는 방은 벼룩시장에서 구입했거나 종교 단체에서 기부받은 가구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벽에는 아이들이 그린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이들의 집은 매우 좁고 보잘것없었지만 아이들은 부모의 사랑을 한껏 받고 있었고 가족 모두는 행복했다.

 나는 부자 친구의 얼굴에 한동안 슬픔이 어리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이것이 동정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저 사람들이 사는 게 가슴이 아픈가 보지?"  그 집을 나서며 친구에게 물었다.

"천만에."  그가 대답했다.  내가 그의 얼굴에서 보았던 그 슬픔은 무언가 앚 다른 것을 뜻하고 있었다. 비록 그가 훌륭한 교육을 받았고 멋진 직장에 경제적으로 풍족하게 살고 있기는 하지만 그는, 거의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은 그 가난한 가족의 사랑과 같은 것을 본 적도 또 느껴본 적도 없다고 말했다.  그의 슬픔은 그 가족에 대한 동정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연민이있던 것이다.

 우리는 자신을 진정으로사랑해 주는 사람이 하나만 있어도 진정한 행복을 느낀다.  이런 사랑을 발견한 사람도 있지만 아낌없는 사랑을 받는, 그 어디에도 비할 데 없는 기쁨을 거저 상상만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지만 완전한 사랑을 경험해 본 사람은 없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던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듯이 사랑이라는 큰 행복도 언제든 삐앗길 수 있는 것이다.

 언젠가 천수를 누리고 사망한 한 흑인 여인의 장례미사를 집전한 적이 있었다.  할렘에 살고 있던 그 가족과 나는 수년간 서로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장례식장 밖에서 나는 힘들게 걸어오는 그 여인의 남편과 마주쳤다.  우리는 함께 관으로 다가갔고 그는 아내의 시신을 아주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그러고는 조용히 눈물을 흘리며 나직하게 말했다.  "아내는 세상 최고의 여자였습니다."

 그들 부부는 진정으로 서로를 사랑했다.  그들은 성공도 하지 못했고 부자도 아니었고 권력도 없었지만 서로를 더없이 사랑했다.  그러나 어쨌든 이 노신사의 행복은 최소한 이 생에서는 그 막을 내린 것이었다.  다행히도 그는 믿음 속에서 또 다른 행복을, 어느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축복을 간구하고 있었다.  우리가 이 책을 통해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 어느 누구도 파괴할 수 없는 축복이다.

 

PS. 육신의 고달품에 마음까지 가난해져 불행하다 느꼈으나, 그 가난으로 인하여 오만함을 버리고 하느님께 다가설 수 있었음에 감사드립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마태, 5,3-4)

댓글 2

  • 2004년 8월 27일 오전 10:00

    맞아요, 가족간의 사랑이 행복을 만들어주는 원동력이자 기초라는 생각이 듭니다.

  • 2004년 8월 29일 오전 7:54

    가정이 주는 행복의 고마움을 다시 한번 생각합니다. 항상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