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성 요셉

2004. 8. 11. 오전 11:39:56

글자

이글은 아마 이사악형제님이 저의 글 성모 마리아에 관한 자료들에 대한 오류를 깨우쳐주기 위한 글로 보이며,

어제 (8/10) 성당에서 내게 한 말로도 짐작이 됩니다.

 

저는 이사악형제님의 어제 말을 듣고,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를 생각하며

제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이사악형제님의 제게 준 말은.

"형님에게는 문제가 없을지 모르지만 다른이들의 신앙생활에 영향을 줄 수 있기에, 올바른 지식을

전달해야 합니다." 하는 내용의 말로 기억 됩니다.

그러면서 성요셉에 관해 올린 글을 보라해서 좀 길지만 찬찬히 읽어보았지요.

 

이제 내가 답글을 올려야 하겠는데 매우 망서려집니다.

그이유는

내가 글을 올리는 것이 사랑방을 찾는 우리형제들에게 도움이 될까? 에대한 망서림이고

답글을 올리며 행여 나자신이 자존심이라는  동굴에 갇혀 나의 신앙에 그림자가 드리우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였으며

자칫하면, 본말이 전도되는 감정으로 흐를 위험성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이런 망서림에서도 무언가 답변을 드리는 것이 여러가지를 고려하여 좋을듯 싶어

답글을 올리며, 이 상황이 주님이 내게 주시는 깨우침이라 생각하며 앞으로 글을 올리지 않겠습니다.

 

결론을 먼저 말씀드리면

이사악 형제님이 인용한 신부님의 글을 보면

나의 생각과 별차이를 느끼지 못하며,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형제님이 색갈로 표시까지하여 쟁점화 시킨 요셉성인이 홀아비인가? 에 대한 물음의 답이 아마

문제인듯 싶은데요.....

인용하신 신부님의 글의 내용의 핵심에도 벗어난 문제이긴 하지만 굳이 답하라 하신다면

답을 드려야할 딱한 처지에 놓이게 됐습니다.

 

홀아비인가? 아닌가의 문제는 예수님의 형제가 있는가의 문제 때문에 파생된 문제로서

요셉성인의 공경의 문제와는 전혀 별개의 문제임을 먼저 확실히 해 둡니다.

우리는 흔히 오늘의 잣대로 과거를 마구 재단하는 고약한 버릇이 역사이래로 있어왔습니다.

지금의 한국정치의 어지러움도 이런 우리의 전형적인 고질병에서 나온 단적인 예라 봅니다.

우리는 21세기의 특정한 시대에 한국문화라는 공간과 시간속의 안경을 끼고 과거를 봅니다.

다시 말하면 카톨릭교회안에서 말한다 하여도,

우리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결정속에서 교리를 세우고 우리의 신앙을 이끕니다.

그이전에는 미사도 라틴어로, 제사도 금하며, 각민족의 고유특성을 배제한 전통을 지켰습니다.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 제사문제로 많은 핍박을 받고, 배교를 강요당하는 아픔을 겪은 것을 우린 압니다. 

가톨릭교회사를 보면

많은 교리해석과 신앙을 받아들이는 방식과 정경의 채택문제를 놓고 이견들을 표출 하였으며

다른요인도 있지만, 로만카톨릭과 동방정교회(시리아 정교회를 포함해서)가 서로 의견대립이 있었고

이에대한 반성으로 20세기에들어와서 에큐메니칼운동(교회 일치화운동)을 부르짖으며

화해와 일치를 위해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하나의 신앙으로 나아가려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제로 이야기를 해 봅시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나는 요셉성인이 홀아비이든 아니든 그것이 요셉성인에 대한 공경문제에 하등

영향을 주지 않으며 더욱 성모님께나 예수님에 대한 신앙의 문제로 비약되지 않음을 확신합니다.

만약, 이러한 문제가 신앙의 문제로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참으로 .............

저는 다른 글에서 성서의 받아들임에 대해서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정경은 성령에 의해 쓰여졌으며, 주님의 말씀이라 믿습니다.

그러나 교의를 세우고 교리를 갖춤에 있어 성서이외의 많은 전승기록과 복음서들이 있음을

이야기 드렸고, 오늘의 카톨릭 전례에도 반영되어 있음을 말씀드렸습니다.

홀아비인지, 아닌지 나는 알지 못하나, 과거 초대교회에서 믿고 읽혀졌던 정경이외의 복음서에

기록된 내용을 소개드렸을 뿐이며, 내자신이 보기에 예수님 형제문제를 고려해 볼 때

홀아비라는 주장이 자연스럽다는 의견을 제시했을 뿐 입니다.

성서만 가지고 이야기하자면 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우리는 막달레나 마리아에 대해서 많은 오해가 있음을 압니다.

많은 성서학자와 교회연구가들은 막달레나 마리아에 대하여 고의적인 폄하를 과거 교회가

해왔음을 지적하고, 20세기에 들어와서 교황성하께서 이에대한 회복을 언급하셨습니다.

막달레나 마리아를  창녀라고 하는 폄하를 역사이래로 하였고, 이를 일반신자들이 받아들였으나

사실 막달레나 마리아는 12사도 못지않은 여자사도로서 주님의 사랑을 타인의 시기를 받을 정도로

받아온 여인이며, 주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까지 성모님과 함께 임종을 지킨 여인이고

부활을 처음 목격한 여인으로, 제자들이 주님이 돌아가시자 실의에 빠져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부활을 믿고 주님이 이른대로 행하자는 설득을 하는 여자 사도였습니다.

막달레나라는 말은 '막달리라는 고을에 사는 또는 출신의' 라는 뜻입니다.

그당시의 사정을 좀더 알기 위해서는 그래서 전승기록도 살펴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전에도 말했듯이 신앙은 과학이 아니며, 지식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기도를 통한 믿음으로 아는

것임을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식으로 알 수 있는 것까지 다 무시하자고 한다면

이또한 잘못임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성서비평이라는 한줄기의 학문이 있습니다. 개중에는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교회는 많은 시간과 인력을 지원하여 이분야를 연구토록 하고 있습니다.

기회가 되신다면 좋은 책들이 많이 있으니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믿음을 굳건히해주는 유용한

기회가 될 것임을 믿습니다.

(추천 도서)

복음서의 해석과 성서비평의 역작인 로만카톨릭 신부이며 교수인 저자의 뛰어난 해석이 돋보이는 책

<네복음서와 예수전승> 존 F.그래디 신부 지음  박태식 번역, 바오로의 딸 출판사 간행

 

로마교황청 성서위원회의 위원이며,가톨릭 성서협회,성서문학회, 신약성서연구회의 3단체장을 역임한

유일한 인물로, 교황청의 성서연구를 위해 헌신한 사제로 그의 강론모음집임.

<성서에대한 101가지 질문과 응답> R. E.브라운 신부 지음, 박영식 번역, 바오로의 딸 출판사 간행.

 

저는 이제 이러한 저의 글이 다른 의도로 확산됨을 원치 않습니다.

또 행여나 믿음의 형제들이 저로 인하여 잘못된 믿음의 우려가 있다는 지적을 심각하게 받아들입니다.

이것은 제가 바라는 바가 아니며, 저는 제가 알고있는 지식을 조금씩 공유함으로서 서로 공부하며

영성을 키우자는 뜻이었는데, 제 본의와 다르게 흐를 수도 있음을 경계합니다.

그러므로 이 싸이트에 저의 의견을 말씀드림을 그칠까 합니다.

그러나 계속 보며 좋은 글들에 박수는 보내려 합니다.

모두에게 주님의 빛이 환하게 비추시길 주님께 기도합니다.

 

댓글 4

  • 2004년 8월 11일 오후 12:46

    가톨릭,정교회,성공회,개신교 서로의 차이 설명한 책 있으면 소개해 주세요...

  • 2004년 8월 11일 오후 1:01

    추천도서를 추가로 올렸으니 참고히면 고맙겠습니다.

  • 2004년 8월 11일 오후 1:13

    유스티노형제님의 답입니다. 바오로서적(web)에서 가톨릭교회사연구에 관한 책을 찾아보시면 원하시는 책을 구하실수 있을 겁니다.

  • 2004년 8월 13일 오후 11:24

    <성서에대한 101가지 질문과 응답> 저희 집에 있습니다. 필요하시면 빌려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