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건님의 올리신 글을 보고 제가 알고있는
성모 마리아님에 관한 내용을 올립니다.
특히 동정인가? 예수님의 형제분이 있었는가? 등 성모님에 관하여 개신교나 성서학자들 간에
여러 자신들의 의견을 말하는 경우가 있고,
심지어 가톨릭교회안에서도 이에대한 오해와 잘못된 지식을 이야기하는 이들이 있어
오직 진실은 하느님만 아시는 것이긴 하지만 제가 알고있는 성모님의 이야기를 말씀 드립니다.
우리 성서는 신약의 경우 주후60년 후반부터 복음서가 쓰여지기 시작하였고
그전에 사도 바울이 주후 45년경 이후부터 서간들을 복음서가 쓰여진 시점까지 13편의 서간을 썼습니다.
그전에는 초대교회가 바로 주님이 곧 재림하실 것이라 믿었기 때문에 글로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기 보다
공동체 안에서 예수님을 경험한 사도들과 함께 공동재산으로 먹고 지내며 오직 주님이 오시기만
기다렸다고 보는 것이 사실에 가까울 것입니다. 물론 기쁜 소식을 전하는 전도사업과 함께 말이죠.
사도바울도 느끼기 시작한 것과 같이 주님의 재림이 자신들의 살아생전에 오지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자 다음세대들을 위하여 주님의 말씀을 공동체 나름대로 기록하기 시작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마태오 공동체(시리아 안티옥)의 마태오복음, 에폐소로 추정되는 요한 공동체의 요한복음,
로마로 추정되는 마르코 복음, 정확한 위치는 모르지만 사도 바울의 공동체에 속하는 것으로 생각되는
루까복음이 기록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 4복음은 저마다 각 집필자나 속해있는 공동체의 관심사항이나 여건에 따라 필요한 내용을 기술하였고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의 내용이나 편집이 조금씩 다르게 나온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주님이신 예수님의 공생활 전의 삶에는 그리 관심을 두지않고, 왜 주님이 우리에게 오셨고
주님은 어떤 분이며 우리 삶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의 신학적 문제에 관심을 나타낸 복음이며
마르코 복음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의 끝없는 사랑을, 구원의 멧세지를 알리는 것이 복음의 목적이라
예수님의 과거사에는 관심을 두지않고 수난 중심의 기록을 보이고 있습니다.
마태오 복음과 루까복음은 예수님의 탄생과 삶을 전체적으로 기술하였는데 여기에는 몇가지 사정이
있습니다. 마태오 복음의 배경은 주후 70년경 예루살렘 성전이 로마군에 의하여 철저히 파괴됨니다.
성전의 파괴 뿐만 아니라 그곳에 유대인이 살 수 없도록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야고보가 주교로 있던
예루살렘 그리스도 공동체는 해체됩니다. 이때 예루살렘 공동체의 많은 신자나 지도자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게 되었고 그들은 숨어서, 또는 격리된 지역에서, 아니면 디아스포라라고하는 이방지역의
유대공동체 안에서 활동하게 됩니다. 과거에는 그리스도인들도 유대회당에서 유대의 집회에 참석도
하였으나, 성전파괴 이후 유대교는 바리사이파를 중심으로 하여 지금으로 말하자면 철저한 원리주의로
성서해석 중심의 교의로 재무장하기 시작하였고 회당내에서 이단의 철저한 배척운동을 벌립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를 믿는 유대인들이 배척과 박해를 받게됩니다.
이러한 배경속에서 마태오 공동체는 새로 그리스도를 믿는 이방인들과 그리스도를 믿던 유대전통을
지키려는 유대인들을 다 아우르는 공동체 운영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마태오나 루까는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으로서 구약이 예언한 메시아요, 하느님 야훼께서 몸소 인간이 되신 주님이시라는 것을
강조할 필요를 느꼈기 때문에 주님의 탄생을 강조한 것이지요.
우리는 주님에 관하여 현재 정경으로 공인된 복음서만 알고 보고있으나,
사실 12제자들이 썼다고 주장되는 많은 복음서와 사도행전 기타 기록들이 많이 있어 왔으며
심지어는 니그함마디에서 20세기에 발견된 복음문서들도 있는 형편 입니다.
니케아 종교회의, 프로렌스 종교회의 등에서 성서의 정경화 결정 당시에는 볼 수도 없었던 문서들도
지금 발굴되고 있으며 앞으로 또 어떤 문서가 나올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지금 정경인 성서만으로 예수님의 과거사를 한정하고, 성서 이외의 것은 다 인정할 수 없다고
한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 개신교의 맹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신학을 전공한 목사들이 성서뿐만 아니라
많은 과거 교부나 신학자들이 참고하고 믿었던 전승기록과 전례물들을 모를 리가 없는데도 그들은
일반신자들을 대상으로 목회할 때 이를 부정합니다. 그이유는 나름대로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비교종교학, 비교신학, 서양철학, 심지어 동양철학 사상까지도 배우고서도요.
서론이 길어졌는데
마라아 동정녀에 관한 자료들을 보겠습니다.
복음서에서는 루까복음에 성모마리아의 예수님 잉태와 출산, 그리고 어린예수의 이야기가 나오지만
마리아 탄생복음(초대교회 신자들은 이를 저자가 마태오라고 여겼으며 마태오복음이라함)을 보면
마리아의 출생과 약혼한 마리아가 성령으로 예수님의 잉태하심에 대한 기술을 하고있습니다..
이 마리아 탄생복음은 4세기의 교부인 예로니무스 뿐만 아니라 고대의 몇개 교파에서 성경으로 받아들이고
애독한 경전입니다.
이복음서에서
마리아의 부모인 요하킴과 안나는 결혼한지 20년이 지나도 아이가 없어
부자인 요하킴이 성전에 제물을 바치려할 때 자식이 없다고 제물을 거절당하고 슬퍼합니다..
그는 자선을 많이한 사람으로 자기재산의 3/1은 성전에,3/1은 가난한 이에 나누어줄 정도였습니다..
그의 기도를 들은 천사가 나타나, 잉태를 예고하고 그아이는 여자아이이며 그이름을 마리아라하라고
일러줍니다.. 그아이는 어려서부터 주님께 봉헌되고, 태중에서부터 성령이 충만할 것이며
처녀의 몸으로 하느님의 아들을 낳을 터인데 그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일러줍니다..
마리아는 3살이되자 걸어서 혼자 스스로 성전계단을 올라가 부모는 아이를 성전에 맡기고 돌아갑니다..
마리아는 14살까지 성전에서 거룩한 몸으로 자라셨는데 대사제들이 결혼을 시키려하였다.
마리아는 동정을 지키려고 이를 거절하였으나 주님의 말씀이 계약의 퀘에서 나와 배필을 점지해 주시겠다는
말씀이 있자 마리아는 이를 받아들이고, 그 배필로 늙은 요셉이 선정된다. 이로서 요셉과 약혼하고
요셉은 고향인 베들레햄으로, 마리아는 친정이 있는 갈릴리로 갑니다.
그 이후의 예수님 탄생 이야기는 루까복음과 거의 같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내용은 마리아가 결혼을 수락하는 조건이 동정을 지키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 복음은 마리아가 결혼한 후에도 동정을 지켰다고 적고있습니다..
또 다른 복음, 야고보의 최초의 복음이라는 복음서를 보면 오늘의 우리신앙인 마리아 공경의 기초를
이루는 복음내용이 나옵니다..
이복음서는 예수님의 사촌인 작은 야고보(초대주교)가 쓴 그리스도와 그의 어머니 동정 마리아의 탄생에
관한 역사적 기술이라는 원제를 달고 있는 복음서로서 주후150년경에 저술된 것으로 추정하는데, 저술목적이
저술 당시에 예수님이 사생아니 하는 낭설들이 유포되어 이를 반박할 목적으로 저술된 것이라하며
마태오복음이나 루까복음의 원전이라는 설과 두 복음과 이 복음이 같은 전승기록에 의한 것이라 주장되기도
합니다.
이복음서는 마리아 탄생에 관하여 위의 마리아복음서와 내용이 거의 같으며 단지 마리아가 12살때 요셉과
약혼 하였고, 결혼 대상을 마리아 복음서에는 총각으로만 모집하였는데 이복음서는 홀아비들로 확대하고
요셉이 늙은 홀아비임을 말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또 논란이 되고 있는 예수님의 형제문제인데 이복음서는 예수님의 형제자매가 있으며, 그 형제자매들은
과거 전처의 소생임을 확실히 밝히는 요셉의 말들이 여러곳에서 나온다.
요셉은 늙은 홀아비로서 전처에서 난 자식들이 있었고
당시 법령으로 베들레햄 출신의 유대인은 자식을 낳으면 세금을 바쳐야하는데 이 문제를 놓고 요셉은
고민을 한다. 내자식의 이름으로 할까, 마리아를 딸이라하고 할까, 고민하다 주님께 맡기자고 결심한다.
또 해산을 하기위해 산파를 부르러 갈때 자식들을 마리아 곁에 두고 떠나는 장면이 나오고
산파를 데리고 동굴로 와보니 마리아는 이미 아기를 낳고 밝은 빛이 모자를 보호하고 있음을 보게된다.
또 헤로데가 아기를 죽이려하자 급한 나머지 마리아는 아기예수를 강보에 싸서 소 여물통에 숨기는
장면이 나옵니다..
또 토마복음서는 교부들에 의해 제5복음서라고까지 말하고 있는 주후150년경에 쓰여진 복음서로서
초대교회로부터 수백년동안 인기있는 베스트셀러였고 그 저자가 토마스라고도 하고 마리아 복음서의
작은 야고보라고도 하며, 최근 발견된 니그함마디문서에서 곱트어로 쓰여진(원전은 그리스어로 쓰여짐)문서가 발견된 귀한 문서이다. 이복음서는 예수님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주로 기술한 복음으로 여기서는 설명을
피합니다..
이러한 문서들을 그대로 받아들일 것인가, 이니면 정경에 포함되지 않은 것이니 인정할 수 없다고
할 것인기는 각자 신앙의 문제이겠지만 적어도 가톨릭 교회안에서 이 복음의 내용들이 받아들여져
교리를 세우고 많은 교부들과 신학자들이 이를 근거로 교회의 전례와 신심을 강론하는 근거로 삼았음을
알아야 할 것이라 봅니다.
만약 궁금한 것이 있어 더 알고 싶으신 분들이 있으시면, 서슴치마시고 물어 주세요.
아는 데 까지는 알려드리지요.
술자리도 오케이 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