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너건 지음 "구원의 역사" 제2부 신약성서(구원의 선물) 제6장 그리스도에 의해 성취된 구원 중에서>
죄를 이긴 승리 :
그리스도의 죽음에서 무엇이 인류의 죄를 소멸시켰을까? 요한과 바울로의 저술이 우리에게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준다. 무엇보다도 아담과 하와의 원죄는, 그 후손들이 계속해서 범한 죄들도 마찬가지이지만, 모든 죄에 내재하는 근본적인 두 가지 악덕, 즉 교만과 불순명의 표출이었다. 하느님의 법에 불순명하도록 유인한 것은 언제나 인간의 개인적 만족에 대한 과도한 사랑이었다. 윤리적인 죄악의 이 두가지 근원이 창세기의 인류 타락 기사에서 분명하게 제시되고 있다. 사탄은 인간이 하느님과 같아지리라고 유혹했는데, 이 유혹은 인간의 교만심을 자극하는것이었다. 그 때에 인간이 한 행동은 하느님께로부터 금지된 행동이었으며, 여기에 불순명이 자리하였다. 계속되는 인류의 역사에서 범해진 다른 죄악들도 다 비슷한 양상을 띠었다. 그러나 인류의 죄를 보상하기 휘한 그리스도의 죽음에서는 정반대의 과정을 볼 수 있다. 그리스도는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자신을 아끼는 교만과는 정반대임)과 하느님의 뜻에 대한 완전한 복종이라는 최고의 표현으로써 죽음을 택하셨다. 그럼으로써 덕은 악을 소멸시키듯이 새 아담의 사랑과 복종은 옛 아담의 교만과 불순명을 보상하거나 또는 소멸시킨 것이다.
바울로와 요한은 죄를 없애기 위한 그리스도의 죽음에 수반된 사랑과 순명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주 이야기한다. 그리스도의 죽음에 수반된 사랑은 두 가지 면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인간에 대한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 즉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외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실 정도로 무한한 사랑이었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 가운데에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 주셨으니, 그것은 우리가 그분으로 말미암아 살도록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1요한 4, 9).
동시에 십자가에서의 죽음은 죄많은 인류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최고의 형태로 나타낸 것이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하느님께 (맞갖은)향기를 풍겨 울리는 예물과
제물로 자신을 내주신 것처럼, 여러분도 (그런) 사랑 안에서 살아가시오 (에페 5, 2)
신약성서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묘사할 때 순명도 또한 강조한다. 바울로는 우리를 죄인이 되게 한 아담의 불순명은 우리를 의화시키는 새 아담인 그리스도의 순명으로 대체되었다고 한다.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많은 이들이 죄인이 된 것과 같이,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많은 이들이 외롭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로마 5, 19).
바울로는 또한 그리스도를 십자가상의 죽음이라는 치욕의 구렁으로 몰아간 순명에서 나타난 그리스도의 겸손을 격찬하는 아름다운 교회의 찬양시를 우리에게 전해준다.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 곧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도다 (필립 2, 8).
요한은 악을 쳐이긴 덕의 승리의 두 가지 면을 묘사하는 구절을 남겼다. 여기에서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순명이 모두 사탄의 적수들로 간주된다.
이 세상의 두목이 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내게 대하여 아무런 (권한도)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과 또 아버지께서 나에게 명하신 그대로 행하고
있다는 것을 세상이 알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요한 14, 30-31).
이 모든 것에서 그리스도의 죽음은 죄를 쳐이긴 승리라고 보는 영감에 찬 해석이 발견된다. 그리스도는 일찍이 이 세상에서 아무도 보지 못했던 가장 훌륭한 사랑과 순명을 보여 주심으로써 죄의 근본적인 악인 교만과 불순명의 파괴적인 힘을 쳐부수셨다. 이런 의미에서 갈바리아의 때는 승리의 때요 영광의 때였다. 실제로 요한 복음서는 이 때를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되신 때라고 묘사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영광은 사랑과 순명이라는, 즉 자신을 내어 주는 사랑과 생명을 포기하는 순명이라는 덕행의 최고의 표현으로 이루어진다. 죄를 쳐이긴 그리스도의 승리는 이런 것이었다.
